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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암퇘지

by 똥이아빠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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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퇘지

 

프랑스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의 데뷔작. 첫 작품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특징은 대화가 거의 없는 독백체라는 것과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방식이다. 한 여성이 점차 돼지로 변해간다는 줄거리인데, 인간이 동물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꽤 많다. 늑대인간이 그렇고, 벌레로 변하거나, 심지어 진짜 돼지로 변하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경우도 있다. '붉은 돼지'에서도 주인공은 어느 순간 돼지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인간(개인)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것은 자의적인 선택(붉은 돼지)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카프카의 '변신') 어느날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선택일 경우라도 그것은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적, 공간적 원인 때문이므로 순수하게 자발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하나, 인간의 모습에서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고 싶거나 변해 버리는 경우, 그 이유가 긍정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즉 자신의 현재 모습(상황)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외면하고 싶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변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분명 자의적 선택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변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라고 하겠다.

여성이 '돼지'로 변신하는 과정은 여성이 놓여 있는 사회적 위치와 존재의 의미를 상징한다. 사회가 여성을 '돼지'로 바라보고 있고, 돼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묻는 것이다. 즉 그런 시선은 온전히 남성의 시각이며, 가부장제와 마초이즘이 원하고 바라는 여성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는 아닌가 하는 것이다.

향수가게 남성 지배인이 성추행을 해도 참아야만 하는 처지라면, 노동 외에 먹고 살 수 없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수치와 모욕을 감내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같은 인권 선진국에서도 여성의 처지는 약자 가운데 약자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돼지로 변한 상태에서 호텔의 아랍인 관리인의 도움을 받는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주인공을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아랍인은 그러나 불법체류자로 경찰에 잡혀가 추방당한다.

부르주아들은 이너써클의 난잡한 섹스 파티를 열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남성이 대통령이 된다. 이곳에서도 여성들은 노리개로만 등장한다. 여성들의 존엄성과 자존감이 형편없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돼지의 변신으로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여성의 존재에 관한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 소설의 형식이나 줄거리가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소설과 비교할 수 있는 비슷한 소설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두 소설이 '변신'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변신의 과정을 두고 주인공이 드러내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암퇘지'의 주인공은 자기가 왜 '돼지'로 변했는지에 관한 자기성찰이 없다. 오히려 돼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그것을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반면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가 한 마리 벌레로 변한 것을 깨달은 다음,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주의 깊게 돌아본다.

문학적 깊이와 철학적 의미를 두고 볼 때,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의 본질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고, '암퇘지'는 시대를 풍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번역으로 읽은 내용이지만 두 소설에서 문장, 묘사, 의미 등에서 '변신'이 훨씬 뛰어남을 느끼게 된다. '암퇘지'도 사회의 모순과 현상을 풍자하고 있어 재미있지만 깊이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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