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기/소설을 읽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원작과 영화

by 똥이아빠 2022. 11. 24.
728x90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원작과 영화

 

수많은 영화가 소설 또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소설과 만화는 영화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예술 장르이고, 이미 검증된 서사의 깊이가 두텁게 펼쳐져 있어, 영화의 소재로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끊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좋은 영화는 순수한 창작이든,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든 훌륭하지만, 문학에서 가져 온 서사를 다듬는 것이 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원작을 직접 가져오지 않아도, 영화감독을 비롯한 제작자들은 이미 수많은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받기 마련이며, 이런 폭넓은 확장이 영화 예술의 외연과 철학을 단단하게 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 그 자체만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가 어떤 원작에 기대고 있을 때, 그 원작을 일부러 찾아보는 것은 나름 재미와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영화 '쇼생크 탈출'이나 '대부'는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다. 스티븐 킹의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고, 이 영화는 불멸의 명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부' 역시 미국 마피아의 내부를 깊숙이 취재해 쓴 마리오 푸조의 소설로, 이 영화는 후속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 2부, 3부까지 이어지게 된다. 

영화를 볼 때, 원작이 있는 경우, 원작 소설이나 만화를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가 재미있어서 살펴보니 원작 소설, 만화가 있다면 그것을 나중에 찾아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그렇다.

또한,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언급한 책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도 있을텐데, 최근에 본 영화 '더 이퀄라이저 2'에서 주인공 로버트(덴젤 워싱턴)가 읽는 책이 '세상과 나 사이'라는 에세이인데, 미국의 흑인 작가 타네히시 코츠가 쓴 책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흑인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보고, 원작 소설이 있는지 찾아봤더니, 마침 한국에서 번역 출판한 책이었고, 곧바로 책을 주문해 도착하자마자 읽었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도 원작의 내용과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이나 만화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의 구성과 서사를 완전히 해체한 다음, 다시 조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서사의 일부는 삭제되고, 일부는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인물은 사라지거나 새롭게 해석된다. 

장편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장편소설 한 권에 들어 있는 서사의 폭과 깊이는 물론, 인물의 복합적이고 다층적 존재감을 영화에서 온전하게 전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극히 제한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를 볼 때,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오히려 재미가 덜하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그것은 소설만이 가능한 서사의 풍성함, 핍진성, 다층적, 중의적 해석, 상상력 등이 영화에서는 극히 일부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소설에서 시간의 흐름은 무려 20년에 이른다. 1945년, 오하이오 미드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윌러드 러셀은 고향인 웨스트 버지니아의 콜크리트로 가는 길에, 중간 기착점에서 잠깐 쉬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우스스푼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샬럿을 처음 보고 반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의 흐름을 가능한 따라가고 있어서, 관객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과 이야기의 전개를 놓칠 수 있고, 인물들의 현재와 과거가 뒤섞을 수 있으니 조금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이런 시간의 뒤바뀜과 인물의 등장과 퇴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배경으로만 잠깐씩 보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사는 지역이 어떤 곳인지 관객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오하이오주의 녹켐스티프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콜크리트가 어떤 곳인지 훨씬 자세하게 이해하게 되면서, 이 서사의 배경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구글 지도로 소설의 무대를 찾아봤다. 오하이오주의 남부에 있는 녹켐스티프는 대도시인 콜롬버스에서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시골이다. 윌러드가 샬럿과 결혼해 살기 시작한 1950년대에 마을 인구가 고작 400명 정도에 불과했고, 전기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곳이었다.

이런 사정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콜크리크도 마찬가지여서, 석탄 탄광인 지역이어서 주민 남성 대부분이 탄광에서 일하는 이곳은 오하이오주, 켄터키주, 버지니아주,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경계에 있는 깡촌이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매우 가난하며, 백인이든 흑인이든 자신의 삶이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들이 가장 가까운 대도시에 나가는 경우는 평생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고, 떠나고 싶어도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 떠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윌러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 군복을 입고 귀향하는 도중, 오하이오주 미드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렸다가, 우드스푼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샬럿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는 잠깐 고향인 콜크리크에 와서 어머니와 외삼촌을 만난 다음, 다시 미드로 돌아가 샬럿에게 청혼하고, 두 사람은 결혼한 다음, 녹켐스티프에 정착한다.

윌러드가 고향에 갔을 때, 그의 어머니 에마는 윌러드의 신부감을 점찍어 두었는데,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헬렌이었다. 헬렌의 가족은 집에 불이 나서 모두 사망하고 헬렌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헬렌은 못생겼고, 윌러드의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우연이지만, 교회의 부흥사로 나타난 로이에게 반한 헬렌은 로이와 결혼한다. 

