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유럽영화

그리고 내일은 온 세상이

by 똥이아빠 2021. 5. 9.
728x90

그리고 내일은 온 세상이

 

모처럼 독일 현대영화. 독일영화는 뉴 저먼시네마 시기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다양한 독일영화를 보기 어렵다. 오래 전, '프리츠 랑'의 작품 'M'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도 '세계영화 100'에 반드시 꼽히는 영화들이 독일영화에는 여러 편 있다. 

빔 벤더스의 작품 '파리, 텍사스'는 세 번쯤 봤는데, 처음 볼 때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받았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 영화언어를 잘 모르고 봤을 때와 시간이 흘러 나 역시 조금은 배운 게 있어서 영화를 다르게 본 영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는 현대 독일의 사회 상황을 그리고 있다. 독일은 현대사에서 알 수 있듯, 1차,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다. 두 번의 세계 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잃게 만들고 인류의 문명을 파괴한 것은 어떤 것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전쟁범죄였다. 게다가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까지 했으니 집단학살의 범죄까지 영원히 역사에 기록하게 된 것이다.

전후 독일은 폐허에서 다시 시작해 '라인강의 기적'을 일궜고, 분단되었던 동서독이 통일되어 독일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독일은 전쟁범죄와 유대인학살에 관해 여러 차례 국가(총리)가 공식 사죄를 했으며, 이런 진정성이 세계 국가에 받아들여져 지금은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비뚤어진 인간들은 있기 마련이다. 독일에서도 나치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극우 파시스트 단체가 있다. 독일정부는 나치 활동을 법으로 규제, 처벌하고 있지만 극우단체와 파시스트들은 소수이긴 해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들의 활동에 근거가 되는 것은 주로 외국 이주민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에 기반하는데, 평범한 독일인들도 외국 이주민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뺐는다는 조작된 여론에 동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 과거 나치가 주장한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과 '순혈주의'가 여전히 암묵적으로 지지를 받기도 해서, 나치 극우, 파시스트들이 이런 대중의 감정에 파고 들어 극우 논리를 펼치고 있다.

 

독일의 극우 파시스트를 보면 한국의 극우 파시스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마치 하나의 집단처럼 동일시하게 된다. 세계의 모든 극우 파시스트의 특징과 공통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기독교 신도들이 많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고, 생각이 단순하며, 자기의 주관적 판단을 할만한 세계관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극우 파시스트가 된다. 한마디로, 멍청하고 단순한 인간들이라는 뜻이다.

이런 극우 파시스트들에 맞서 싸우는 반파시스트 단체도 당연히 있다. 한국에서는 극우 집단과 직접 싸우는 진보적 시민단체가 없지만, 독일에서는 급진 좌파 단체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가 극우 파시스트와 맞서 직접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내용이 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룬다.

 

주인공 루이자는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대학생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법을 공부하면서 현실과 법의 괴리를 보며 갈등한다. 법은 이론적으로 온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를 파괴하는 극우 파시스트의 행동에 어떤 제재도 하지 못하는 쓸모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루이자는 친구를 따라 진보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다. 그 단체는 겉으로는 평범한 비영리조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시민단체지만, 내부에서는 극우 파시스트와 맞서 싸우는 반파시스트 조직을 비밀로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극우 파시스트들이 벌이는 집회에 가서 반대 집회를 하는데, 루이자도 이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파시스트의 전화기를 줍게 된다. 이 사건으로 하마터면 성폭행을 당할 뻔 했지만, 동료가 구해주었고, 이들은 보다 과감하게 극우 파시스트의 집회에 몰래 잠입해 그들의 자동차를 부수고, 그들을 기다렸다가 폭행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루이자는 부상을 당한다.

루이자가 속한 단체(P81)에서도 반파시스트 활동을 두고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갈등을 일으킨다. 한국에서도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조직에서 항상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고, 이들이 내부에서 벌이는 헤게모니 투쟁으로 정작 해야 할 대정부, 대자본 투쟁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P81의 지도자이면서 급진파인 동료와 함께 루이자도 직접 물리적 투쟁에 동참한다. 루이자가 가지고 있던 파시스트의 전화기 비밀번호를 풀어 그들의 지도자인 뮐러의 거처를 알아내고, 그들을 미행해 파시스트들이 보관하고 있던 폭발물과 각종 서류를 탈취한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루이자는 점차 극단적인 감정을 갖게 되고, 자기가 배우고 있는 법이 현실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경험하면서, 반파시스트 행동은 파시스트들을 해치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극우 파시스트 집회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경찰은 파시스트들은 물론 루이자가 속한 시민단체까지도 수색, 체포를 하기 시작한다. 루이자와 동료들은 루이자의 집으로 피신하고, 루이자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루이자의 아버지 역시 젊었을 때 운동권이었으며, 심지어 감옥에서 5년 동안 갇히기까지 했다. 공부를 잘 하던 루이자의 아버지는 동료들에게 실망하고, 감옥에서 나온 뒤로는 운동권에서 빠져나와 평범한 삶을 살았다.

루이자는 혼자 총을 가지고 극우 파시스트 집회에 가서 파시스트 지도자를 암살하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고 돌아온다. 그는 다시 평화 집회에 참가하지만, 마지막에 파시스트들의 창고가 폭발하는 것으로 볼 때, 반파시스트 단체는 폭력적인 방법을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루이자가 가진 생각은 어쩌면 당연하고 옳을 수 있다. 극우 파시스트가 세상을 망치고, 문명을 파괴할 것이라는 건 우리도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루이자는 자신이 옳고,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파시스트들에 대한 테러를 하면서, 자신도 파시스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괴물과 싸우다 보면 괴물을 닮아간다는 말도 있지만, 민주주의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행동이 파시스트들과 똑같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에서 폭력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경계한 것은 아니다. 우리도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놈을 직접 암살했고, 전투도 벌였다. 폭력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폭력은 옳지 않다'는 일반적, 보편적 주장을 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이거나 회색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폭력을 쓰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민주주의자들의 과제인 것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맞서 독재철폐,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거리에서 전투경찰의 최루탄에 맞서 싸울 때, 학생과 노동자, 시민은 '몰로토프 칵테일'을 만들어 던졌다. 그것은 국가폭력에 맞서는 최소한의 대응이었고, 시민들도 당연하게 여겼다.

8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더 이상 '몰로토프 칵테일'을 만들지 않았지만, 민주주의는 더욱 발전했다. 오히려 촛불을 들고 모여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시민의 민주주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주었고, 광우병 사태,박근혜 탄핵 시위는 세계 시민운동의 모범으로 널리 알려졌다.

지금 독일은 물론 한국에서도 극우 파시스트들이 준동하고 있다. 이들의 역겹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시민들은 큰 피해를 입고 있고, 국가의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들에 대한 제재가 보다 강력하게 발휘되기를 희망하지만,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의 역량이 그들을 외소하게 만들 것임을 분명히 믿는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유럽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그빌  (2) 2021.10.02
안티 크라이스트  (0) 2021.09.24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0) 2021.09.22
마카엘 하네케 - 하얀리본  (0) 2021.09.22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0) 2021.08.21
젠틀맨  (0) 2021.05.01
피아니스트  (0) 2021.03.15
발칸 라인  (0) 2021.01.31
매들린 매캔 실종사건  (0) 2021.01.29
스페이스 워커  (0) 202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