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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파친코

by 똥이아빠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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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애플TV'에서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2018년에 발표했고, 지금 촬영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 소설이 미국에서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었고,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소설이 미국의 주류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현상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인은 미국에서 소수민족이며, 그리 주목받지 못한 대상으로 100년을 살았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과 일본 거주는 20세기 초반의 비극적 역사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의 기원이 있다.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 이후 조선인의 삶은 고통과 울분, 비통의 연속이었다.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려던 조선인들은 가까운 일본으로 건너가거나 하와이, 쿠바, 멕시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가는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 이렇게 떠난 조선인은 인종차별과 하층 노동자로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한국인에게 근현대사의 시작은 비극이었다. 동학혁명이 일본군의 폭력에 무너지면서 민중의 삶은 짓밟히기 시작했고, 그것은 조선왕조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이 참혹한 것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당시 조선의 근현대사 배경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부산의 영도 바닷가에 살던 이름 없는 가난한 어부 부부에게 온전치 못한 몸을 지닌 아들 '훈'이 있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더 가난한 집안의 막내딸 양진이 부부로 맺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훈'이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몸은 튼튼했고, 듬직하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너무 가난해서 입 하나를 덜기 위해 시집 온 양진은 시부모와 함께 힘든 시간을 지내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삶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선자가 태어나고, 선자는 튼튼하고 야무진 여성으로 성장한다.

 

이 작품은 4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세대는 드라마틱하게 다른 삶을 살지만 등장인물들이 일본에 정착하면서 살게 된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재일조선인', 일본사회에서의 소수자로 당하는 차별, 멸시의 구조다. 주인공들이 일본에서 자기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일본의 '재일조선인' 정책과 조선인을 차별하는 사회적 공모가 강하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의 구성은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가난한 조국 조선을 자발적이든, 강제로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디아스포라적 삶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은 '실존적'이든 '이념적'이든 '경계인의 삶'으로 존재하고 있다. 역사 속의 집단이자 개인으로 디아스포라이면서 경계적 존재로 사는 사람들은 유대인과 재일조선인이 공통점을 갖는다. 유럽에는 '집시'도 있으나 그들은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갖지 못한 집단 유랑민이라는 점에서 유대인과는 또 다르다.

 

작품 제목인 '파친코'는 '재일조선인'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는 마치 유대인을 상징하는 단어로 '고리대금업자'를 떠올리는 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그 집단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 아니며, 사회에서 천대와 멸시를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인 '파친코'와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여성의 삶은 서로 만나는 지점이 없다. 즉, 이 작품은 여성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제목은 '재일조선인' 가운데서도 남성이 운영하는 '파친코'로 되어 있어 제목과 내용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이것을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상징성에 무게를 두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여성 서사를 다루고 있다. 작가가 여성이어서 여성의 삶에 보다 공감과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의 삶을 구원하는 구원자적 존재로 등장한다. 여성은 늘 남성의 그늘, 발 아래, 뒤치닥꺼리, 조력자, 보조자 등으로 존재하지만, 길게 보면 남성을 품고, 기르고, 키우고, 성장시키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에서도 양진은 가난한 집 막내딸로 굶주리는 삶을 살다, 나이가 많고, 몸도 성치 않은 어부의 아들 '김훈'의 아내가 된다. 다행히 김훈은 장애가 있지만,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어서 양진은 가난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딸인 선자는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엄마와 두 사람의 일하는 여성과 함께 하숙을 치면서 성장한다.

선자가 고한수를 만나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평양에서 온 백이삭 목사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하고 정식으로 백이삭의 아내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재일조선인' 1세대의 삶이 시작된다. 백이삭의 형 백요셉은 이미 그의 아내 이경희와 함께 일본에서 정착했고, 이경희는 선자를 동생처럼 여기며 끈끈한 연대와 우정을 쌓아간다. 

고한수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고 세 딸을 두었고, 그의 장인은 야쿠자 두목이었던 것이 나중에 드러난다. 고한수 역시 장인의 야쿠자 조직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그는 평생 야쿠자로 살면서 돈과 권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선자의 남편 백이삭은 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2년의 옥살이 끝에 결국 숨을 거둔다. 백요셉 역시 미군의 폭격에 화상을 입고 고생하다 죽는데, 남성들이 이렇게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재일조선인'의 비극이라는 것을 작가는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성(남편)의 부재로 곤란한 생계를 꾸리는 건 여성들이다. 경희와 선자는 김치 파는 행상을 시작으로 집안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김치는 맛있다는 소문이 나고, 김창호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이들의 김치를 전부 구입하겠다며 두 사람을 식당 주방에서 직접 김치를 담그게 한다. 시간이 지나서 김창호의 뒤에 고한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설령 일찍 알았다 해도 경희와 선자는 그 주문을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희와 선자에게는 아들 노아와 모자수가 있었다. 두 아이를 건강하고 떳떳하게 키우는 것이 삶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 사람은,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고통도, 굴욕도 참을 수 있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의 부재로 성장하는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는 평생 힘겹게 일하는 엄마와 큰엄마를 보면서 엇나갈 수 없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곧 조국의 부재이기도 하다. 나라를 잃은 민족, 조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디아스포라의 존재인 이들 '재일조선인'은 끊임 없이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아버지' 고한수는 노아에게 고통의 근원이다. 이미 아내와 딸이 있는 그는 어린 선자를 좋아하고, 임신시켜 선자의 인생을 망친다. 그렇게 태어난 노아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불행이며,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백이삭이 죽은 이후, 존재할 수 없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그 아버지가 사회에서 가장 비난받는 야쿠자라는 이유로, 자기의 삶을 방기한다.

