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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배드 타임즈 : 엘 로얄에서 생긴 일

by 똥이아빠 2019.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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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드 타임즈 : 엘 로얄에서 생긴 일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았다는 건 퍽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리게 한다. 감독 드류 고다드에게는 퍽 미안하고, 그 자신도 자존심 상하는 말이겠으나, 쿠엔틴 타란티노 이전과 이후의 영화는 영화의 형식미가 뚜렷하게 갈린다. 타란티노 영화는 헐리우드에서 혜성처럼 등장했고, 그의 연출 스타일은 독보적이다. 따라서 타란티노보다 늦게 나온 영화들은 뛰어난 연출과 잘 만든 영화임에도 타란티노와 '닮았다'는 씁쓸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늦게 나타난 재능 있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하다. 시나리오는 물론 미장셴까지 흠잡을 곳이 거의 없는 탁월한 영화여서 보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를 날줄과 씨줄로 엮어 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드류 고다드는 영화 '마션'의 시나리오를 썼으니, 실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 경계에 있는 '엘 로얄' 호텔은 세월이 흘러 낡고 퇴락하는 3류 호텔이다. 한때는 유명인사들-헐리우드의 배우, 유명 정치인-도 묵어 가던 호텔이었지만 지금은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 이 호텔은 특이하게 호텔 가운데를 주경계선이 지나가고 있어서-어쩌면 일부러 그렇게 건물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다-1950년대 전성기를 지나 60년대 말이 되었을 때, 네바다주의 도시 리노에 가는 사람들 가운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가끔 묵을 뿐인 이 호텔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가 시작하면, 중년의 남성이 호텔방으로 들어온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과 몸짓을 보면 이 남자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남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침대와 탁자를 옮기고, 바닥에 깔린 카펫을 말고, 바닥을 뜯어낸 다음 마루 아래 공간에 가방을 숨긴다. 그리고 다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놓았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남자는 감시경으로 외부인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는데, 그 사내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10년이 흐르고, 호텔 로비에는 네 명의 손님이 거의 동시에 도착한다.
진공청소기 판매원, 가톨릭 신부, 흑인여성 가수, 백인 여성이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이유가 있어 이 호텔에 들어왔고, 서로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반전에 반전이 일어난다.
객실과 로비에 있는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을 왜 끝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 나온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대학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린다.
건장한 중년 남자인 진공청소기 판매원이 가장 먼저 정체를 드러낸다. 그는 가장 좋은 방을 배정받고, 그 방에서 도청기를 무려 20개 가까이 찾아낸다. 그렇게 많은 도청기가 숨어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데, 그렇다면 그 방 뿐아니라 호텔에 뭔가 거대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객실을 전부 뒤집어 엎어 도청기를 다 찾은 남자는 객실에 있는 커다란 유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바깥에 나와 객실의 너비와 건물의 너비를 발걸음으로 잰다. 건물의 너비가 객실 너비보다 넓다면, 거울 뒤쪽에 공간이 있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그 유리는 모든 객실에 달려 있고, 비밀통로를 통해 모든 객실을 감시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다른 투숙객의 비밀까지도 순식간에 알게 된다.
결국 모든 비밀을 발견한 중년 남자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전화를 하는데, 그곳은 FBI 본부. 남자는 FBI 요원이었다. 하지만 본부에서는 주어진 미션만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데, 요원은 그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독단으로 납치범을 잡으러 들어간다. 이렇게 영화는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이 호텔에 묵으면서, 사건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 마지막에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 내내 들리는 음악이 상당히 좋고, 음악과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미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약간 빛바랜 영상과 복고적 풍경이 영화를 더 아름답게 한다. 70년대 이야기지만, 영화의 무대는 여전히 서부의 사막에 가까운 곳이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서부개척시대에 사막에 있는 한 작은 호텔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무법지대에 서 있는 것과 같다. 미국은 여전히 법보다는 총이 가깝고, 사막 어딘가에는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시체들이 무수히 많고, 그와 함께 돈가방도 또한 그만큼 많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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