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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만화를 읽다

여행 - 에드몽 보두앵

by 똥이아빠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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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여행

작가 : 에드몽 보두앵

출판 : 새만화책

 

'새만화책'에서 펴낸 작품. '새만화책'은 나에게는 '로망'이다. 꿈을 꾸지만 이룰 수 없는, 영원한 신기루와 같다. 나도 그림을 잘 그리고 싶고, 무엇보다 만화를 그리고 싶지만, 그것은 그저 소망이고, 욕망일 뿐, 현실은 다르다. 만화를 그릴 능력이 없어서 만화를 좀 더 깊이 읽었고, 만화비평을 하게 되었다.

'새만화책'에서 나오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글과 그림은 결코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학'의 범주에는 활자만 속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길가메시' 이후 문학은 '문자'로만 형상화되었다. 고대는 물론, 근대까지도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지식인이었고, 지배계급에 속했음을 생각한다면, '문자'를 다루는 행위는 극소수 지식인과 지배계급의 행위였고, 이것은 다수 민중의 삶과 괴리되어 있었다.

문자 이전에 이미지가 소통 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언어와 문자가 없던 시기에도, 인류는 자연의 모습을 흉내낸 이미지를 그렸고, 자연을 숭배하는 행위,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 사냥을 잘 하길 기원하는 주술적 행위도 모두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미지는 인류에게 친숙한 대상이자 도구였으며, 문자 이전에는 중요한 소통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초기의 문자는 '표의 문자'가 대부분으로, 문자 하나가 하나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자들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이미지가 점차 '표음 문자'의 등장으로 분리되면서, 이미지는 문자와 언어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별개의 영역-예술-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미지가 문자로 바뀌는 과정은 인류의 지성이 발달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고, 문자의 확대는 지식의 보편을 이뤘다.

문학이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문자로 기록을 남기고, 대중의 삶에 깊숙히 스며들었다면, 만화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겨우 창작되기 시작했다. 인류에게 이미지는 문자보다 더 익숙한 매체였고, 실제 다양한 이미지가 창작되었으나 만화의 형식이 탄생하기까지 물적 토대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석기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인류가 그려 온 무수한 그림은 대개 단일한 이미지였으며, 만화처럼 칸과 프레임을 쓰면서 그림이 연결되고, 이야기가 있는 방식의 이미지는 이미지와 문자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각각의 이미지와 문자로 창작된 방식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였다.

만화는 기존의 이미지가 표현하지 않거나, 못했던 방식으로 대상과 상황을 표현했다. 고전적 의미의 이미지는 어떤 한 순간을 고정시키지만, 만화는 이미지의 한 순간을 고정시키는 방식은 같아도, 그것을 과장, 축소, 왜곡, 변형시키면서 연속으로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만화는 다시 카툰, 코믹스, 그래픽노블 같은 여러 장르로 나뉘는데, 그래픽노블은 카툰, 코믹스보다 가장 늦게 나타난 장르다. 그래픽노블과 코믹스는 형식에서 차이가 없지만, 그래픽노블이 작가의 의도와 의지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반영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작가주의 만화'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 '예술영화'나 '작가주의 영화'로 불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 책 '여행'은 프랑스의 작가 에드몽 보두앵의 작품인데, 무엇보다 붓으로 그린 그림이 훌륭하다. 매너리즘에 빠진 주인공 시몬이 가족과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에 가서 겪는 새로운 경험과 시간의 흐름, 시몬의 의식의 변화를 몽환적인 기법과 함께 그린 만화인데, 붓으로만 그린 선이 마치 동양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여행'이 실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메타포로써의 여행'이라고도 했다. 즉, 작가의 상상이라는 말인데, 작품에서도 사실묘사보다는 환상, 환각의 장면이 처음부터 나온다. 작품의 시작부터 45쪽, 올리비에를 만날 때까지 주인공은 말도 거의 하지 않고, 이미지는 지극히 환상적이며, 비현실적인 풍경과 주인공이 환상에 시달리는 장면으로만 그려진다.

