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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레이디 맥베스

by 똥이아빠 202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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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욕망을 향해 치닫는 광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맥베스는 승리의 자부심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 주화입마에 빠진다. 그가 만난 마녀들은 사실, 마녀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권력의 화신이자, 욕망의 결정체였으며, 자만심의 현현이었다.

맥베스의 아내는 남편에게, 덩컨 왕을 살해하고 그가 왕이 되도록 부추긴다. 피는 남편의 칼에 묻히고, 자신은 왕비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한번 살육을 시작한 맥베스는 광기에 휩싸이고, 권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는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던 동료이자 참모 뱅코의 자손이 왕위를 잇는다는 마녀의 예언을 떠올리며 뱅코와 그의 아들도 암살자를 보내 죽이지만, 뱅코의 아들 플렌스는 탈출한다. 맥베스는 결국 맥더프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그의 아내 역시 자살한다.

 

'레이디 맥베스'는 '맥베스의 아내'와 '여성 맥베스'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맥베스의 아내는 남편 맥베스를 부추겼을 뿐 아니라 덩컨 왕을 암살할 때,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망설이던 맥베스를 다그치고, 권력욕과 야망을 부추겼으며, 그녀 자신도 손에 피 묻히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가부장 사회에서 '권력'과 '야망'이 주로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면, 여성이 추구하는 욕망과 권력욕은 가부장 사회를 흔드는 '반체제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세익스피어의 의도는 어떤 것일까. '맥베스 부인'은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는 '맥베스 부인'일 뿐이었다. 

'레이디 맥베스'에서 캐서린은 세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남편의 권력욕을 부추긴 아내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헨리7세의 아들과 정략 결혼한 스페인의 귀족 여성이기도 하다. 그녀는 신혼 때 병으로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 헨리7세의 명령으로 시동생과 결혼한다. 

하지만 왕이 된 남편 헨리8세는 형의 아내였던 캐서린을 싫어했고, 하녀와 불륜을 저질렀다. 헨리8세는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돌리고자 교황에게 승인을 요청했지만, 교황은 이 정략결혼을 무효화하지 않았다. 헨리8세는 카톨릭의 종교권력에 반대해 '영국 성공회'를 새로 만든다.

 

영화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무첸스크 군의 맥베스 부인'이 그 작품인데,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는 이 소설의 시작이 실제 일어났던 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작가가 되기 전, 형사재판소에서 기록원으로 일할 때, 어느 마을에서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얼굴에 끓는 납을 부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며느리였고, 그 여성은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했다.

영화는 소설에서 기본 모티프를 가져왔을 뿐,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한다. 캐서린은 귀족에게 팔려 온 여성이다. 그는 하층 계급 여성으로, 집안이 가난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은 캐서린을 사랑하지도 않지만,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는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탄광으로 떠나고, 캐서린은 우연히 성에서 일하는 일꾼 가운데 세바스천을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이들의 불륜을 하녀 애나가 알게 되고, 먼저 돌아온 시아버지는 캐서린을 추궁한다. 캐서린은 음식에 독약을 타 시아버지를 독살하고, 나중에 찾아온 남편도 살해한다. 거기에 전혀 상상도 못한 남편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아이와 그 할머니가 찾아와 보상을 요구한다.

캐서린이 시아버지와 남편을 죽인 것은, 그동안 억눌린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귀족 집안으로 팔려온 것도,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이미 늙어버린 남편도, 그렇게 귀족의 아내가 되었지만 하인, 하녀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처지인 것도 캐서린의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들이었다.

따라서 캐서린의 분노가 폭발하는 과정이 엽기적이고 폭력적인 것은, 남성으로 상징되는 가부장, 귀족계급이 보였던 폭력에 대한 상응한 보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를 살해하는 순간, 그렇게 동정과 이해로 바라볼 여지가 있었던 캐서린의 행동은 선을 넘는다.

 

캐서린의 애인 세바스천은 캐서린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하인에서 어느 순간 성의 주인으로 자신의 신분이 바뀌면서 오히려 공포를 느낀다. 귀족 주인이 입었던 실크 옷을 입고, 귀족 주인이 앉아서 식사하던 식탁에 캐서린과 둘이 앉아 하녀 애나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하면서 세바스천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캐서린의 집요한 부추김으로 아이를 죽이려 했던 세바스천은 아이를 끝내 죽이지 못하고 폭포에서 살려 데리고 돌아온다. 그것을 본 캐서린은 자기가 직접 아이를 살해하면서 세바스천이 공범이 되도록 만든다. 세바스천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의사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지만, 캐서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세바스천과 하녀 애나가 공모해 살인했다고 뒤집어 씌운다.

'악녀'는 '악마' 또는 '마녀'와 동일한 단어 또는 개념일까. '악녀'는 있지만, '악남'은 없다. 이것은 사회에서 '여성'을 특별하게 분류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회적으로 여성을 차별, 억압하는 가부장 사회의 폭력은 당연히 여성의 보편적 욕구와 욕망을 억압, 통제하면서 남성의 지배를 받는 하등한 존재로 낙인 찍는다.

캐서린의 광기와 폭주는 자신의 행위를 용인하는 분노를 넘어서 '악마'의 모습으로 질주한다. 종교(카톨릭) 지배자들이 자기들의 권력과 입지가 위태로울 때, 여성을 '마녀'로 몰아 종교권력을 강화하고, '마녀'로 낙인 찍은 돈 많은 여성(주로 과부)의 재산을 강탈했던 전력으로 미루어 볼 때, 캐서린의 행동은 종교의 얼굴을 한 남성권력의 폭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개인'이 저지른 악행은 쉽게 구조화하기 어렵다. 사회는 분명 가부장 권력이 저지르는 폭력이 난무하고, 그들 가운데 더 엽기적인 '쏘시오패스'가 등장하고 있지만, 여성의 범죄는 사회적으로 억압당하는 존재로서 개인의 분노와 사회적 분노가 결합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개인의 고유한 특성-싸이코패스-의 발현인 경우에도 '여성' 즉 사회적 약자라는 존재가 행위의 결과를 해석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서슴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캐서린이 넘어서는 안 될 선-그것을 아이 살해라고 했을 때-을 넘었을 때, 관객은 캐서린이 그동안 당했던 수모와 모욕과 억압과 차별의 긴 시간과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 살해까지도 캐서린이 살아 온 사회적 시간 속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중세의 계급, 계층차별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는 관객의 해석으로 남는다.

 

감독은 작품(영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정곡을 찌른 것처럼, 감독은 드러난 현상으로 말하되, 관객이 스스로 '정서적 충격'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어떤 형태로든 감독이 작품을 통해 발언하고, 그것을 관객이 느낀다면, 관객이 작품(영화)과 교감을 나누는 정서적 행위는 얕을 수밖에 없다.

캐서린이 보여주는 일련의 광기는 그녀의 내부에서 폭발하는 정서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누구도 쉽게 단정하거나 단죄하지 못한다. 캐서린의 삶 전체를 살펴볼 때, 비로소 그녀가 그 행위를 하게 되는 타당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감독은 캐서린의 삶을 보여주지 않고, 그녀의 욕망만을 드러낼 뿐이다.

관객은 캐서린의 언행을 통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한다. 따라서 캐서린은 고정된 인물, 한 사람의 물적 존재가 아닌, 다중의 여성, 다중의 인격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관객의 마음에 자리한 캐서린의 존재는 관객 각자의 삶과 경험에서 재해석되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정서적 교감을 한다. 이렇게 다중적,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인물로서의 캐서린은 억압된 여성성, 악마화한 여성, 반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 또는 '인간'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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