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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쿠바와 카메라맨

by 똥이아빠 2018.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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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쿠바와 카메라맨
넷플렉스 다큐멘터리. 이 다큐멘터리를 찍은 감독은 미국인으로, 청년 때부터 쿠바를 오가며 기록을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피델 카스트로가 죽은 이후까지 쿠바 사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노력했다. 수십년의 노력만으로도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치가 충분하다.
쿠바의 현대사는 미국과 뗄 수 없는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가 있는데, 주로 미국 자본가와 범죄조직이 쿠바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과정이었다. 바티스타는 불과 중사 계급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고, 그는 첫번째 집권에서는 비교적 개혁적 성향을 보였지만, 미국으로 잠시 은퇴한 다음 다시 돌아와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미국 자본가의 앞잡이이자 탐욕에 찌든 독재자가 되었다. 그런 비티스타를 몰아 낸 것은 피델 카스트로였지만, 이미 바티스타 정권에서 국민과 군대는 바티스타에게 등을 돌렸고, 군부와 경찰도 숫자가 얼마 안 되는 피델의 혁명군에게 일부러 저항하지 않았다.
쿠바를 외세에서 해방, 독립시킨 피델 카스트로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에서 온 이민자의 자식이었다. 피델의 아버지가 스페인 군대로 쿠바에서 복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난한 빈민의 집안으로 먹고 살기 위해 스페인에서 쿠바로 온 것만은 분명하다. 피델의 아버지는 당시 쿠바의 경제를 지배하던 미국 자본가의 농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며, 미국 자본가들이 시키는 일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피델의 아버지는 머지 않아 꽤 넓은 농장을 소유한 자본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글을 쓸 줄 몰랐고, 똑똑한 여자와 결혼해 글을 배웠다.
하지만 피델의 아버지는 가정부와 불륜이었고, 가정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피델의 세 형제였다. 피델은 어려서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살지 못했고,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숙소에서 지내야 했다. 피델은 법대에 진학해 나중에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의 내면에서 조국 쿠바의 현실-자본의 착취와 독재-을 보면서 분노하고,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를 절대권력을 증오하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는 쿠바가 미국의 압력에 의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기록했고, 가장 어려운 시기의 쿠바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쿠바가 혁명에 성공한 나라이고, 쿠바 민중의 자긍심이 높은 것은 맞지만, 그들 내부에서 도둑질이 자주 발생하고, 음식을 비롯한 생필품이 부족해 몹시 곤란한 생활을 하는 모습과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개인들의 태도도 자연스럽다.
평생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세 명의 노인이 보여주는 진실한 모습은 감동을 일으킨다. 공산주의 사회의 인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 노인은 그러나 쿠바의 궁핍이 심해지면서 농사에 필요한 소를 도둑맞는다. 결국 농사의 규모도 줄어들고, 나이들어 한 명씩 사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노인들의 죽음과 함께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도 사라지는 듯 느껴진다.
쿠바의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주로 여행, 관광 상품이어서 쿠바는 관광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고, 쿠바를 탈출한 사람도 많지만, 남아 있는 쿠바 민중은 어떻게든 궁핍을 견디며 살아왔고, 이제 쿠바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없는 쿠바는 혁명의 시대를 끝내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류를 겪을 것이고, 후유증도 남겠지만, 쿠바 혁명 정신은 달라지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그것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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