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바그다드 카페

by 똥이아빠 2018. 12. 20.
728x90
[영화] 바그다드 카페
이 영화를 오래 전에 보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기억나는 것은 음악이다. 영화에서 울려퍼지던 그 몽환적인 노래는 아마도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자리잡았으리라. 시간이 많이 흘러 감독판으로 재개봉한 영화를 다시 봤다. 낯익은 얼굴이 반갑다.
독일에서 온 야스민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동행했던 남자-남편일 수도 있다-와 도로 위에서 헤어진다. 아마도 남자가 짜증나게 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훨씬 오래 전부터 두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고,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아마도 바로 그 시점에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했으리라. 야스민은 옷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고, 남자는 차를 가지고 떠난다. 야스민이 내린 도로 위는 트럭들이 주로 오가는 퍼시픽 트레일 하이웨이로, 그녀는 물론 몰랐지만, 로스엔젤레스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길에서도 곁길로 빠진 한적한 도로다. 이 길을 오가는 차는 거의 대부분 트럭들이고, 어쩌다 드물게 승용차가 지나갈 때가 있다. 날씨는 덥고, 정장을 하고 무거운 트렁크를 끌면서 야스민은 도로 옆 허름한 카페에 도착한다. 바그다드 카페다. '바그다드' 지명은 실재한다. 황량한 사막같은 곳에 낡은 건물 몇 개가 전부인 바그다드는 사람이 살기에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카페 주인은 흑인이다. 억척스러운 여성 브렌다는 남편을 닥달하고, 손자-아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사고를 쳐서 얻은 아이-를 기르며, 피아노만 치는 아들과 밖으로만 나도는 딸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면서도 카페와 주유소와 모텔을 운영한다. 
모텔에는 장기 투숙자가 있는데, 자신을 헐리우드 배우 겸 무대미술가라고 말하는 루디-잭 팰런스-와 문신을 해주는 데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파일리스가 카페의 손님이기도 하다. 브렌다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늘 바쁘고, 늘 화가 나 있으며, 온갖 잔소리와 불평이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악랄하거나 품성이 나쁜 여성은 아니다. 브렌다는 지쳤다. 먹고 살기 위해 카페와 주유소와 모텔을 운영하지만 생각만큼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남편은 성격이 너무 느긋하고 게을러서 일을 거의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 아들은 어떤 여자애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 데려왔는데, 젊은 나이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버린 브렌다는 자기 인생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늘 우울하고 초조하며, 불안했다. 딸도 학교에 가는 것보다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트럭 기사들 차를 얻어타고 모하비 사막으로 놀러갈 생각이나 하는 철없는 아이여서 제럴드의 걱정은 커지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인적 드문 이곳 카페에 낯선 이방인이 나타난다. 날씨는 더운데 정장을 입고, 무거운 트렁크를 끌며 도로를 걸어온 그 여성은 영어도 유창하지 못한 외국 여성이다. 그녀는 하룻밤 묵겠다고 말하고 여행자수표로 결재한다. 객실에 들어와 트렁크를 열어본 야스민은 가방이 바뀌어 남자의 트렁크를 가져왔다는 걸 알게 된다. 바그다드 시내가 어디냐고 묻는 야스민의 질문에 브렌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기가 바그다드라고 말한다. 
투숙객인 야스민은 늘 바쁘기만 한 브렌다를 위해 사무실을 정리, 정돈하고 카페 건물도 청소한다. 하지만 브렌다는 그런 야스민의 행동에 화를 내고, 자기의 권리와 영역을 침범하는 야스민의 태도에 의구심을 품는다. 돌이켜보면, 야스민의 가방에 마술도구가 들어 있던 것은, 야스민의 남편 또는 남자친구 또는 남자 동료가 마술을 했고, 야스민은 그를 돕는 보조자의 역할로 라스베거스로 가서 일자리를 찾으려던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리거나 감정적 다툼이 있었고, 야스민은 이 황량한 곳에 외톨이로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잘못 가져온 가방에서 나온 마술도구와 남자옷 때문에 난감했지만 야스민은 곧 그 도구를 이용해 스스로 마술을 배운다. 그리고 아주 가볍고 간단한 마술을 카페에서 선보이며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브렌다와 야스민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장기투숙객들과 친해지며, 브렌다의 아들과 딸도 야스민을 좋아한다. 바그다드 카페는 마술을 하는 카페로 알려지고, 매일 저녁 카페에서 마술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트럭운전수들이 공유하면서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외진 곳에 있는 낡고 허름한 카페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라스베가스보다 훌륭하다는 마법쇼가 펼쳐지면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고, 모두 행복하게 되기까지 야스민의 헌신이 있었다. 야스민은 대체 누굴까. 그녀는 뚱뚱해서 세속의 시선으로 보면, 아름답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루디(헐리우드의 배우이자 무대미술가)는 야스민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야스민의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다.
재미있고 행복한 마술쇼를 펼치며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카페가 된 바그다드 카페에서 모처럼-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이었을 게 분명한-행복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브렌다와 그의 아이들, 장기투숙객들, 트럭운전수들, 일부러 마술쇼를 보려 온 사람들-은 야스민이 불법체류자로 체포되면서 그 행복한 추억을 더는 만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덥고 황량한 퍼시픽 트레일러 하이웨이의 도로 저쪽에서 하얀 옷을 입은 야스민이 다시 나타난다. 이야기는 해피엔드로 끝나고, 브렌다와 야스민의 따뜻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유럽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이디 맥베스  (0) 2020.03.07
1917 - 전우를 살려야 한다  (0) 2020.02.22
두 교황  (0) 2019.12.22
[영화] T-34  (0) 2019.03.25
[영화] The Stoning of Soraya M.  (0) 2019.02.11
[영화] 도시의 앨리스  (0) 2018.12.19
[영화] Hannah Arendt  (0) 2018.12.11
영화 'OR NOIR'  (0) 2018.11.22
[영화] 완벽한 하루  (0) 2018.11.21
[영화] Kynodontas(Dogtooth) 어금니  (0) 2018.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