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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두 교황

by 똥이아빠 2019.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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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

 

넷플릭스 오리지널.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기까지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큰 줄기의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알고 있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사이에 있었던 내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영화는 두 교황과 가톨릭 교회를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의 외피-종교-를 벗기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드러난다. 어느 집단이든 존경하는 어른은 존재한다. 우리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모시며 사는 사회인가 돌아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안팎으로 들끓는 가톨릭에 대한 비난에 맞닥뜨렸고, 내부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던 상황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톨릭 내부에서는 신부들에 의한 성추문이 고발되고 있었고, 가톨릭이 세계의 독재자와 보수 정부를 지원한다는 비판에 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진정 훌륭한 어른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이 영화는 훌륭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두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은 늘 움직이고, 성장한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한때는 음악가가 되고자 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톨릭 신부가 되었고, 마침내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보수적인 인물이고, 그동안 유지되었던 가톨릭의 전통을 옹호, 유지하는 사람이며, 가톨릭의 정신을 무엇보다 확고하게 지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고, 지구의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12억 명의 가톨릭 신도들은 저마다 다른 사정으로 고통받고 있다. 가톨릭은 이미 2천 년동안 신도의 재산을 갈취하고, 신도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가톨릭 지도부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려왔다. 신도들은 고통 속에 살지만, 추기경, 고위 신부들은 안락한 삶을 누려왔다.

가톨릭은 유럽의 왕을 선출할 정도로 권위와 권력을 독차지했고, 왕, 귀족에게 받는 막대한 자산은 물론, 수도원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부동산과 사하촌을 이루는 농노를 거느리면서 경제적으로도 막강한 부를 축적했다. 이런 부와 권력은 그들의 권위를 더욱 높게 만들고, 가톨릭 지도자들은 정치 권력과 결합해 지배계급의 통제를 강화했다.

현대들어 가톨릭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며,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오만과 독선으로 체제를 유지하려는 가톨릭의 보수성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청에서 터져나온 범죄가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교황청과 가톨릭의 타락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개혁적인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베네딕트 16세는 추기경 가운데 개혁적 인물로 떠오른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선택하도록 자신은 용퇴한다.

 

두 교황은 서로 다른 세계관,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한 가지, 교황청과 가톨릭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타락했으며, 내부 개혁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것이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는 나이도 많고, 자신의 세계관으로는 강력한 개혁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르헨티나의 추기경 베르골리오라고 생각했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가장 유망한 후보 두 명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를 견제하는 한편 존중했다.

베르골리오는 추기경 사임을 말하기 위해 교황청에 왔지만, 베네딕트 16세와 만나 뜻밖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과거를 돌아본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독재를 하던 시기였고, 이때 공산주의자, 노동조합원, 진보적 지식인, 청년, 학생들은 독재의 총칼에 무수히 살해당하고 있었다. 가톨릭에서는 일부 진보적 성향의 신부들이 민중을 위해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있었는데, 군부독재는 신부들도 가차없이 살해했다.

남미에서 시작한 '해방신학'은 극심한 자본주의의 착취와 빈부격차, 군부독재의 잔혹한 철권통치에서 신음하는 민중을 위한 신학이었다. 해방신학은 이후 세계로 널리 퍼졌고, 주로 제3세계인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군부독재가 철권통치를 하는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많은 신부들은 민중을 위해 야학도 하고, 출판물도 펴내는 등 독재정권에 맞서고 있었지만, 이때 베르골리오 신부는 수도원에 있는 마르크스 이론서, 진보적인 서적을 모두 없애버리고 당시 군부독재와 타협하려는 시도를 한다. 베르골리오 신부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양보하면 군부에서도 신부를 사살하거나 체포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진보적인 신부들로부터 배신자로 매도당하고, 이후 아르헨티나가 민주화된 이후에도 이런 오명은 계속 따라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베르골리오 신부는 이후 가장 낮은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봉사하는 삶을 살고, 그는 마침내 추기경에 오른다. 

베네딕토 16세는 학자와 예술가(피아니스트)로도 뛰어난 인물이며,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고, 그의 부모도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다. 반면 베르골리오는 화공학자가 되고자 했지만 스무 살이 넘어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가톨릭에서도 소수파인 '예수회' 출신으로 교황이 된 유일한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의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 사람으로,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성장 배경도 많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도 달랐지만 지성인으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존경할만 한 어른이 없는 사회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보여주는 말과 행동을 보면, 그동안 아르헨티나에서 받았던 오해와 불신을 씻기에 충분하며, 종교를 떠나 인류의 보편적 인권과 행복에 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가톨릭 교도는 물론,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이어서 퍽 반갑다.

나는 '사짜' 가톨릭 교도인데, 세례명으로 '세바스티앙'이라는 본명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 치기어린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그게 꽤 근사해 보였다. 내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던 형이 가톨릭 교도였고, 본명이 '세바스티앙'이어서 따라한 것인데, 요즘처럼 멋진 교황께서 가톨릭 뿐만 아니라 종교의 역할을 '인본주의'로 바꿔나간다면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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