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기/과학을 읽다

뇌의 진화, 신의 출현

by 똥이아빠 2022. 11. 22.
728x90

뇌의 진화, 신의 출현

 

진화론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다윈부터였고, 다윈은 신학을 깊이 공부하기도 했지만, 진화론을 공부하고, 나이가 들면서 자발적으로 무신론자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생물학은 물론 물리학, 천문학에서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들을 무수히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신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하고, 과학이 제기한 문제와 증거를 부정한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진화론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신의 존재가 없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신-특히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은 과학과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지 않거나 알려진 진화의 증거를 부정한다.

이 책은 그동안 수없이 발표된 진화이론에서도 특히 뇌의 진화에 초점을 맞추어 인류의 진화에서 뇌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뇌의 진화와 신의 출현은 인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데, 신의 존재와 창조를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책의 모든 근거를 부정할 것이지만, 신을 믿는 사람들이 부정한다고 해서 객관적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을 믿으며 과학의 증거를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거짓과 위선과 왜곡의 암흑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불행할 뿐이다. 

이 책은 뇌의 진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인류의 진화에서 뇌의 역할은 어떠한지, 뇌의 발달과 함께 이성(지각)과 자기객관화, 시공간의 감각, 죽음의 인식, 죽은 조상에 관한 제사와 예식의 발달, 조상신의 등장, 토테이즘의 발달, 절대신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인류의 뇌는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인류의 뇌 발달과 이성의 발달은 결국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에 인류가 만든 '신'의 존재를 스스로 사라지게 만들 것임을 예고한다.

 

1부 신이 만들어지기까지

 

1. 호모하빌리스: 더 영리한 자아

읽은 내용을 시간의 순서대로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포유류는 지금부터 약 2억년 전에 지구에 나타났다. 그 뒤로 1억4천만년 동안 큰 변화가 없었으며, 이 시기는 백악기, 쥐라기 같은 거대 파충류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지금부터 약 6천5백만년 전, 지구 바깥에서 날아온 소행성이 충돌하면서 거대 파충류는 절멸하고, 작은 체구의 포유류가 급격하게 진화하기 시작한다.

포유류는 다양하게 분화했고, 약 6천만년 전에 최초의 영장류가 출현했다. 이후 영장류는 수백 종으로 늘어나고 현재도 235종이 존재하고 있다. 약 3천만년 전에 신대륙원숭이라고 알려진 집단이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었고, 약 2천5백만년 전에는 구대륙원숭이가 같은 길을 걸었다. 인류와 가장 가까운 대형 유인원은 오랑우탄, 고릴라가 독자적으로 진화하면서 약 1천8백만년 전부터 분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약 6백만년 전에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조상이 침팬지에서 갈라져 나왔다.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하빌리스는 약 230-140만년 사이에 살았다고 하는데, 이들의 뇌용량은 그 전의 유인원보다 약 50% 더 컸다고 한다. 최초의 유인원 조상이 등장해서 약 4백만년이 흐르고 등장한 이들은 정교한 깬석기를 만들 줄 알았으며, 집단생활을 했다. 뇌 크기의 변화는 집단생활과 변증법적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이며, 호모하빌리스의 초기에 소수의 집단생활을 통해 협업이 발생하고, 생존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명이 늘어나고, 먹거리의 확보도 독자적 활동보다는 소수집단의 활동이 유리한 것이 경험으로 축적되어 집단생활이 쭉 이어지면서 집단생활에 필요한 뇌 활동이 뇌의 크기를 크게 만들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인류의 뇌가 왜 갑자기 커졌는지 분명한 원인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의 인류는 다른 유인원보다 똑똑했지만, '자기 의식'을 갖지 못했기에 이성이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2. 호모에렉투스: 인식하는 자아

호모에렉투스는 약 180만년 전부터 30만년 전까지 150만년 정도 존재한 인류다. 이 시기에 약 50만년 정도 호모하빌리스와 공존하던 기간이 있었고,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를 비롯해 다른 인종이 더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호모에렉투스의 가장 큰 특징은 최초로 불을 사용한 인류라는 점이다. 불의 사용은 약 79만년 전부터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으며 40만년 전에는 인류가 불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런 증거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호모에렉투스가 불을 사용했으며, 이것은 인류의 진화에서 매우 획기적이고 중요한 분기점에 해당한다.

