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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벤 휘틀리의 두 작품, '프리 파이어'와 '킬 리스트'

by 똥이아빠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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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휘틀리의 두 작품, '프리 파이어'와 '킬 리스트'
 
페이스북 친구가 소개해서 봤다. 감독도, 작품도 처음이다. 첫 영화는 '프리 파이어(Free Fire)'. 저예산 영화로 B급 영화의 분위기와 연출을 의도했다. 불과 700만 달러 제작비로 90분짜리 장편 영화를 찍었으니 제작 환경이 열악한 건 당연하다.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 '저수지의 개들'이 떠오른다. 폐쇄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불신하고, 총질하다 결국 다 죽게 되고, 마지막에 살아남아 탈출하는 한 명도 경찰차 싸이렌 소리를 들으며 체포된다는 설정까지도 같다.
두 작품을 단순 비교하면 '저수지의 개들'이 단연 뛰어난 작품이다. 이 영화 '프리 파이어'는 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못한) 작품이다. 2017년 12월에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했으나 관객은 매우 적었다.
'저수지의 개들'과 비교하면, 시간의 흐름이 단순하다. '저수지'는 현재(레스토랑)-출발-시간 점프-현재-과거-현재-과거-현재의 순서로 교차 편집하면서 등장인물의 행동과 범행 이유, 과정이 드러나고, 그 안에 잡입경찰이 있음을 관객은 알게 된다.
 
반면, 이 영화는 현재,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전부다. 인물에 관한 설명도 없고, 무기 거래를 하는 배경도 나오지 않는다. 무기를 파는 사람, 무기를 사는 사람이 만나 총과 돈을 확인하고 거래를 끝내면 되는 단순한 상황인데, 감독은 여기에 변수를 하나 넣었다.
무기를 사는 쪽은 IRA에 속한 인물로, IRA는 아일랜드 독립투쟁에서 무장투쟁을 옹호하고 영국과 전쟁을 벌이는 무장단체다. 크리스와 프랭크는 IRA 조직원이며, 이들이 미국에서 무기를 구입해 아일랜드로 보내는 임무를 맡았다. 영화에서는 이런 설명이 전혀 나오지 않으므로, 정치적 배경을 모르면 그저 범죄자들끼리 총질하는 걸로만 보인다.
크리스와 프랭크는 양쪽을 소개하고 거래를 중개하는 브로커 저스틴과 오드를 앞세워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 크리스와 프랭크는 총을 구입하면 운반할 사람으로 스티보와 버니를 부른다. 이들이 모인 곳은 미국 보스턴의 외곽, 폐공장 건물 내부다. 총을 판매하는 쪽은 버논과 마틴이고 마이크로 버스를 운전하는 해리와 고든이 있다.
 
사건은 전혀 엉뚱한 데서 시작한다. 총기 밀매 자체가 긴장감 높은 현장이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 경찰의 함정수사일 수 있다는 의심을 버논과 마틴은 하고 있으며, 총을 구입하는 크리스와 프랭크 역시 자신들이 원하던 M-16이 아니라서 버논과 마틴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브로커 저스틴과 오드가 서로의 불신을 누그러뜨리고, 타협하라고 종용하면서 무기 거래는 타협을 통해 성사되었다. 이제 서로 돈가방과 총이 든 박스를 가져가면 되는 상황인데, 총이 실린 트럭을 운전하며 온 해리가 상대편에 있는 스티보를 보더니 갑자기 분노를 폭발하며 스티보를 폭행한다. 일행이 영문을 모르고 해리와 스티보를 뜯어말리는데, 해리가 말하길, 어제 저녁에 스티보가 자기 사촌을 성폭행해서 병원에 입원했으며,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스티보는 변명하지만 해리는 더욱 화를 내며 스티보에게 총을 쏜다.
이렇게 시작한 총싸움은 겉잡을 수 없이 상대를 향해 퍼붓게 되고, 폐공장의 잔해와 흙먼지 구덩이에서 기어다니며 개싸움으로 번진다. 한 시간 내내 서로를 죽이지 못하고, 건물 잔해 뒤에 숨어 대치하면서, 정확하지 않은 총질을 해대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적'이지 않다. 즉, 미장센도, 드라마틱한 장면도, 영웅적 행동도 없고 오로지 겁에 질린 인간들이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한심한 꼬락서니일 뿐이다.
 