이때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픽노블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한데, 지문 없거나 극히 최소한만 사용하면서, 이미지로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것은 문학(노블)과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 작품에서 '노블'은 '그래픽'만큼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주인공 시몬은 가족과 이야기를 하면서 머리 형상이 바뀐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머리 위에 올라간 것으로 보이지만, 이내 머리에 철창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는 시몬의 머리에 쓰인 철창을 볼 수 있지만, 만화 속 인물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 이것은 2차원 이미지로 드러낼 수 있는 한계이자, 독자와 만화의 인물을 구분하는 상징적 장치다.

시몬은 집을 나와 회사로 출근한다. 그가 거리를 걸을 때, 도로의 이미지는 시몬의 머리와 연결된다. 건물, 비둘기, 하늘, 나무, 지하도의 천정, 지하철의 천정 등 그의 머리는 마치 열려서 기이하게 변형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다 전철 안에서 그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그들이 모두 죽은 사람으로 보이는 환각을 겪는다. 그의 머리에서 해골이 쏟아져나오고, 사람들의 머리가 해골로 바뀐다. 시몬은 지하철을 뛰쳐나와 회사로 들어가지만, 이내 뛰쳐나온다. 그는 거리를 걷다 센느강으로 나와 우연히 어떤 여성을 만나 고양이가 죽었냐고 묻는다. 그러자 여자는 고양이가 없다고 말하고, 오늘 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한다. 남편, 딸, 개, 일, 모두. 그러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시몬은 이 여자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냐고 묻는데, 여자는 '사랑이 뭐'냐고 되묻는다. 

시몬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왜 뜬금없이 처음 만난 여자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냐고 묻는 걸까. 여자와 헤어지고, 시몬은 다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직원인 프랑수아즈에게 '나랑 사랑을 나누고 싶지 않'느냐고 다시 묻는다. 이것은 작품의 뒷부분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는 걸로 보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시몬의 충동은 작가의 상상에 불과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요소이거나, 시몬의 피폐한 정서가 자신을 방기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해석인데, 이건 오로지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시몬은 홈리스 노인을 만나 그에게 돈을 준다. 노인은 여행 떠나기 좋은 날이라며 자신은 술을 마시는 것이 곧 여행이라고 말한다. 시몬은 거리를 방황하다 열차를 타고 낯선 곳에 내린다. 히치하이킹을 하다 만난 올리비에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게 되고, 이때부터 시몬과 올리비에는 '정상적'인 대화를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뛰쳐나왔다. 올리비에도 우여곡절을 겪고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인형극을 하고 다닌다. 시몬도 올리비에를 도와 인형극 조수로 일하며 며칠을 보내다 올리비에의 친구인 마르크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마르크의 여동생 레아를 만나고 첫눈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이제 이야기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처음 시몬이 환상과 환각을 보면서 시작했던 이야기는 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로 장소와 환경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시몬이 놓인 환경-가족, 직장, 도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마르크는 시몬에게 자신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자고 제안하고, 시몬은 동의한다. 두 사람은 바다를 항해하고, 마르크가 갑자기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걸 시몬이 저지한다. 마르크는 애인 이자벨이 폭풍우에 휩쓸려 죽은 장소에서 죽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마르크는 살았지만 곧 날씨가 거칠어지면서 배가 침몰하고, 시몬이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상황에서 마르크가 다시 시몬을 살린다. 이런 극적 장치는 작위적으로 느껴져 진정성이 떨어지는데, 작가는 시몬이 죽을 고비를 넘겨 새로운 삶을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작위적인 설정을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시몬은 마르크와 헤어져 선술집에 갔다가 시비가 붙고, 거리에서 습격 당해 얻어맞는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고, 곧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제 시몬의 공황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시몬은 우연히 홈리스 노인을 만나는데, 그 노인은 파리에서 봤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이 평생 한번도 이 마을(라로셀)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라로셀은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400km 떨어진 항구 마을로 인구는 약 8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빈털털이 시몬에게 노인은 적선을 베풀고, 한 노인을 소개한다. 시몬은 소개받은 노인의 집을 찾아가 임시 거처를 마련한다. 노인은 방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한다. 노인은 요정의 친구로 평생 아름다운 사랑을 했고, 사랑을 멈추자 갑자기 늙었다고 했다. 시몬은 다시 레아를 만나고, 두 사람은 노인이 빌려준 방에서 섹스를 한다.

