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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아이리시맨, 미국현대사의 한 장면

by 똥이아빠 2019.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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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작품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니 놀랍다. 그것도 스콜세지 감독의 페르소나인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는 물론 알 파치노까지 등장하는 역대 최고의 작품을 극장 개봉과 거의 동시에 안방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기존 영화산업의 공식을 깨뜨렸고,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배우들의 얼굴 모습을 분장이 아닌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통해 바꿨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배우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배우가 직접 분장을 하거나 대역 배우를 써서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영화 '대부' 1편에서 비토 콜리오네 역을 맡은 배우는 말론 브란도였지만, 2편에서 젊었을 때의 비토 콜리오네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혀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 2편과 3편에서 알 파치노는 청년과 노인 역을 분장으로 해결한다. 이렇듯 배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장과 대역을 선택하며 연기했는데, 이 영화는 최초로 배우 자신의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특수효과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ILM과 마틴 스콜세즈 감독은 배우의 나이에 따른 얼굴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지 협의했고, ILM은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영화의 주인공인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는 모두 70대 노인인데, 이들은 적어도 30대 모습부터 보여주어야 했다. 배우의 모습을 과거로 돌리기 위해서는 특수카메라를 여러 대 설치해서 촬영해야 했고, 이 때문에 배우들은 연기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배우들은 실제 모습인 70대 노인으로 연기했고, 컴퓨터그래픽은 영화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나이에 걸맞는 외모-특히 얼굴-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배우의 젊었을 때 모습을 자세히 보면, 어딘가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드는데, 컴퓨터그래픽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은 미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을 영화로 재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처음 영화를 만들 때부터 사회성 짙은 내용을 소재로 선택했는데, '공황시대',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코미디의 왕', '좋은 친구들', '카지노', '갱스 오브 뉴욕',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의 영화는 미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들이다.

이 영화 역시 미국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마틴 스콜세즈 감독이 연출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고, 빛나는 영화가 되었다. 알 파치노가 연기한 지미 호파는 '전미트럭운송조합' 조합장으로, 미국노동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어느 날 행방불명이 되고,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는다. 

미국노동운동이 자본에 패배하게 되는 사건이기도 한데, 지미 호파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피아와 거래를 했고, 조합원들이 납부한 연금을 불법 사용한다. 지미 호파가 조합장으로 당선되던 초기에 전미트럭노동조합의 조합원은 10만 명 정도였지만, 이후 230만 명이 될 정도로 조합원이 늘어나는데, 조합장인 지미 호파의 능력과 역할이 큰몫을 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협상력으로 자본가와 맞섰으며, 조합원의 이익을 극적으로 확대했다. 따라서 트럭운송노동자들은 지미 호파를 전적으로 믿고 지지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미 호파를 비롯한 노동조합의 간부, 임원들은 조합원들이 납부한 조합비와 그들의 연금을 바탕으로 호화로운 귀족 생활을 했으며, 자본가와 결탁해 노동운동을 타락하게 만든 악당들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운동에 마피아를 끌어들임으로써, 미국노동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영화는 지미 호파와 가장 가까이 지낸 프랭크 시런의 시점으로 진행한다. 프랭크 시런도 평범한 트럭노동자에서 지미 호파의 최측근이자 마피아의 행동대원으로 활동하는 복잡한 인물로 진화하는데, 지미 호파를 비롯해 당시 전미트럭운송 노동조합 간부나 마피아들이 살해당하지만, 프랭크 시런은 끝까지 살아남는다. 특히 지미 호파의 실종 사건에 관해 누구보다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프랭크 시런은 경찰과 FBI의 집요한 추궁에도 끝내 입을 다문다.

마틴 스콜세즈 감독은 왜 지미 호파와 관련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미 마피아 영화를 여러 편 만들어 범죄집단의 잔혹함과 범죄자들의 배신, 인간성, 타락한 인성을 비판한 감독은, 지미 호파를 둘러싼 사건의 본질도 그런 속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노동운동은 타락했고, 범죄집단인 마피아와 결탁했으며,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노동자를 배신했다. 미국은 자본(가)이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끌어들여 노동운동을 절멸하는 과정이 있었다. 진보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운동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살해하고,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파업은 파업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이나 조직,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해서 노동자의 단결권을 처음부터 짓밟아 버렸다.

어쩌면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영화로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감독의 제2의 페르소나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는 나올 수 있지만, 이 영화처럼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같은 최고 배우가 함께 등장하는 영화는 이 영화가 마지막일 듯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마지막이어서 그 의미와 가치가 더 높기도 하겠지만,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가 최고조에 달한 정점의 영화이기 때문에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동안 마틴 스콜세즈 감독이 보여준 작품의 일관된 느낌은, 조 페시가 말한 것처럼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한 객관적 시각과 감정의 거리두기였다. 인물들의 감정에 개입하지도, 이입하지도 않으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감정 없이 그들을 바라보는 냉정함이 마틴 스콜세즈 감독 작품의 특징이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 같은 뛰어난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이 영화와 별개로 감독과 세 명의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다큐멘터리도 소개하고 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영화의 기술과 제작에서 예전과 얼마나 많이 변화가 있었는지, 배우들의 연기와 호흡, 인물의 해석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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