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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일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by 똥이아빠 2022.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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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 잃고나서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후쿠는 연극연출자 겸 배우로 극본을 쓰는 아내 오토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가후쿠가 아내와 사별하는 과정은 전형적 클리셰여서 새로울 게 없다. 앞부분만 보면 정지우 감독의 작품 '해피 엔드'가 떠오른다. 아내의 불륜을 우연히 보게 된 서민기는 아내와 그의 정부를 살해한다. '해피 엔드'가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서사라면 이 작품은 그 반대의 드라마틱한 서사를 만들고 있다.
서민기가 아내와 정부를 살해하면서 완전 범죄를 만들어 내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가후쿠가 아내 오토의 불륜을 본 이후 달라지는 것이 없다. 겉으로는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이런 상황 역시 작위적이긴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하고 잘 어울리는 부부지만, 이들은 철저한 쇼윈도 부부가 아닐까. 오토가 갑작스레 죽던 날 아침, 출근하는 가후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행복하고 다정한 부부가 새삼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하는 말이 무엇이었을까. 관객은 그들의 이전 행동을 통해 미루어 짐작한다. 
하지만, 이 뻔한 클리셰는 단지 겉으로 보인 모습일 뿐, 부부의 진짜 모습은 나중에 천천히 드러난다. 이들이 왜 쇼윈도 부부처럼 살았는지, 오토가 불륜을 저지르는지, 그걸 목격한 가후쿠 역시 아무 일 없는 듯 감정의 동요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지.
 
가후쿠와 아내 오토 사이를 이어주는 건 의외로 오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 다카츠키다. 아내 오토가 죽고 2년 뒤, 가후쿠는 연극 연출을 위해 히로시마에 두달 정도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모집하고 연습을 한다. 그리고 자기 차를 운전해 줄 운전수 미사키를 소개 받는다. 
극중 극으로는 안톤 체홉의 희곡 '바냐 아저씨'가 초반부터 극 전체의 배경이 된다. 이 희곡의 대사는 영화 속 실제 상황과 맞물리면서 가후쿠가 아내 오토를 비난하는 목소리로 들리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다카츠키가 오디션을 보러 히로시마까지 온 것에 대해 가후쿠는 뜻밖이었고, 놀라지만 오디션을 보도록 하고,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역할을 부여한다. 지난 2년 동안 다카츠키는 가후쿠의 움직임을 뒤쫓고 있었고, 다카츠키가 그 말을 할 때, 가후쿠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무심하게 대응한다.
다카츠키를 호텔로 데려다주는 길에, 가후쿠는 아내 오토가 말하는 스토리의 뒷부분을 다카츠키에게 듣는다. 그 말은, 아내가 섹스를 하면서 오르가즘에 오를 때 넋이 나간 듯 말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기에, 가후쿠는 다카츠키가 그 이야기의 뒷부분을 알고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미 알고 있다.
 
리허설을 하던 다카츠키는 경찰에 체포된다. 허락 없이 사진 찍던 사람을 쫓아가 때렸는데, 그 사람이 사망했고, 다카츠키는 과실치사로 입건되고, 연극은 무대에 올려지지 못할 위기에 놓인다. 주최측에서는 다카츠키 역할을 가후쿠가 대신 해주길 바라지만, 가후쿠는 이틀의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미사키에게, 미사키의 고향으로 가자고 말한다.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의 끝에서 끝까지 도로를 달리면서 가후쿠와 미사키는 서로의 마음에 담아두었던 상처를 꺼낸다.
가후쿠와 오토 사이에 딸이 있었고, 딸은 네살 때 폐렴으로 죽었다. 이후 부부는 겉으로는 행복한 삶을 살지만, 내면에서는 영혼이 고통스러운 연옥의 삶을 살고 있었고, 오토의 불륜도 그 내면의 상처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 미사키도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자랐으며, 엄마에게 학대당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미사키를 폭행한 다음에는 다중인격으로 분열했다. 가후쿠는 미사키를 딸처럼 생각하며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다독인다.
 