호모에렉투스는 호모하빌리스보다 뇌의 크기가 더 컸고, 도구를 다루는 솜씨도 더 정교했다. 이들은 돌의 양쪽에 날을 세우는 돌도끼를 만들었으며, 나무창과 돌촉을 만들어 사냥했다. 이들이 집단생활을 했다는 것은 명확한 증거가 있고, 돌도끼, 돌창의 사용은 인류보다 큰 동물-들소, 야생마, 사슴, 곰, 코끼리 등-을 사냥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대형 동물의 사냥과 불을 연결하면, 이들이 동물의 고기를 불에 익혀 먹었음을 알 수 있고, 동물의 가족과 뼈를 이용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익힌 고기를 먹으면 소화가 더 잘 되고, 체중이 늘어난다. 과학자들의 실험에 의하면, 날고기만 먹인 쥐보다 익힌 고기를 먹은 쥐는 몸무게가 평균 29% 더 증가했다고 한다. 불에 익힌 고기는 세균과 기생충을 죽이고, 먹기 편하며, 맛도 더 좋았기 때문에 호모에렉투스의 체구는 이전 인류보다 더 컸다. 

불은 인류가 추운 곳에서 견딜 수 있도록 했고, 다른 동물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으며, 음식을 익혀 먹어 건강에 도움이 되어 생존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들판이나 동굴에서 불을 밝히면서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노동하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다. 이들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사냥에 필요한 도구는 물론, 동물의 뼈를 가공해 작은 바늘까지 만들 정도로 점차 손의 기능이 섬세하게 진화한다.

불을 사용하면서 호모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들이 '북경원인'과 '자바원인'이다. 이들이 집단생활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대륙 이동인데, 집단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보다 추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불로 어둠을 밝히며, 음식을 조리해 먹으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집단생활을 했다는 것은 이들이 '자아 인식' 단계에서 임계점을 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즉,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자아 인식' 단계가 있어야만 '나'와 '너'를 인지하고, 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집단이 사냥을 할 때, 먹이를 나눌 때, 여느 동물처럼 '나'만을 생각한다면 집단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사용할 줄 아는 인류였기에 집단생활을 하는 단계에서는 이미 '자기 인식'이 어느 정도 뇌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3. 옛 호모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 공감하는 자아

호모에렉투스가 존재하던 시기인 약 70만년 전에 인류는 다시 여러 종으로 진화했고, 이들이 지역에 따라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호모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로테시엔시스', '호모플로렌시스', '데니소바인' 등으로 명명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네안데르탈인'은 약 23만년 전부터 4만년 전까지 존재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은 이전 인류인 호모에렉투스보다 뇌 용량이 훨씬 컸으며-1480입방센티미터-이 크기는 현생 인류보다 크다. 체격도 커서 키는 평균 165센티미터, 몸무게는 약 84킬로미터로 당당했다. 유럽 지역에 살던 이들은 추위를 견뎌야했기에 불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주로 동굴에서 살았다. 이들은 동물의 털가죽으로 보온하고 집단사냥을 했으며 물고기와 새도 잡아먹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뇌와 체격이 커지긴 했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이전 인류보다 월등하게 발달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들이 이전 인류와 다른 점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를 돌보는 행동을 했으며, 죽은 동료를 매장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만의 생존이 아닌, 함께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나 아닌' 동료의 상태를 돌보고, 주검을 매장한다는 의미는,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이런 공감은 '자이인식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타인에 대한 인식이 발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이들은 자아인식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동발달 단계에서도 2세에 자아를 인식하고, 4세가 되면 타인에 대한 인식이 생긴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인식은 '내가 나와 타인을 생각하는 인지공감'을 타인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은 무리를 짓되,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없다. 오로지 인류만이 '자아와 타인의 자아'를 공감한다.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정서가 발달하면서 '신'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심리적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 인류는 무수히 많은 자연현상을 보면서 살았지만, 그것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으므로, 그런 현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설명하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알 수 없는 절대적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신'의 존재는 어떤 형태로도 나타나지 않았다.

 

4. 초기 호모사피엔스: 성찰하는 자아

10만년 전부터 인류는 구멍 뚫린 조개껍데기 목걸이로 치장할 줄 알았고, 불에 달군 다음 떼어낸 세련된 석기와 깬석기가 아닌 간석기(돌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무기나 도구)를 만들었으며, 활과 화살도 만들어 사용했다.