감독은 폐공장에서 벌어지는 총싸움을 아일랜드와 영국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희화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은 견원지간에 비유한다. 영국의 지배를 오래 받았던 아일랜드는 다시 남북으로 나뉘어 독립을 주장하는 남쪽과 영국령으로 지배받고 있는 북아일랜드 문제로 복잡하며, 민족, 종교 문제까지 겹치면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다.
아일랜드는 18세기, 19세기에 대기근을 겪는데, 주식인 감자가 썩는 병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다. 이때 영국이 아일랜드를 돕지 않았고, 대기근 기간에 굶어죽은 사람이 100만 명,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이 100만 명으로 인구가 크게 줄었다. 이 사건으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이 영화는 그런 아일랜드 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감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프리 파이어'를 보고 이어서 감독의 다른 영화 '킬 리스트'를 봤다. 이 영화는 상당히 충격적 내용인데, 영화의 흐름이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에서는 '공포영화'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심리극'으로 봐야 한다.
영화는 매우 불편하다. 관객은 첫 장면부터 불편한 마음이 되는데, 제이의 아내 셸은 제이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제이가 통장에 돈이 없다고 불평하고, 그 많은 돈을 다 어디 썼느냐고 말하자, 8개월이나 백수로 살았으니 돈이 없는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한다. 어린 아들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친구 갈이 여자친구 피오나와 함께 놀러온 자리에서도 두 사람은 격렬하게 말다툼을 하고, 분위기는 싸늘해진다. 제이, 셸, 갈 세 사람은 서로 친구이며 제이와 셸은 부부다. 세 사람 모두 전직 군인이었고, 제이와 갈은 8개월 전, 키예프에서 돌아왔다. 
갈은 피오나를 최근에 만났는데, 그가 하는 일은 회사에서 필요 없는 사람을 해고하는 업무라고 소개한다. 제이와 셸의 집에서 피오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 뒤에 특이한 심볼을 몰래 그린다.
 
제이와 갈은 돈을 벌려고 청부살인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자기가 죽이는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는 모른다. 첫번째 상대는 카톨릭 신부로 그는 죽기 직전 웃음을 보인다. 두번째 상대는 도서관 사서이면서 스너프 필름을 찍어 판매하는 변태성욕자. 그 역시 죽기 직전 제이를 향해 '고맙다'고 말한다. 마지막 상대는 하원의원인데, 거대한 성에 살고 있는 하원의원을 죽이려 준비하다 한밤중에 이상한 종교의식을 하는 집단을 보게되고, 그들을 몰래 따라가서 집회를 보다 한 여성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는 제이가 참지 못하고 총을 난사해 가면 쓴 사람들을 죽인다.
얼굴에 지푸라기 가면을 쓴 남자와 벌거벗은 여자들이 달려들자 제이와 갈은 지하도로 도망하지만, 끝까지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갈이 먼저 칼에 찔려 죽고, 제이는 결국 그들에게 잡혀 집회 장소로 끌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은 제이 얼굴에 지푸라기 가면을 씌우고, 칼을 쥐어준다. 그리고 역시 지푸라기 가면을 쓰고, 등이 굽은 사람을 끌어내 두 사람이 싸우도록 부추긴다.
제이는 싸울 생각이 없었으나 칼을 휘두르는 곱추와 싸우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두 사람은 칼을 휘두르고, 제이는 등이 굽은 사람을 살해한다. 죽은 곱추의 가면과 옷을 벗기자 제이의 아내 셸이 아들을 등에 업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죽어가는 셸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죽는다. 제이는 충격에 빠지고, 제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제이에게 왕관을 씌워주면서 모두 가면을 벗는데, 그 속에 피오나와 살인청부를 맡긴 인물이 있었다.
 
