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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언더그라운드

by 똥이아빠 201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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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 그라운드 - 10점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 미키 마뇰로비치 외 출연/대주미디어


좋은 영화는 이렇게 만나게 되나 보다. ‘언더그라운드를 볼 생각을 하고 전철을 타고 와서 매표소 앞에 섰을 때상영시간이 겨우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했다정확하게 맞춘 시간과 마침 남아 있는 표이렇게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미 각종 정보망을 통해 언더그라운드가 95년 깐느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이 영화를 만든 에밀 쿠스타리차 감독은 세계의 유명 감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거장이다그가 만든 영화는 모두 화제작품이어서 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흥행에도 상당히 성공한 것들이다그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980(26) ‘돌리벨을 아시나요’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1985(31) ‘아빠는 출장중’ 깐느영화제 그랑프리

1989(35) ‘집시의 시간’ 깐느영화제 최우수감독상

1993(39) ‘아리조나드림’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1995(41) ‘언드그라운드’ 깐느영화제 그랑프리

 

이 정도 경력이라면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뛰어난 감각과 탁월한 영화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영화는 세계의 지성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특히 이번에 개봉된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지금까지 나온 그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로서의 관심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예민하고 충격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마침내 에밀 쿠스타리차는 유럽 여론에 밀려 감독을 그만두겠다는 선언까지 하고 말았다그만큼 그의 영화가 불러온 반향이 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이에 관한 내용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이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살펴보아야 한다하나는 영화 그 자체의 미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역사적인 배경이다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언드그라운드에 대한 이해를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먼저이 영화의 미학에 관해 살펴보자이 영화의 큰 줄기는 환상적 사실주의(magic realism)’이다이 사실을 잘 모르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재미없다’ ‘너무 황당하다’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하게 된다필자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른 관객들이 하는 이런 말을 들었는데역시 사물에 관한 이해는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 영화는 매우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보여주는 이미지는 결코 심각하지 않다오히려 상당히 낙관적이고 코믹한 연출을 하고 있는데,영화의 초반에는 블랙 코미디처럼 보이다가 점차 뒷부분으로 가면서 주제의 심각성을 표현하고 있었다영화 상영시간이 2시간 52분이나 되어 다른 영화에 비해서 상당히 길었지만 정작 감독 에밀 쿠스타리차는 편집하기 전의 3시간 12분으로 그냥 내보내고 싶어했고 하고싶은 말을 다 했다면 아마 5시간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가 길어서 지루하지나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할 정도의 관객이라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것은 음악이다모든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음악인 것은 분명하지만 특히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한 작품(영화)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감독은 그 영화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특성을 부여하게 마련이다즉 영화의 색질감음악언어,의상배경카메라 워크 등이 그런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인데특별히 강조되는 경우에 그 영화의 특성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은 매우 특별하다영화가 시작되면서 집시들의 요란하고 시끄러운 음악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하지만 요란하고 시끄러운 이 음악은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신명과 함께 음악 그 자체로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또한 영화의 초반부터 시작되는 음악은 단순히 영화의 줄거리에 필요한 배경으로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시끄럽고 요란하며 정신없이 불어대는 관악기의 화음과 북의 어우러짐은 전쟁터의 포탄소리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예술창작행위는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뿐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정도로 반응을 보이게 된다이를테면 소설과 영화와 음악이 있다고 했을 때문자의 기호와 영상(이미지)의 기호와 소리(음악)의 기호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이것을 수용하는 독자(관객)는 기호에 따라 한 번의 재해석으로 충분하게 받아들이는가 하면(소설이나 음악)두 번이나 그 이상의 재해석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영화)가 있다물론 이것은 일반론이다소설이나 음악은 일반적으로 여러번의 재해석을 필요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영화도 대부분의 경우 재해석을 하지 않고도 받아들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른바 작품으로서의 영화를 만나게 되면 한 번의 재해석으로 영화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영화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지의 다양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문자의 기호는 그 기호를 해석하는데 다중적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물론 문자 그 자체가 아니라 소설이 가지고 있는 주제와 흐름인물의 성격활동언어 등을 총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지보다 명료한 것은 사실이다소리(음악)의 기호 역시 작곡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휘자의 의도,독주나나 협연자의 의도 등이 연주할 때마다 다를 것은 분명하지만 음악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가 있으므로 복잡한 해석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영화만은특히 예술영화만은 이미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관객들이 이 언어를 수용하고 해석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갖게 된다예술영화에 관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난해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술영화의 난해함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것은 예를 들어 또스또예프스키의 소설이 어려우니까 좀 더 쉽게 쓰라는 말과 같다관객이 영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영화를 관객의 수준에 맞게 끌어내리라는 것은 어패가 있다.