초기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지구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산 폭발이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이들은 오만, 이란, 파키스탄, 인도를 거쳐 말레이반도로 내려가서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들어갔고, 여기서 배를 만들어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진출했다. 이때가 약 5만년 전이었으며 해안선을 따라간 집단과 또 다른 집단은 북쪽으로 올라가 러시아 쪽으로 가서 유럽과 아시아로 다시 나뉘어 진출했다.

이들은 세련된 도구, 구멍 뚫린 조개껍데기, 몸에 맞춘 의복, 적토에 새긴 음각, 동물과 비슷하게 조형한 바위, 배를 이용한 바다 항해를 할 정도로 지능이 높아졌고, 조직적인 집단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자기객관화' 즉 현대심리학용어로 '이차 순위 마음심리' 상태에 도달한다. '나'를 '나'로 인식하는 것이 일차 순위 마음심리라면, '나'를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동발달에서도 6살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다. 자기를 객관화한다는 것은 자기성찰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자기성찰과 언어의 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면 자기성찰,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진 이후라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의 발달 역시 더디게 이루어지므로, 약 5만년 전부터 인류의 이성이 자기성찰을 시작했다면, 이 시기에 언어도 원시적 상태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다.

자기 성찰은 '단지 아는 것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 단지 아는 것을 넘어서 자기가 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초기 호모사피엔스는 6살 아이 정도의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인류는 무생물이나 자연현상에 인격을 부여해 의인화하는 성향을 보여왔다. 초자연현상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했고, 동료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자연의 형태와 현상에는 저마다 생명이 있다고 믿는 토테미즘의 탄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아직 '신'은 인류의 뇌에서 출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으며, 인류가 더 높은 차원으로 진화해야 가능한 영역이었다.

 

5. 현생 호모사피엔스: 시간 속의 자아

이제 우리 인류의 직접 조상인 현생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다. 약 6만년 전, 아프리카에 존재한 그들은 동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파푸아뉴기니,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퍼져나갔다. 이들이 바로 직전의 인류와 다른 점은 돌로 만든 도구가 아닌, 동물의 뼈로 만든 도구를 썼다는 점이다. 동물의 뼈는 돌보다 훨씬 가공하기 어렵지만, 세밀하게 가공할 수 있었고, 작은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시기의 인류는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낚시바늘, 밧줄, 그물, 바구니 등을 만들었고, 램프를 만들어 불을 켜 사용했다.

몸을 치장하는 장신구가 매우 발달했고, 무덤에 넣는 부장품의 종류와 형태도 세련되었으며 다양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예술활동을 꼽는다. 동굴의 채색벽화가 가장 유명하지만, 판화, 점토모형, 조각 등 여러 종류의 예술품이 발견되었다. 4만년-1만5천년 사이에 인류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예술행위를 기록했고, 이 시기에 인류는 '자전적 기억'을 갖게 된다. 이것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미래 행동을 예상, 예측, 계획하는 능력으로, 삶의 지평이 엄청나게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 사냥은 더욱 계획적으로 바뀌어 치밀한 전략으로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고, 사냥의 성공 확률도 높아졌다. 인류는 더 많은 집단이 모여 큰 무리를 이루며 살기 시작했고, 그 바탕에는 성공 확률이 높은 사냥 덕분에 먹거리가 충분히 확보된 것과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다음에 더 나은 방식으로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자기 성찰과 자전적 기억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게 되면서, 가장 구체적으로 맞닥뜨린 경험은 '죽음'이었다. 죽음은 그동안 인류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으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인간도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불안은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보편적이며 피할 수 없는 불안'이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현생 인류는 몹시 당혹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한다. 그 전에는 방치한 주검이 동물에게 먹혔지만, 자기와 타인을 구분하면서 동료의 죽음을 방치하지 않고 매장을 했으며,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죽음과 꿈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현생 인류는 꿈에 의미를 부여할 능력이 생겼다. 이미 훨씬 전의 인류도 꿈을 꾸었겠지만, 꿈을 인지하고 해석할 능력이 없었던데 반해, 현생 인류는 자각과 성찰, 자전적 기억을 통해 꿈을 해석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다른 사람의 죽음과 꿈을 연결해 해석하는 방식으로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꿈은 죽은 사람과 만나는 통로였으며, 이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영혼이 존재하고, 영혼의 존재는 곧 신의 등장을 예고한다.