가후쿠가 무대에 올리는 작품 '바냐 아저씨'는 여러 나라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배우들이 배역을 맡는데,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여러 나라 배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자 자기 나라 언어와 수어로 대사를 하는데, 이때 '언어'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가후쿠가 몹시 후회하는 장면에서도, 아내 오토를 사랑했지만, 진실한 소통을 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며, 자기의 위선과 아집이 오토를 죽게 했다고 자책한다. 즉, '말'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라는 걸 시간이 흐른 뒤에 뼈저리게 느낀다.
배우들이 서로 자기 언어로 대사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언어'는 소통에서 절대 요소가 아니다. 가후쿠와 오토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만, 정작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오토는 만들어 낸 이야기를 가후쿠에게 함으로써 자기의 진실을 간접 고백한다. 가후쿠는 연극 대사를 외우기 위해 오토에게 대본을 읽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운전하는 시간에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대본을 외운다. 이때 오토가 갑자기 죽은 이후에도 가후쿠는 여전히 오토가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듣는데, 오토의 대사는 '진짜 언어'가 아니라, 박제된 언어라는 점에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가후쿠는 미사키를 만나 진정한 소통을 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미사키에게 한다. 미사키가 어려서 죽은 자기 딸과 같은 나이라는 것도 가후쿠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기가 된다. 미사키가 겪었던 비극의 삶을 가후쿠가 듣고, 자기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개인의 비극'을 극복하고, 비극의 객관성을 인정하면서,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게 된다.
미사키 역시 가후쿠와 다카츠키의 대화를 들으며, 가후쿠가 가진 내면의 문제를 알게 되고, 가후쿠가 자기와 비슷한 비극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미사키가 자기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산사태로 죽은 엄마와 자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엄마의 폭력과 다중인격 정신병에 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은, 두 사람이 잃은 상대방, 가후쿠에게는 오토, 미사키에게는 엄마의 존재와 화해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가후쿠에게는 어려서 죽은 딸, 미사키에게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의 화해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연극무대와 자동차는 그 자체로 중요하면서, 둘 다 연극적 요소와 극적 장치로 작동한다. 영화가 '현실'이라면, 연극무대는 '허구의 현재'이며, 자동차는 '움직이는 현실'이다. 즉,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의 서사는 연극무대와 자동차(내부)와 겹쳐지거나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가후쿠는 연극연출자로, 아내 오토는 각본가로 일한다. 이들은 '연극'이라는 매체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 연극은 실제 삶이 아닌, 허구의 삶을 보여주는 장치이면서, 연극의 내용이 곧바로 현재 즉 '실제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짜여졌다. 연극배우가 하는 대사는 현실의 인물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고, 이것은 현실의 인물이 침묵하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를 갖는다.
자동차에서 가후쿠와 다카츠키의 대화는 현실의 삶에 관한 내용이지만, 오히려 매우 비현실적이고 연극적 요소로 보인다. 이들은 진실을 말하려 하지만, 결코 진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가 진실하다고 평가하는 건 관객의 입장인 운전수 미사키의 몫이다. 
또한,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까지 열도를 가로지르는 자동차 여행에서, 가후쿠와 미사키는 자신이 경험한 실제 삶을 대사처럼 말한다. 자동차는 연극무대의 연속이며,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연극대사이면서, 실제의 삶을 독백하는 장면으로, 자동차가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로 가는 과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과거의 시간으로 이동하면서, 후회했던 과거의 삶을 마주하는 과정이다. 이때 가후쿠와 미사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비극의 평범성'을 인식한다.
 
아내를 죽였다는 자책, 엄마를 죽였다는 자책이 결코 완전히 사라질 수 없으나, 그런 괴로움과 자책을 안고 끝까지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슬픔과 괴로움과 후회와 자책이 마음에 쌓이는 것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후쿠와 미사키처럼 솔직하게 인정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내서 다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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