이 영화는 제이의 욕망을 상상한 것이며, 제이의 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형식으로는 공포영화로 보이나, 제이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잡한 심리를 들여다보면 영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제이는 8개월 전, 키에프에서 복무하다 전역했다. 그의 아내 역시 그 전에 직업군인으로 복무했으며, 결혼과 함께 전역한 것으로 보인다. 제이가 키에프에서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이 영화 전체가 제이가 겪은 공포의 알레고리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키에프에서 어떤 일을 겪은 제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아내의 잔소리에 극렬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아내와 끊임 없이 불화하며, 아이와도 다정하게 놀아주지 못하는 걸로 봐서 집으로 돌아와 이미 8개월이 지났지만, 제이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가 자리잡지 못한 건 틀림없다.
극중에서 청부살인을 시작하는데, 그 발단은 친구인 '갈'이 의뢰인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하는데, 갈을 찾은 의뢰인은 갈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내용에는 나오지 않지만, 갈이 우연히 만난 여자친구 피오나와 살인청부를 의뢰한 대리인은 영화 마지막에 가면을 벗으면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즉,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피오나로부터다.
갈은 피오나를 만나 좋은 여자친구라고 소개했지만, 그 다음 날, 피오나는 사라진다. 갈은 자기를 떠난 피오나를 생각하며 슬퍼하지만, 피오나는 제이의 상상 속 인물이다. 제이는 마을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로 성당의 신부, 도서관 사서 그리고 부자이면서 권력을 가진 하원의원을 꼽았다. 이들은 제이에게 충고를 하거나, 잘난 체 하는 인물이었으며, 제이는 갖잖은 놈들이 잘난 체 하는 꼴을 보면서 모두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당의 신부는 아동 성폭행, 성추행하는 인물로 설정하고, 도서관 사서는 스너프 필름을 만드는 변태성욕자로 설정했으며 하원의원은 오컬트에 빠져 선량한 시민을 납치해 살해하는 악랄한 인간으로 설정했다. 무엇보다 제이는 늘 잔소리만 하는 아내 셸과 아버지인 자기를 잘 따르지 않고, 말도 듣지 않는 미운 아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이가 겪는 트라우마는 영화 '야곱의 사다리'에서 주인공 제이콥이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 뉴욕에서 겪는 공포의 상황과 비슷하다.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군인은 과거의 경험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공포 반응에 민감하며,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다. 
가족 살해는 현실에서도 가끔 벌어지지만, 제이는 결코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살해한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른 악한들이며, 그들은 죽어도 싼 범죄자들이었다. 아동 성추행범 신부, 스너프 필름 제작자이자 변태성욕자 도서관 사서, 오컬트 신봉자이자 살인자인 하원의원이 모두 그런 인물이고, 제이는 이들을 죽이면서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가족을 살해하는 건 다르다. 비록 상상일지라도 아내와 아이를 살해한다는 건 제이의 양심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꼴보기 싫은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두 사람을 한꺼번에,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이는 방법은, 모르는 사람처럼 만드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커다란 포대자루 같은 옷을 뒤집어 쓰고, 곱추처럼 하고 나타난 인물은 혐오스럽게 보인다. 그가 제이를 죽이려 덤비자 제이는 저런 인간이라면 나쁜 짓을 많이 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죽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를 부추기는 건 상상 속의 애인 피오나이며, 돈을 주는 제이의 상급자다. 네가 번 돈을 마누라와 아이가 다 쓰고 있잖아? 안 그래? 그들이 없으면 제이 자네가 얼마나 풍족하게 살 수 있는데, 왜 마누라하고 아이를 그대로 두는 건가? 제이의 상급자는 이렇게 말한다고, 제이는 상상한다. 제이가 좋아하는 상상의 인물 피오나는 아내 셸처럼 잔소리도 하지 않고, 언제나 친절하며, 웃는 얼굴이다. 아내의 잔소리에 질리고, 악다구니에 피곤한 제이는 아내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아들을 죽이자 피오나와 상급자는 가면을 벗고 제이에게 왕관을 씌워준다. 이제 제이는 두려울 것도, 부러운 것도 없는 최고의 존재가 되었다. 그는 오컬트 집단의 왕이 되었고, 모든 걱정과 공포,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
그러면 제이는 행복할까.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제이 자신이 죽인 마지막 사람이 아내와 아들이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충격으로 얼어붙은 제이의 모습을 보면, 그가 결코 이런 상황을 바라거나, 즐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상상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된다고 가정하면, 제이는 자기 내면의 공포를 몰아내려다 더 큰 공포의 늪에 빠져 허우적될 거라는 걸 암시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제이가 상상한 결과가 현실이 되었을 때, 현실에서 겪는 공포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며, 현실의 공포와 상상의 공포 속을 반복하며 헤어나지 못하는 제이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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