레아는 시몬에게 산에 오르자고 제안하고, 두 사람은 산을 올라 다시 섹스를 하고, 레아가 먼저 산을 내려간다. 레아는 시몬에게 산에 조금 더 오래 남아 있기를 권하는데, 혼자 산에 남은 시몬은 아주 멀고 먼 과거, 지구가 생기고, 공룡이 뛰어다니고, 원시인류가 사냥을 하고, 시간이 거슬로 오면서 중세, 근대, 현대의 역사 속을 경험한다. 시몬의 환상은 그가 자신의 삶을 객관으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역사 속에 투영, 투사하는 것은 자기를 성찰하는 자세이며,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은 결코 자살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시몬은 산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이것도 작위적인 느낌이다. 이미 바다에서 빠져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다시 산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위험을 그려 넣은 것은 작가의 치기가 보이는 장면이다. 산을 내려온 시몬은 올리비에를 만나고, 그와 고성에서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낯선' 집으로 돌아온다.

 

이야기의 구조는 좋지만, 주인공 시몬이 겪는 상황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그가 회사와 집을 단조롭게 오가는 것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가족과의 단절과 회사에서의 매너리즘이 모두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그의 태도는 매우 이기적이다.

결국 회사에서 무작정 뛰쳐나와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목적지도 없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이동 인형극장 일을 하는 올리비에를 만나 그의 집까지 가고, 그곳에서 처음 만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누군들 이런 여행을 꿈꾸지 않을까. 시몬만이 특별한 사람도 아닐테고, 그의 가족들도 온통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텐데, 마치 자신만이 유독 특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듯한 과도한 설정이 조금 불편하다. 

여기서는 주인공 시몬 한 사람의 시각과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의 가족 아내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시몬의 아내와 아들은 갑자기 사라진 남편과 아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또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입장도 뒷부분에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독자는 시몬의 상황은 이제 충분히 보고 이해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시몬의 아내와 아들 피에르에 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편, 아버지의 존재는 자신에게 무엇일까를 깊이 고민하게 되고,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부재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모자의 삶은, 정작 사라지길 원했던 시몬보다 더 절실하고 안타까운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시몬이 가족을 떠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려고 할 때, 그는 집과 가족을 '낯선 집'이라고 말한다. 시몬에게 가족은 이미 피붙이의 애틋함이 사라진, '관계'로서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은 관습적이고 당연한 클리셰이다. 너무 익숙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 '가족'을 낯설게 느낀다는 건, 자기 존재와 가족을 분리하고, 객관화하며,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고, 또한 몽환적이었던 것처럼, 주인공 시몬이 실제로 여행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시몬의 상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시몬이 겪었던 모든 시간과 공간이 오로지 '상상'이었더라도 시몬은 가족과 일정한 거리가 벌어진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시몬 뿐 아니라 아내와 아이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작품은 훌륭한 그림과 함께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 기법의 독특함으로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펜이 아닌, 붓으로 그린 그림은 부드럽고, 선은 거친 듯 하면서 미려하다. 한 페이지에 여섯 칸을 기본으로 하고, 다양한 변형을 주었는데, 선의 굵기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여백과 생략을 과감하게 하면서, 드러내야 할 부분만 충실하게 묘사한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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