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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자유의 언덕

by 똥이아빠 201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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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유의 언덕

홍상수의 영화는 데뷔작(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제외하면 15편의 영화가 대개 비슷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그것이 감독 특유의 미장센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홍상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다. 하지만 홍상수 특유의 직설 화법이 상당히 약해졌음을 알 수 있다. 대사를 영어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우리말로 했다면 충분히 민망함을 느낄 정도의 대화로 만들 수 있었겠지만, 영어로 말하면서 우리말 고유의 느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흩어진 편지처럼 장면의 순서가 바뀌고, 관객은 바뀐 편지 내용처럼, 스스로 앞뒤의 문장을 머리 속에서 이어가듯 영화의 장면을 이어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기억과 관계가 있다. 기억은 시간의 일정한 구간을 잘라서 뇌의 피질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억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고, 심지어 자신의 기억 조차도 왜곡된 상태로 저장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부분 삭제되거나 미화되거나, 과장 또는 왜곡된다. 
편지의 내용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나는 기억이란 대개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설령 의미가 있다해도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사람의 의식과 행동을 강제한다.
영화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장면이 몇 곳 있는데, 예전에는 웃음 포인트가 민망함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래도 '재미'라는 점에서 홍상수 영화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독립영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소품 같은 일상의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영화를 통해 한국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품이라고는 해도,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 또한 홍상수 감독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별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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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일상을 포기해야 했던 권(權)(서영화)이라는 어학원 강사가 있다. 산에 들어가 요양을 한 후 몸이 회복되어 서울로 돌아오게 된 날, 그녀는 전에 일하던 어학원에 들린다. 거기에 그녀에게 보내진 두툼한 편지 봉투 하나가 맡겨져 있었다.

이년 전 모리(카세 료)라는 일본인 강사가 어느 날 그녀에게 결혼 신청을 한 적이 있다. 권은 생각할 말미를 달라고 했고, 그 다음날 거절했다. 모리는 그 직후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그가 한국에 다시 돌아와 그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모리의 편지를 어학원 로비에서 한 장 읽었고, 읽고 난 후 갑자기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졌다. 어학원 계단을 내려오다가 머리가 핑 돌아 쓰러졌고, 그때 손에 들고 있던 편지들이 계단 밑으로 떨어졌다. 흩어진 편지들을 거두어들이면서 권은 편지들에 날짜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는 편지들이 쓰인 순서를 정확히 알 도리가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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