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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평전을 읽다

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by 똥이아빠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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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강변에서 주경야독 20년


이틀 동안 책 속에 깊이 빠져들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책읽기의 기쁨이다. 우리집을 방문한 지인이 선물로 가져온 책인데, 마침 나도 구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어서 더욱 고마웠다.

최영준은 이미 ‘국토와 민중생활사’의 저자로 낯이 익었던 터라 더 친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제목만으로는 대학교수가 농사를 짓는 이야기를 조금 가벼운 글로 썼겠거니 했는데,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니 일기로 쓴 기록이었다. 일기로 남긴 기록을 책으로 냈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오랜 시간 일기를 차곡차곡 써내려갔을 지은이의 정성이 놀랍다.
나도 이제 일기를 꾸준히 써 온지 20년이 되었으나 일기를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아는 터라 지은이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은 대학교수가 시골에 농가와 농토를 마련하여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농사지었던 기록이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의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는 농사기록이자 농촌의 변화를 담은 소중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이 나에게 특히 뜻 깊었던 것은, 2003년에 시골에 내려와 이제 8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시골에서 살며 겪었던 경험을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영준은 누구보다 한국 농촌의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농부의 심정과 농촌의 미래에 대해서도 정확한 진단을 하고 있다.
그 자신이 ‘자작농’으로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과 안도감을 갖는 것에 대해 나 역시 깊이 공감한다. 한국의 농촌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최영준의 글에서 감명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특별한 주제 없이 자신의 논밭에서 농사를 지은 기록이지만, 나는 몇 가지 특별한 점을 느꼈다.

첫째는 농사짓는 일에 온몸을 던지는 무모할 정도의 용기와 정열이다.
지은이는 홍천강변에 땅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농사를 모르고 살던 책상물림이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일들을 착착 진행하면서 지은이가 마음 깊이 농촌의 삶을 동경하고 그리워했는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미 많은 공부를 통해 농사짓는 법을 배웠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몸과 마음이 ‘농사’에 깊이 빠져들었음을 느끼게 된다. 농사는 머리만으로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니,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농민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최용준은 이미 뚝심 있는 농민의 자질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최영준 부부의 아름다운 삶이다.
주말마다 서울에서 홍천의 농토까지 내려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지은이가 가는 길 언저리에 내가 살고 있어서 다니는 길이 어떤 곳인지를 대강 알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행락차량으로 막히는 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하며 내려갔을 나날들, 오가는 길이 불편하고 시간도 꽤 걸려서 피곤하고 힘들었을 시간이었지만 부부가 함께 오가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기에 막히는 도로도, 피곤한 시간도 모두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중년이 되면 아내의 존재가 더욱 절실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힘드는 일도 아내와 함께 하면, 아니 아내가 옆에만 있어주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의 남자들이다.
그런 면에서 최영준은 아내와 함께 시골집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행운과 행복을 두루 가졌으니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셋째는 지은이가 시골 마을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이웃 주민’으로 인정받는 과정이다.
외지 사람인 지은이가 한 마을의 주민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지은이가 그곳에 거주를 하면서 농사를 지었다면 훨씬 짧게 걸렸을텐데, 주말마다 내려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농촌도 지역마다, 마을마다 구성원에 따라 외지 사람을 받아주는 태도가 다르다. 배타적인 곳도 있고, 편안한 곳도 있으나 무엇보다 시골에 정착하려는 외지사람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지은이는 모든 것을 순리대로 하고,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이웃과 지역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마을 이장을 비롯한 원로들과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지은이의 태도는 시골 마을로 이주하려는 사람이라면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넷째는 지은이가 기록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변화의 기록이다.
농사를 지으면 날씨에 민감하다. 음력의 절기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고, 날마다 날씨의 변화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되며 계절의 변화에 특별히 민감해진다. 책에도 자주 기록되어 있지만 날씨의 변화와 함께 땅의 성질이 미세하게 바뀌는 것, 무수한 곤충과 짐승들의 모습, 풀과 나무, 강의 변화에 관한 기록들이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농민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관심거리이자 바로 생활 자체이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도, 알 수도 없는 자연의 변화, 인간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고 사는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서 부러움과 함께 존경심이 우러났다. 나이 들수록 말을 줄여야 한다는 것, 농사를 지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당연하지만 소중한 증언, 자연에서는 잡초까지도 소중하다는 진리, 인간은 자연에 늘 빚지며 사는 존재라는 깨달음, 농촌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행복한 세상이라는 믿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학자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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