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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만화를 읽다

죽도 사무라이

by 똥이아빠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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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도 사무라이

작가 : 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에이후쿠 잇세이(永福一成)

출판 : 애니북스

 

모두 여덟 권으로 된 장편 만화. 그동안 출간했던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과는 또 다른,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주는 시대극화.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 절묘한 선과 연출로 만화의 미학을 한단계 높였다.

일본이 '만화의 나라'로 불릴만큼 형식가 내용에서 다양한 작품과 작가가 존재하고, 일본만화가 세계 만화계와 작가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은 걸 감한하면, 일본 만화시장의 다양성은 퍽 부럽다.

그 가운데서도 마츠모토 타이요는 특별한 존재다. 그의 손을 거쳐 나오는 작품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도, 마츠모토 타이요의 시각은 여느 작가들과 확실하게 다르고, 독특하며, 놀랍다. 그가 '천재 작가'의 소리를 듣는 이유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그림은 타이요가 그렸지만, 오리지널 스토리는 에이후쿠 잇세이(永福一成)다. 잇세이도 만화가인데, 마츠모토 타이요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잇세이는 와코(和光)대학 문학부 예술학과를 졸업했고, 대학 시절 만화연구회에서 타이요와 함께 활동했다. 타이요는 대학을 중퇴했지만 잇세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잇세이가 만화스토리를 먼저 쓰고,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림을 그려 여덟 권으로 '코믹'에서 출판했다. 만화를 출판하고 잇세이는 만화의 이야기를 다시 소설로 써서, 소설 '죽도 사무라이'는 '쇼가쿠칸'에서 네 권으로 출판했다.

 

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장군이 되어 '에도 막부'가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던 17세기 초, 지금의 도쿄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을 무너뜨리고, 어지러운 정국을 안정하며, 전쟁과 폭력이 휩쓸던 일본에 평화와 안정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낯선 마을로 스며들듯 들어온다. 새벽에 오줌을 누러 나온 칸키치는 여우의 모습을 한 사람을 발견하고 오줌을 지린다. 세노를 본 고양이는 그를 가리켜 '시나노 사투리를 쓰는 사무라이에, 바람에서 비 냄새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고양이의 직관은 정확할까. 시나노는 에도(도쿄)에서 서쪽 끝에 있는 나가노현의 작은 지역인데, 나가노와 니가타현의 경계에 있다. 만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세노는 시나노에서 에도까지 오는데 몇 달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급한 일이 없으니 길을 줄이면서 쉬엄쉬엄 왔을 것이고, 그가 도착한 때가 1월인 걸 보면, 그는 적어도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출발했으리라. 

하지만 그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사무라이가 나타나 결투를 신청한다. 세노가 에도에 들어올 때는 진검 '쿠니후사'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만, 사무라이들과 결투할 때 뺀 칼은 '다케미츠(대나무칼)'이었다. 칸키치는 사무라이 세노의 모습을 처음 본다.

에도에서 두어 달의 시간이 흐르고, 세노는 에도에서 유명한 도장 일심관의 사범 대리 이소자키 요헤이타에게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청한다. 이소자키는 에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목검으로 겨룬 대결에서 세노가 이기자 일심관 관주 미야카와 토진사이는 세노에게 큰 돈을 준다.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소자키는 일심관을 떠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노는 이소자키의 운명을 바꾼다. 세노가 이소자키를 찾아가 대결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소자키는 일심관 주인 미야카와 토진사이의 딸과 결혼해 도장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세노는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이 바뀐다는 걸 생각했을까,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과 치기였을까.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 세노는 '활터'를 찾아가 칸키치와 활을 쏘다 그곳에 있는 여성이 동향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지난번 도장에서 받은 돈을 모두 내고, 세노는 동네에서 나흘동안 사라졌다 나타난다.

세노는 우연히 다이자부로를 만난다. 그는 쇼군의 직속 무사 가문의 셋째 아들로, 말을 타고 다니며 시종에게 긴 창을 들고 다니도록 한다. 전쟁과 전투가 거의 없어 사무라이는 태평성시라고 한다.

세노가 사는 집의 주인이자 지금의 경찰 임무를 맡는 오카히키의 우두머리 요자에몬은 부하로부터 연쇄살인에 관한 정보를 듣는다. 

 두 번 읽었다. 처음 볼 때보다 더 진한 감동이 있다. 세노 소이치로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이 풀려가는 장면은 감동과 전율이 인다. 소설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상태다. 소설도 퍽 기대된다.

좋은 만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작가가 표현한 미세한 상징들, 이미지, 농담을 네모 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활자만으로 되어 있는 문학작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만화만의 특징이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는 작은 네모 칸에 등장하는 인물들 뿐 아니라 동물, 풍경도 예사롭지 않은데, 인간 외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의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양이와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고, 사람과 고양이, 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 세노와 그의 보검 쿠니후사의 이야기는 이 만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보검 쿠니후사는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특이하게도 한쪽 눈을 잃은 여성이다. 왜일까? 쿠니후사는 세노보다 나이가 많다. 그의 아버지 또는 그 이전부터 만들어져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보검인데, 일본도의 장인이 만든 이 칼은 당대에서도 보기 드문 칼이었다.

보검은 당연히 의인화할 수 있으며, 주인공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노가 보검 쿠니후사를 전당포에 맡길 때는 비장한 심정이었다. 세노는 자신에게 피의 냄새를 쫓는 악귀가 씌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의 손과 같았던 칼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키쿠치라는 인물은 매우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세노와는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세노와 마지막에 한 판 대결을 펼치게 된다. 키쿠치는 당대 최고의 검객이지만,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은 매우 비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노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되던 그의 무술은,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벨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의 칼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은 분노와 증오, 원한 같은 피비린내나는 감정들 뿐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로 살아가게 된 그의 내력은 그의 부모로부터 시작한다. 부모를 죽이는 것으로부터.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살아 있는 듯, 자연스럽고 또 개성을 갖고 있어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사람들은 대개 선량하고 착하게 살아가지만, 에도 시대가 그렇듯 인간말종도 많고, 힘과 권력을 믿고 시건방을 떠는 자들도 많다.

그런 가운데 세노는 마음 속에는 깊은 슬픔을 묻고, 어린이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살아가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삶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세노의 시간을 쫓아가는 만화는 슬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한 권, 한 권이 모두 마치 일러스트 작품집처럼 높은 완결성을 갖고 있으며, 생략과 압축, 다양한 시각(카메라 워킹)은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과 현실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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