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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T-34

by 똥이아빠 201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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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34

한국에서 러시아 영화를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영화들 가운데 '닥터 지바고'나 '전쟁과 평화' 같은 영화는 원작이 러시아 작가일 뿐, 영화를 만든 곳은 미국 영화사였다. 러시아 영화는 '전함 포템킨', '10월', '어머니', '파업' 같은 러시아 혁명을 다룬 영화들이 예전에 비디오테이프로 복사되어 은밀하게 돌려보다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예술영화로 한국에 알려졌다. 현대 러시아 영화로는 '제9중대', '스탈린그라드', '레닌그라드'처럼 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전쟁영화가 주로 소개되는데, 한국 관객들이 러시아 영화에 관심이 적은 것은 퍽 아쉽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러시아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듯 한데, 러시아는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거나, 러시아 영화는 어렵고, 재미 없다는 생각이 있는 듯 하다.
이 영화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을 소재로 하는데, 탱크전이 주제다. 1941년, 독일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미하일 중위는 한 대뿐인 탱크를 가지고 독일군을 상대한다. 뛰어난 탱크 지휘관인 미하일은 사기가 떨어진 전차병을 격려하며 탱크를 재정비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독일 탱크를 상대한다. 영화 초반 30분의 탱크 전투는 지금까지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액션을 보인다. 거대한 탱크가 묵직하면서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장면과 포탄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는 장면은 관객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미하일의 탱크는 독일 탱크 네 대를 부수지만 결국 독일 탱크의 포탄에 맞고 부서지고, 미하일과 그의 부하 전차병들은 독일군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시간이 흘러 1944년 독일. 기차에 가득 실린 유대인과 포로들이 수용소에 도착하고, 독일군은 탱크부대 훈련을 위해 전장에서 노획한 러시아 탱크 T-34 한대를 실어오고, 러시아 포로 가운데 전차병을 찾는다. 이 책임을 맡은 독일장교는 미하일과 싸웠던 인연이 있는데, 포로수용소에서 우연히 미하일을 다시 만난다. 미하일은 포로들 가운데 전차병을 차출하는데, 그곳에서 자신과 함께 팀을 이뤘던 탱크 운전병을 만나게 되고, 이들은 독일군의 탱크 훈련용으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팀을 이뤄 탈출을 감행한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주제를 따라간다.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던 전차병들이 모여 적진 한가운데서 탱크를 몰고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뒷부분은 스포일러여서 말할 수 없지만, 앞부분보다 더 멋진 장면들이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은 것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것을 전쟁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이 쏘련을 침공하고, 쏘련이 스탈린그라드를 지키기 위해 80만 명의 시민이 굶어죽고, 쏘련 병사 40만 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결국 스탈린그라드를 지키면서 대대적 반격을 시도해 독일의 전투력을 반감시킨 전투였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역이 분명하며, 전쟁에서 승리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나라다. 물론 미국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쏘련군에 군수물자를 투입한 것이 미국이었고, 미국이 준 군수물자로 공동의 적인 독일군을 물리쳤으니 미국의 군수물자 생산력이 유럽의 연합군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독일과의 전쟁에서 쏘련의 역할은 지금까지 과소평가되고 있으며, 구 쏘련, 현 러시아의 문화, 예술은 물론 그들과의 교류도 매우 적다. 중국보다는 적지만,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조선과도 적지 않은 교류를 했던 나라고, 특히 조선이 일제강점기에 놓였을 때, 많은 진보적 독립운동가들이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며 독립운동을 했던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잘 만들었고, 재미있다. 특히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특수효과와 연출을 좋아할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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