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기/과학을 읽다

공학적 역추론과 효용목적

by 똥이아빠 2022. 11. 23.
728x90

공학적 역추론과 효용목적

 

*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에덴 밖의 강]에서 가져왔습니다.

공학적 역추론은 다음과 같은 추론기술이다. 어떤 공학자가 처음 보는, 이해하지 못하는 물건 앞에 앉아 있다고 하자. 그는 그 물건이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가정을 한다. 그런 다음 그것이 어떤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지 알아 내기 위해 잘게 해부하고 분석한다.

'내가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기계를 만든다면 이것처럼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이것은 이렇고 그렇고 그런 일을 하도록 설계된 기계라고 설명하는 편이 더 나을까?'

계산자를 만드는 일은 최근까지도 기술자들이 선망하는 전문적인 기술이었다. 그 도구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전자기술시대에 그것은 청동기시대의 유물처럼 낡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계산자를 발견한 미래의 고고학자가 그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의아해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는 그것으로 직선을 그리거나, 빵에다 버터를 바를 때 사용하면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그 물건의 원래 용도라고 가정하는 것은 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 단순히 직선을 그리거나 빵에 버터를 바르는 칼의 용도라면 자의중간에 움직이는 작은 자가 하나 더 있을 필요가 없다. 더욱이 거기에 그려진 눈금의 간격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교한 로그 눈금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꼼꼼하게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고고학자는 연구 끝에 전자계산기가 나오기 전에는 그 눈금을 곱셈과 나눗셈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절묘한 기술에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계산자의 미스터리는 모든 사물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가정을 사용한 공학적 역추론 과정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효용목적'은 공학자들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학술용어이다. 그것은 '어떤 것이 극대화하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경제계획을 입안하는 사람이나 사회공학자는 어떤 것을 극대화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설계사나 진짜 공학자와 비슷하다. 실용주의자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이다(이 말은 실제보다 더 이성적인 것처럼 들린다).

이 대전제 아래 실용주의자는 단기간의 행복보다도 장기간의 안정성에 우선순위를 둔다. 실용주의자들은 '행복도'를 측정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하느냐로 의견을 달리한다. 즉, 경제적인 풍요, 직업에 대한 만족도, 문화생활 향유 정도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관계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로 의견이 나누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자신의 행복을 공공복지보다 우선하여 극대화하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자신을 위할 때 전체의 행복이 극대화된다는 사이비 철학으로 자신들의 이기심을 합리화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의 전생애에 걸쳐 조사해 보면, 그들의 효용목적을 공학적으로 역추적할 수 있다.

어떤 나라의 행정부가 하는 일을 조사해 공학적으로 역추론해 보면, 그 정부가 극대화하려는 것은 고용과 공공의 복지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그 효용목적이 대통령의 영구집권이거나, 특정한 통치집단의 이익, 제왕의 후궁 숫자, 중동의 안정, 또는 원유가격의 유지 등을 들 수 있다.

어떤 대상이 하나 이상의 효용목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개인이나 법인, 또는 정부가 극대화하려는 것이 언제나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뭔가를 극대화하려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어떤 대상의 효용목적이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총합이거나, 여러 가지 입력들에 의한 다른 복잡한 기능일 때에도 유효하다.

------------------------

위의 내용을 일부러 타이핑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유신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목적론'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가를 말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한국 정부(행정부)가 하고 있는 '효용목적'이 무엇을 위해 극대화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은-극소수를 제외하고-생명은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쌓은 지성의 결과물인 과학적 방법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즉, 진화는 어떤 목적도 없으며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다른 생물이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존재할 뿐이다. 다만 우리 인류는 '이성'이라는 독특한 뇌활동을 통해 자아, 타자, 자연, 우주를 인식하고 있고, 인공적인 기술문명을 발달시켰으며, 다른 동물이 하지 못하는 우주탐험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역시 논리의 비약이며 과대망상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이 존재하는 만큼 진화했고, 가장 최고의 진화상태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천억의 생물은 지구에 존재했던 생명체의 1%에 불과하며, 99%는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멸종했다. 따라서 현재의 생명체는 진화적으로 최적의 상태이며, 가장 우수한 종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신의 창조' 같은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말을 믿지 않는다. 즉, 신을 믿고,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과학적 상식이 부족하거나, 의도적으로 과학지식을 외면하고 사기를 치는 자들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또한, 현재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나 추구하는 정책 방향을 역으로 추적하면 현 정부의 '효용목적'을 알 수 있는데, 본문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현 정부는 '특정한 통치집단의 이익'에 매우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사리사욕을 추구한다'는 말을 조금 어렵게 쓴 것일 뿐, 실제로는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의 이익에 정부가 적극 봉사할 뿐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 '효용목적'을 아는 자들도 꽤 있을 것이지만, 그들이 현 정부의 극대화 노력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대개의 교수 또는 연구자들이라는 자들은 비겁할 뿐 아니라 곡학아세하고, 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더더욱 권력과 자본은 오만해지고 서민은 가난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응형

'책읽기 > 과학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주로 가는 물리학  (0) 2023.01.29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0) 2022.11.29
우주의 기원  (0) 2022.11.29
환각 - 올리버 색스  (1) 2022.11.29
버자이너 문화사  (0) 2022.11.23
아담을 기다리며  (0) 2022.11.22
냄새 - 코가 뇌에 전하는 말  (1) 2022.11.22
뇌의 진화, 신의 출현  (1) 2022.11.22
음식의 제국  (0) 2022.11.22
조상이야기 - 리차드 도킨스  (0)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