 

2부 신의 출현

 

6. 조상과 농경: 영적인 자아

약 1만2천년 전부터 인류는 새로운 도약을 한다. 수렵채집에서 정착생활과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농사를 짓는 건 필연적으로 한 곳에 모여 정착생활을 했다는 증거다. 이 무렵에는 이미 대규모 주거집단이 형성되었고, 늑대를 길들여 개로 키우기 시작했고, 다른 동물도 가축화해서 기르고 있었다. 주거가 안정되고, 집단 거주시설이 늘어나 공동체 생활을 영위할 때 가장 필요한 건 서로간의 의사소통이었다. 이때 이미 기초적인 언어 사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원시적 종교형태인 토템이 등장했다.

종교의 시작은 조상숭배일 것으로 추정하며, 죽음의 공포를 넘어, 죽은 조상의 영혼이 자신을 지켜준다는 믿음을 간직하기 시작했고, 그런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술과 종교행위가 시작되었다. 조상숭배는 이동 생활을 할 때는 무덤을 만들거나 죽음을 기억할 만한 동기가 부족해서 불가능한 행위였지만, 정착생활을 하고, 농사를 짓고, 농업생산성이 높아져 잉여 생산물이 발생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된 인류가 꿈과 결합한 죽은 선조의 영혼을 받들기 시작하고, 죽은 자를 매장하면서 많은 부장품을 넣고, 집단의 우두머리가 죽으면 특별히 돌을 높여(고인돌) 쌓아 추모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기 시작한다.

약 8천년 전, 원래 인간이었던 집단의 존경받는 사람이 죽자 사람들은 그의 훌륭한 점을 기리기 시작한다. 농사를 잘 짓거나, 사냥을 잘 하는 그 선조는 후세의 존경을 받으며 서서히 신격화한다. 자연현상도 마찬가지로 비나 바람, 천둥, 태풍 등도 인격화를 거쳐 신격화한다.

조상의 혼령과 신은 초기에 정확히 구분되지 않았고, 초자연현상과 신의 결합도 미미한 정도였다. 원시부족이 혼령을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했으며, 좋은 혼령과 나쁜 혼령을 구분했고, 좋은 혼령은 조상의 혼령이며, 나쁜 혼령은 주로 불길한 자연현상에 대입했다.

잉여 농산물이 발생하면서, 집단 내부에서는 위계질서가 발생했고, 이것이 계급의 시작인 것은 마르크스가 밝혔다. 이때 가장 높은 계급은 제사장으로, 조상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었다. 제사장은 잉여 농산물을 공물로 받아 생활하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최초의 인류였고, 조상신들 가운데서도 위계를 만들어 가장 높은 조상의 혼령이 곧 '신'이 되었다.

 

7. 정부와 신들: 유신론적 자아

현재 과학이 밝힌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신'의 존재는 6천5백년 전 메소포타미아에 존재한 물의 신 '엔키'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해 기록한 최초의 신이기도 하다.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졌고, 한 지역에 최대 3만5천 명이 거주할 만큼 큰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이 지역은 물이 가장 귀해서 최초의 신이 '물의 신'인 것은 필연적이다.

이 시기에는 '물의 신' 외에도 '풍요의 신', '죽음의 신'처럼 다양한 신이 존재했고 이들을 위한 사당이 있었다. 이때는 이미 농업을 비롯해 다양한 직업이 나타났고, 경제 활동이 활발했다. 넓은 지역을 지배하는 집단의 우두머리(왕)는 권력과 재물을 독차지했고, 이들은 거대한 신전을 지어 조상을 신처럼 숭배했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신으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이들이 만든 신들은 그리스 신의 모델이었으며, 온전히 인격체를 가진 '인격신'이었다. 신을 모시는 사원과 제사장은 권위를 가졌고, 이들은 넓은 땅을 소유해 그곳에서 많은 잉여 농산물을 거뒀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원 주변에 사는 농민들이었으며, 이들은 사원에 종속되었다. 메소포타미아처럼 스스로 문명을 일으킨 곳이 바로 이집트와 중국 등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거의 동시에 문명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충분한 고고학적 자료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다.

