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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도그빌

by 똥이아빠 202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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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 이 작품 역시 감독 특유의 특징이자 장점인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물리적 공간의 미장센과 서사의 구조가 알레고리로 통합,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처음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낯선 풍경에 우선 당황한다.

형해화(形骸化)된 마을은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고, 역사 속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무대는 주로 연극에서 좁은 무대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하지만, 영화에서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은 영화를 연극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영화의 내적 서사를 위한 필연적 장치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형해화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개인'이 아니라 실존했었던 무수한 '인간'의 대표이자 평균인 아이콘이다. 주인공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이 마을에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레이스는 누군가에게 쫓기다 '도그빌' 마을에 숨어든다. 그레이스의 존재는 어느 날 불쑥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신화적 존재로서의 그레이스는 '인간'이 만들고, 불러낸 '신'을 상징한다.

 

'도그빌'은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드러나는 제목이다. dog + vill 즉, 개와 마을을 결합해 '개같은 마을'의 의미를 갖는데, 이것은 '도그빌'에 사는 주민들 - 이 주민들은 곧 '인간'이자 '인류'를 상징한다 - 을 의미하면서, 한편으로 마지막에 살아남는 '진짜 개'를 의미하기도 한다.

'도그빌'은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에서 '소돔과 고모라'인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신이 노여워해서 소돔과 고모라를 모두 불태웠고, 지극히 선량한 사람인 롯과 그의 가족은 살려주겠다고 말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도그빌'의 알레고리는 성경의 신화에서 온 것이고, 그것도 구약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 재해석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 받드는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는데, 사실 이 두 종류의 문서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도, 관련도 없다고 봐야 한다. 유대인은 '구약'만을 믿으며,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고, 이슬람은 '구약'과 '신약'의 존재를 긍정하면서도 '꾸란'을 거의 유일한 교재로 삼고 있다.

기독교도들은 '구약'을 통해 분노하는 신, 징벌하는 신, 감정 기복이 심한 신을 만난다. 구약의 탄생이 농경시대 즉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기 전부터의 삶을 기록한 것이기에 초기 집단생활을 하던 인류의 지도자는 엄격한 규율로 이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기에 '절대적 존재'인 '신'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반면 '신약'은 '구약'에 등장하는 '절대적 존재'가 아닌, 신의 대리인으로 '인간'을 내세웠다는 점이 다르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정주 생활을 통해 이미 일정한 수준의 물적 토대를 이룬 인류는 '신'의 존재를 좀 더 세련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신의 목소리를 자연에서 거칠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로, 인간 사회의 합리적 기준에 따라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도그빌'의 진행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그레이스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그레이스를 마을에 머물도록 배려한다. 주인공의 이름 그레이스(Grace)는 '신의 은혜'를 뜻한다. 즉, 신이 인간에게 내린 은혜로운 존재는 기독교에서 '예수'를 말한다. 

예수의 존재는 인간이 저지른 '원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인간을 죄에서 구한 존재인데, 그렇다고 예수가 무조건 인간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신약'보다는 '구약'의 신에 더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레이스는 마을 주민의 배려로 도피생활을 이어나가지만, 마을 주민들이 온전히 선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레이스를 숨겨준 데 대한 보답을 받으려 했고, 마을 주민들의 요구는 차츰 정도가 심해진다. 임금을 반으로 깎고, 노동 시간을 늘리며,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해야 하고, 여성들은 그레이스를 질투하고, 남성들은 그레이스를 성폭행한다.

마지막에는 현상금이 걸려 있는 그레이스를 마피아에게 팔아넘긴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가 어디까지 확장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레이스가 마을주민에 의해 점차 파괴되어 가는 과정은 종교적 타락과 함께 인류 역사에서 서양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아 착취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레이스가 마피아의 손에 넘겨지기 전까지, 그는 마을주민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려 몸부림치고,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그러다 결국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자 '도그빌'을 탈출하려 하지만, 그레이스에게 돈을 받고 트럭에 태운 뒤 다시 마을로 돌아와 그레이스를 비참하게 만든다.

마을주민들은 그레이스의 목에 개목줄을 묶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은 과거 서양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흑인을 납치해 목에 쇠사슬을 묶어 팔아넘긴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그레이스는 '백인'이며,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을 상징한다. 백인이자 '신'이 인간에 의해 목에 개목줄을 하고 끌려다니는 설정은 백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고발이자 강렬한 풍자다.

 

마을주민이 현상금을 보고 그레이스를 마피아에게 팔아넘긴 것은 '신약'에서 유다가 은 30냥을 받고 예수를 빌라도 총독에게 팔아넘긴 것에 비교할 수 있는데, '신약'의 정치적 해석은 일반 해석과 다르지만, 여기서는 '인간'이 더 이상 '신'을 섬기지 않고, 인간의 오만방자하고 타락한 상황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신'이라는 존재를 필요할 때는 받아들였다가, 자기들이 어느 정도 문명을 이루고, 도시를 세우고, 먹고 살만해지자 '신'의 존재를 폐기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폭력적인 방식으로.

 

'인간'(마을주민)은 황금의 유혹(현상금)을 쫓아 '부드러운 신'인 그레이스를 폭력적으로 거세하고, 그레이스를 마피아(폭력적인 신)에게 넘긴다. '인간'은 더 큰 은혜와 혜택을 원했으며, 물질적 풍요가 다른 어떤 가치에 우선하고 있었다. '인간'이 그레이스를 착취한 유일한 목적은 '물질적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남성들이 그레이스를 성폭행한 것 역시 역사적으로 남성의 물리적 힘과 폭력으로 '가부장' 질서를 구축하고, 여성을 물질화, 대상화, 수단화, 상품화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서사가 인류 역사의 초기를 풍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꾀에 넘어가게 되는데, '부드러운 신'인 그레이스를 제거하고, 폭력적인 신을 불러오면서 '인간'은 파국을 맞는다. 타락한 인간은 물질의 풍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윤리와 도덕을 버렸으며, 천륜마져도 내쳐버린다. '신'은 인가에게 여러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인간은 기회를 놓쳤고, 파멸을 향해 질주했다.

그레이스를 찾은 마피아 두목은 그레이스의 아버지(신)였고, 그레이스는 자기가 인간 세계에서 살며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지만,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고백한다. 이때서야 그레이스가 과거에는 진정 '부드러운 신'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렇게 난폭한 신인 아버지를 반대하고, 아버지의 폭력을 거부하며, 인간을 위해 '지상에 내려와' 인간을 도우려 했던 그레이스의 의도는 인간의 처절하고 악랄한 배신으로 산산조각난다.

 

사랑과 믿음으로 무장한 그레이스의 선의와 의도가 인간의 악행으로 파괴되면서, 그레이스는 자기가 믿었던 신념이 박살나는 걸 느꼈고, 자신이 당한 경험으로 미루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땅에 살아남아 있도록 보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한다. 그레이스는 아버지의 의견 - 개(모세)를 죽여 거리에 매달아 놓자 - 보다 더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인간(마을주민) 모두를 학살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부하(천사)들이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을 그레이스는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다. 인간은 절멸되어야 할 존재들이라는 것을 각인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살아남는 동물은 자기의 밥을 나눠준 개, 모세 뿐이었다. 모세는 동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지도자이자, 신(구약의 신)과 직접 대화한 유일한 제사장이다. 모세를 살려둔 것은, 그가 유일하게 신을 알아봤고, 앞으로도 살아남은 인간을 이끌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죽고 '개'의 존재인 모세가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저지른 악행의 결과이자 인간 존재의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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