이 영화 언더그라운드에서 사용된 음악표현방식은 감독의 언어이다감독이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개성있는 언어가 영화의 영상과 음악으로 표현되는 것이다블랙 코미디와 과장법이 사용된 것도 전쟁이라는 추악한 인간의 행동을 비꼬기 위한 수단이며 환상으로 보여주는 희망의 모습들은 고통 속에서 인간이 바라는 소박한 꿈과 같은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또 보고 나서 한결같이 느낀 감정은 영화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영화를 영화답게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수천억을 들여서 만든 헐리우드 영화들은 오락성만 강조했을뿐 결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잘 만든 영화의 본보기 가운데 한 편으로 이 영화 언더그라운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영화답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독 에밀 쿠스타리차는 출연자들에게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었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하다못해 트럼펫을 부는 집시 한 명이라도 그 몸짓과 얼굴 표정이 근사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마치 흑백영화를 본듯한 느낌이 들었는데그만큼 화면 이미지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어둡고 무거운 톤의 영상 이미지와 시끄럽고 요란한 음악전쟁의 광기지하생활의 답답함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이 영화를 만들고나서 감독인 에밀 쿠스타리차는 유럽 여론에 밀려 감독생활을 그만두겠노라고 선언했다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에밀 쿠스타리차가 만든 영화 언더그라운드를 두고 세르비아의 선전물이라고 악평을 했다즉 학살자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면서도 미묘하고 복잡하다유럽의 평론가들이 혹평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기본 주제는 반전과 반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 내용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상징성 때문에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만일 유럽의 평론가들이 에밀 쿠스타리차를 살인자의 편이라고 비판했다면 그것은 영화의 일부를 자의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에밀 쿠스타리차 자신은 자신의 조국 유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프랑스 영화 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주장했다.

사실앞에서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을 말했지만 역사적 배경은 더할 수 없이 복잡하다이렇게 복잡하고 미묘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만든 자신의 조국에 관한 영화이니 감독 자신만큼 절실하고 복잡한 심정을 가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유고 내전은 인류양심의 실험장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민족의 분쟁은 심각하다.

영화에서 유고 내전 부분은 뒤에 아주 조금 나온다2차 세계대전독일이 유고를 침공할 때부터 시작한 영화는 1980년 티토가 사망하고 나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간의 내전까지를 전쟁의 연속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물론 현실적으로 유고 내전을 그리고 있으니 이 영화가 현실에 관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지하에 40년 넘게 갖혀 지내왔던 사람들은 유고가 분리되었는지자신이 어느 민족에 속해있는지 알지 못한다다만 독일의 침략이 계속되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좀 더 넓게 본다면 유고의 내전까지도 이 영화에서는 상징적인 전쟁으로 읽어야 한다감독 에밀 쿠스타리차가 하고 싶었던 말은 유고의 내전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광기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것이었다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과장법을 쓰고 있는데,이것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들과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들을 비웃기 위한 장치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영화의 끝부분에 갑자기 배우가 관객을 향해 진지한 발언을 한다세상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이것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본다.

영화의 마지막은 환상적 사실주의를 잘 드러내고 있다현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저세상에 가서라도 행복하고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다이 영화는 감동의 눈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또한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어서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가 현실을 얼마나 변혁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영화를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언더그라운드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1995 / 유고슬라비아)
출연 라자르 리스토프스키,미르야나 조코빅,슬라브코 스티마츠,미키 마뇰로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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