이집트에서도 수 많은 신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농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다른 지역도 농업이 문명의 시작이었으므로, 신의 발명은 농사와 관련이 관련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농사와 함께 인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을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죽음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기에 가장 신비하고 두려운 현상이었다. 이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매개자가 필요했고, 죽음을 초월하는 존재 즉 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부족국가에서 도시국가로, 다시 더 큰 규모의 집단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으로 사라진 집단과 승리한 집단에서는 신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거나 더 위대해졌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거대한 도시가 발생하며, 지배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강력한 신의 존재가 필요했다. 권력자는 신의 대리인으로 행세하며, 권력을 휘두르고, 신의 이름으로 집단을 지배했다. 2천8백년 전에서 2천2백년 사이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종교가 탄생했다. 유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가 나왔고, 유대교는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나뉜다. 

종교가 발달하는 원인은 다섯 가지 측면이 있는데, 1) 죽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2) 심리적 지원, 물리적 보호, 사회복지, 일자리, 경제적 향상의 기회를 제공하며, 3) 정치적 지배와 연계하고, 4) 추종자들의 경제, 정치, 군사적 성공에 의해 결정되며, 5) 오래된 종교의 신들과 신학을 차용해서 일어난다.

유대-기독교의 '인류 창조', '대홍수', '바벨탑' 등은 메소포타미아 종교에서 가져 온 것이다. 또한 '유일신'과 '동정녀'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차용한 것이다. 

 

8. 신의 기원에 대한 다른 이론들

찰스 다윈은 '만물에 스며든 영적 힘에 대한 믿음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며, 영적 힘에 대한 믿음은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쉽게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추론하기까지 인류의 추론 능력에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약 1만년 전이고, 이후 인류는 급격하게 신을 만들었다. 

농업과 정착생활로 삶이 안정되면서 조상숭배가 발생하고, 인류의 인지 능력과 자각의 발달로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되자,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조상의 영혼을 신격화했다. 또한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신도 늘어나고, 전쟁을 통해 신의 존재는 사라지거나 통합되거나 더 큰 힘을 갖게 되었다.

뇌 과학에서 밝힌 이런 일련의 진화 과정 이외에도 몇 가지 이론들이 있는데, 사회적 이론으로 에밀 뒤르켐은 신과 종교의 기원이 사회구조와 제도에 있다고 했다. '친사회적 행동 이론'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선한 행동을 한다는 것으로, 마음이론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심리적 이론과 위안 이론'은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제시했다. 심리적 위안을 얻고자 하는 욕구에서 신과 종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패턴 추구 이론'은 지적, 인지적 위안을 준다. 종교는 체계적인 의인화, 즉 인간이 아닌 사물이나 사건에 인간적 특징을 부여하는 것으로, 의인화는 종교적 경험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신경학적 이론'은 종교나 신을 믿는 것이 뇌의 특정한 활동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뇌의 특정부위를 자극하면 유체 이탈 경험을 비롯해 다양한 비현실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유전적 이론'은 신과 종교를 믿는 것이 유전적 요인에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너무 쉽게 반박당했다. 

신은 진화의 산물일까, 부산물일까를 놓고 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인류의 진화에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적응하는 것이 생존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반면 신은 인류 진화와 뇌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주장에서, 신이 자전적 기억 획득의 부산물이며, 신의 출현 이후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종교가 뒤따랐다는 입장이다.

어떤 이론이든,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 인류가 믿는 신은 고작해야 지구 전체도 아니고, 자기 부족의 삶에만 있었다는 것을 보면, '신'은 분명 인류가 창조한 것이 맞다. 또한 어떤 신이든 '인격신'인 것을 보면, 인류가 신을 닮은 것이 아니라, 인류가 자신을 닮은 신을 만든 것도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 신은 뇌의 발달을 포함한 인류의 진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응형

'책읽기 > 과학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각 - 올리버 색스  (1) 2022.11.29
공학적 역추론과 효용목적  (0) 2022.11.23
버자이너 문화사  (0) 2022.11.23
아담을 기다리며  (0) 2022.11.22
냄새 - 코가 뇌에 전하는 말  (1) 2022.11.22
음식의 제국  (0) 2022.11.22
조상이야기 - 리차드 도킨스  (0) 2022.11.22
우리몸 오류 보고서  (0) 2022.11.22
100 디스커버리  (0) 2022.11.22
우주에는 신이 없다  (0)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