이삭의 비극은 '재일조선인'이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 결과일까, 아니면 야쿠자를 부모로 둔 자식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절망과 자포자기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이삭의 자살은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뿌리내리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노아는 자신의 실존적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데, 그의 삶도 모순적이긴 마찬가지다. 그가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 파친코 가게에 취업해 많은 돈을 벌면서 '아버지' 고한수가 보내준 학비를 다 갚고, 어머니에게도 많은 돈을 보낸 이후에도 그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여럿 낳아 기르면서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었다고 삶을 스스로 끝내는 것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애초에 결혼할 마음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이삭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건 분명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 극단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 해도, 이삭의 결정을 존중할 수는 있지 않을까.

 

모자수는 우연하게 파친코 업계에 발을 들여 놓지만, 이 역시 그의 존재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일본 사회에서 주류에 속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일본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사회에서 강하게 밀려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럴 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위험하거나 더럽거나 불법한 일일 수밖에 없다.

모자수를 파친코로 끌어들인 사람 역시 재일조선인 고로 씨였다. 성실하고 머리가 뛰어난 모자수는 빠르게 일을 배우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한다. 그는 고로 씨의 도움으로 파친코를 직접 경영할 뿐 아니라 가게도 늘리면서 막대한 돈을 벌기 시작한다.

모자수의 아내 유미는 모자수의 단골 양복점에서 일하던 미싱공이었으나 늘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가는 걸 꿈꾸던 여성이었다. 모자수와 결혼해 아들 솔로몬을 낳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데, 이런 크고작은 비극이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솔로몬은 부자 아버지인 모자수 덕으로 어려서부터 국제유치원에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일본인 상사에게 이용당하고 해고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으면서, 솔로몬은 아버지가 하는 파친코 업계에서 일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재일조선인' 4세대인 솔로몬이라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버지가 파친코로 돈을 벌어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고, 원한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솔로몬의 위치였다.

하지만 솔로몬은 일본에 눌러 앉는다. 솔로몬은 할머니와 엄마,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자신 역시 '재일조선인'으로 3년 마다 지문을 등록해야 하는 차별을 당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재일조선인'이라 해도, 일본 사회에서 늘 변두리, 울타리 너머에 존재하는 이방인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부모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온 솔로몬 같은 청년 세대가 '재일조선인'으로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결심은, 차별과 멸시의 땅, 고통과 비난이 발목을 잡는 일본 사회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재일조선인'은 불행한 역사를 만든 일본이 상상하지 못한 존재였지만, 일본 내부의 모순을 뚫고 성장하는 기형적 존재이면서, 한편으로 일본인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과거 침략과 범죄 역사의 살아 있는 증거이자 증인이며, 조선인의 의지와 투지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존재 그 자체다.

'재일조선인'의 존재는 일본의 내부적 모순을 드러내는 한편, 모순을 첨단, 극대화하는 존재로 작동한다. 일본은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으며,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유효하며,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일본인의 저열함, 야비함, 악랄함을 증명하기 때문에, '재일조선인'은 일본 양심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동하고 있다.

 

작품에서 '재일조선인' 인물들 가운데 기독교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 작품에서 백이삭과 선자가 만나는 대목은 어색하지 않다. 백이삭은 평양의 부잣집 둘째 아들로, 목사가 되어 일본에 있는 교회로 목회를 하러 가는 중이었다. 일본에는 이미 그의 형 백요셉이 아내와 함께 정착했고, 이삭을 불러들인 것이다. 

백요셉이 일본으로 가는 과정에서 선자의 부모가 하는 하숙집에 머물렀던 인연이 있었고, 요셉은 그 하숙집을 소개한 것이다. 그렇게 이삭과 선자가 만나는데, 선자는 이미 임신을 했고, 아버지인 고한수가 유부남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선자는 고한수와 결별한다. 선자는 이삭의 헌신에 감동하고, 진심으로 이삭을 사랑하지만, 이삭은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당하고 일찍 사망한다.

이삭의 아들은 노아, 모자수이고, 모자수의 아들은 솔로몬이다. 일본은 기독교가 극히 미미한 존재인데, '재일조선인'으로 조선사람의 흔한 이름이 아닌,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차용한 것은 작가의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백이삭과 백요셉이 평양에서 온 기독교인이라는 점은, 미국과 깊은 관련이 있다. 

평양은 미국 개신교 선교회가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곳으로, 당시 조선에서 기독교가 처음 뿌리를 내린 곳이기도 하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세우고, 조선사람을 교육시켰다. 교육과 목회는 서로 떨어지지 않았고, 공부를 잘 하는 조선인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공부하도록 돕기도 했다.

따라서 조선의 근대화에 미국 개신교는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으며, 재미교포 작가인 이민진 작가는 작품 취재를 통해 '재일조선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 이 시기 평양의 개신교도를 취재했거나 자료를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읽으면서 독특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가 재미교포로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가서 성장한 사람이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기 때문에, 한글 문장과는 사뭇 다른 영어 문장으로 작품을 썼고, 그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면서 한국소설을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내용은 분명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한국인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문장은 한국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구조로 짜여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의식구조는 이미 '미국인'으로 확고히 정립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그가 모국인 한국과 한국의 역사, 한국인의 고난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는 건 퍽 높게 평가하면서, 이민진 작가의 영어 소설이 한국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세계 문학의 보편성을 획득하기에 필요한 문장구조가 서양(미국)식으로 짜여지고 있는 것은 흥미를 갖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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