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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발칸 라인

by 똥이아빠 2021.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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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라인

 

전쟁 액션 영화로만 볼 수 없는 영화. 이 영화는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었어도 충분히 정의롭고 올바른 시각인 경우도 많다. 우리의 경우,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놈들을 처단하는 내용은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있다면 매국노들이겠지. 독립군이 일본군이나 정치가를 암살하고, 사살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올바르고, 민족의 양심에 따라 당연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없는 멍청이일 뿐이다. 즉,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자는 한국인의 피를 가졌어도 민족반역자인 것이다.

이런 분별력을 가지고 영화를 봐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대사의 비극에 관해 기본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내용들이 있다. 예전에 '세르비안 필름'이 갖는 정치, 역사적 함의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먼저, 큰 그림으로 유고 연방의 해체와 그 지역의 인종, 종교에 관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야 한다. 지도에서 보면, 그리스의 위쪽, 이탈리아 반도의 아드리아해 맞은 편에 붙어 있는 여러 나라가 있다. 주요 나라들로 세르비아, 보스니아, 알바니아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이 지역이 '발칸 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사이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현대전쟁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비극이 발생했다.

영화 '세르비안 필름'은 유고 연방 해체 이후 1990년대 초반, 세르비아 군대가 보스니아 시민을 학살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르비아 국적의 감독이 자기 나라 군인들이 저지른 학살을 비판하는 잔혹한 영화를 만들어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올바른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반면 이 영화는 러시아와 세르비아 쪽이 옳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세르비아는 인종적으로는 세르비아인이고, 종교는 기독교이며, 정치적으로는 구 쏘련(러시아)과 가까운 나라다. 세르비아 아래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알바니아가 있는데, 알바니아는 종교가 이슬람이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국경에서 세르비아 쪽으로 '코소보' 지역이 있다. 이 지역으로 알바니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알바니아인의 비율이 약 80%까지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제주도는 우리 땅인데, 제주도에 일본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도민의 약 80%가 일본사람으로 채워졌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고, 알바니아 사람들은 '코소보' 지역을 자치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구 쏘비에트 연방이 유지되던 시절, 유고 연방이 존재하던 시절에는 자치주가 유지되어 아무 문제 없이 서로 잘 살았다.

그러다 1989년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코소보 자치주를 인정하지 않고, 자치권을 박탈했다. 이때부터 코소보 지역에 살고 있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분리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코소보 알바니아 사람들은 '코소보 해방군'을 결성하는데, 이들이 세르비아에 비하면 소수이긴 해도, 극단적 성향을 드러내면서 먼저 세르비아 경찰을 사살해 분쟁을 일으켰다.

유고 연방 정부는 세르비아 군대를 중심으로 코소보와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 군대는 코소보에 살고 있는 알바니아 사람들을 학살했다.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침략했다는 명분으로 나토(NATO : 북대서양 조약기구) 연합군이 코소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나토는 이름이 북대서양 조약기구일 뿐, 실제로는 미국의 영향에 있는 형식적 조직이고, 미국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럽 군대를 코소보에 지원한다.

나토가 개입한 이유는 한 가지, 유고 연방군대가 코소보를 침략했고, 알바니아 시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지만, 코소보 해방군은 정규군으로 보기 어렵고, 마구잡이로 시민을 학살하는 야만적 집단으로 그려진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코소보의 수도인 프리슈티나에 있는 유일한 공항을 탈취하고 러시아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특수임무를 띈 정예부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르비아는 자기의 영토에 들어와 살던 알바니아 사람들이 자치주를 박탈했다고 분리독립을 하고, 전면전을 일으킨 것에 대해 황당하고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발칸 반도의 지난 역사가 너무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딱히 누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전쟁의 발발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쟁을 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을 이곳에서는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르비아는 1990년대 이후 두 번에 걸쳐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것은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전쟁범죄이며,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고, 변명할 수 없는 전쟁범죄다. 

이 영화는 세르비아 영토 안에 있는 코소보 지역에서 벌어진 내전에 미국, 유럽 국가가 개입하고, 세르비아 쪽에서는 러시아가 개입하는 형태로 자치하면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할 수 있었던 위험한 내전이었다. 영화는 당연히 러시아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개입으로 나토군을 몰아냈다는 설정을 담고 있어 이 영화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발칸반도의 정세를 올바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영화에서 학살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학살하는 주체는 코소보 해방군으로 설정되어 있는 산적들이다. 이들은 평범한 시민들이 타고 가는 버스를 세워 사람들을 죽이고, 여성과 아이들도 학살한다. 코소보 해방군은 알바니아 사람들이며, 이들은 이슬람 교도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러시아 정교 즉 기독교를 믿는 세르비아 사람들과 종교적 갈등을 빚고 있으며, '코소보 자치주'나 '코소보 분리독립'의 문제는 민족 분쟁이면서 동시에 종교 분쟁의 성격을 담고 있다.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므로 적군이 코소보 해방군의 잔혹함을 드러내는데 비중을 크게 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세르비아 군대가 코소보에서 저지른 학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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