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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제0호

by 똥이아빠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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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광고가 조금은 선정적이다. 이 소설은 나중에 쓰긴 했어도 이미 오래 전-[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를 발표한 이후-에 이미 소재를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나 서점의 광고는 한결같이 '언론과 권력에 대한 풍자'라고 말하는데,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탈리아의 언론을 장악하고 총리가 되어 나라를 망가뜨린 베를루스코니와 그가 운영한 지저분하고 타락한 언론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움베르토 에코가 즐겨 사용하는 역사적 음모론이다. 소설의 시작도 그의 예전 작품들-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등-과 같은 구조를 보인다. 즉, 생존한 주인공이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사건을 회상,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문제를 해결하거나,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코 발행하지 않을 신문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신문의 편집방향을 두고 갑론을박한다. 이들이 참고하는 기존 언론의 모습은 돈과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부패한 언론의 모습이다. 신문은 너무 고급스러워도 안 되고, 너무 천박해도 안 되고, 신문발행인이 고소당할 기사를 취급해서도 안 되고, 기사에 언급된 개인이나 단체가 공격할 때를 대비해 빠져나갈 뒷구멍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찾아 길거리로 나서고, 무언가 새롭고, 사회적 이목을 띌 수 있는 기사소재를 찾으러 다니는데, 이때 한 기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고 주인공에게만 자신이 취재하고 있는 내용을 알린다. 그 내용은 무솔리니의 생존설과 관련된 음모론으로, 이 이야기는 움베르토 에코의 이 소설에서 매우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위키백과'에도 무솔리니 생존설 음모론이 떠 있는 바, 극히 일부의 독자는 움베르토 에코가 '위키백과'에서 소재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는 말이 있다. 물론 결코 그런 일은 없었지만, 무솔리니 생존설은 히틀러 생존설과 함께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어냈다. 무솔리니는 1945년 4월 28일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 생존해서 아르헨티나로 갔으며 그곳에서 잘 살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이탈리아에서 70년대 발생한 쿠데카를 연결해 전후 이탈리아 공산당과 파시스트의 협력, 이탈리아 교황청과 아르헨티나 대교구가 무솔리니의 도피를 도왔다는 설, 여기에 유럽과 미국 정보국의 암약, 교황청 뒤에 숨어 있는 중세 비밀조직의 등장 등 온갖 음모설이 등장한다.

소설의 재미로 보면, 신문을 창간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무솔리니 생존설이 훨씬 재미있다. 두 이야기가 두 줄기로 흘러가고 있다가 마지막에 기자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하나로 모이지만,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를 생각하고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분명 실망할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면, 아주 천천히, 움베르토 에코가 설명하는 이 길고 긴 이야기를 곱씹으며 따라가는 독자라면 읽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서 '최후의 걸작'이라거나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소설도 움베르토 에코의 긴 농담에 불과하다. 그는 '장미의 이름'을 쓸 때부터, 그가 가지고 있는 박학으로 즐거운 농담을 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열렬한 팬인 나도, 그의 농담에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박학의 끝부분을 맛보았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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