윌러드와 샬럿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고 - 이 아이가 바로 주인공 '아빈'이다. 아빈은 1948년생 - 아빈이 아홉 살 되던 1957년, 샬럿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윌러드도 샬럿을 따라 자살한다. 아빈은 결국 윌러드의 고향집, 할머니와 외삼촌이 사는 콜크리트로 가게 된다.

콜크리트에서도 헬렌은 교회부흥사 로이와 결혼해 딸을 하나 낳는데, 이 딸, 레노라를 아빈의 할머니 에마에게 맡기고 남편 로이와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가 로이에게 살해당한다. 로이는 왜 아름다운 자기 아내를 죽였을까. 영화에서는 단지 로이가 미치광이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로이의 사촌이자 하반신 불구인 시어도어의 역할이 매우 크게 드러난다. 시어도어는 로이와 헬렌의 사이를 질투하고, 로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시기했으며, 행복한 사람들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비틀린 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매우 수동적으로만 그려진다.

로이 역시 제정신이 아닌 인물이고, 종교에 집착한 나머지 정신이 돌아 자기가 죽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시어도어의 충동질로 로이는 아내 헬렌을 죽인 다음 되살릴 거라고 장담하지만, 현실은 단지 그들이 살인자로 쫓기게 된다.

 

영화에서 삭제된 내용 가운데, 윌러드의 자살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윌러드가 사는 집의 주인은 변호사인 핸리 던랩인데, 그의 아내 이디스는 마치 창녀처럼 아무 남자나 집으로 끌어들여 섹스를 한다. 이미 그 지역에서 이디스는 창녀로 소문이 파다했고, 핸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한다. 매월 월세를 내러 사무실로 오는 윌러드에게 핸리는 제안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집 뒤쪽의 5만평 땅을 다 주겠다고. 정확한 제안 내용을 말하지 않았기에 윌러드는 오히려 핸리를 의심하고, 마침내 핸리를 살해한다.

핸리의 주검이 발견되고, 핸리 살인범으로 그의 아내 이디스와 흑인 정원사가 범인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이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윌러드의 아내 샬럿이 암으로 사망하자 윌러드도 자살하는데, 이는 샬럿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어린 아빈은 알 리가 없었다.

 

콜크리크에서 아빈과 레노라가 할머니 에마와 외삼촌 어스켈의 보호 아래 생활하던 시기는 아빈의 아버지가 자살한 1958년 이후 계속되었다. 아빈과 레노라는 마치 남매처럼 살았는데, 아빈은 레노라를 잘 보호해주고 있었다. 

에마와 러스켈, 아빈, 레노라는 마을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고,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았다. 교회 목사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병이 들어 요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목사의 조카가 대신 목회를 볼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로 부임한 프레스턴 티가딘은 목사가 아니었다. 그는 전도사였으며 어린 여자 신도를 유혹해 섹스를 하는 섹스광이자 사악한 인물이었다.

순진한 레노라가 프레스턴의 그루밍에 넘어가 노리개가 되었고, 결국 임신하게 된다. 프레스턴은 레노라 뿐아니라 다른 어린 여자들도 그루밍으로 유혹해 자신의 성노리개로 삼았다. 레노라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 프레스턴을 찾아가 애원하지만 프레스턴은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레노라가 자살하자, 아빈은 프레스턴의 뒤를 오래 추적하며 증거를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프레스턴을 살해하고 고향을 떠난다.

아빈은 어렸을 때 살았던 오하이오주 녹켐스티프를 찾아가는데, 중간에 차가 고장나 팔아버리고 히치하이킹을 한다. 이 과정에서 사진 찍는 연쇄살인마 부부 칼 핸더슨과 샌디 핸더슨을 만난다. 이 두 사람은 우연이지만, 샌디가 우드스푼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잠깐 일할 때 만났다. 그리고 샌디의 오빠는 미드에서 부보안관으로 일하고 있는 리 보데커였다.

칼 핸더슨은 타고난 싸이코패스였으며, 그가 아빈의 손에 죽을 때까지 무려 26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칼과 샌디가 살해당하고, 리 보데커가 그들(칼과 샌디)의 집을 찾아가 집안을 수색하다 발견한 사진들을 보면서 알게 된다.

칼과 샌디의 '모델' - 제물이 되는 사람 -로 찍힌 사람 가운데 운이 좋아서 살아난 사람이 바로 '로이'다. 자기 아내 헬렌을 죽이고 시어도어와 함께 남쪽 플로리다로 도망한 로이는 시어도어가 병으로 죽자 딸 레로라가 보고 싶고, 자기가 아내 헬렌을 죽인 것을 참회하고 자수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히치하이킹을 하다 우연히 칼과 샌디의 차를 타게 된 것이다.

아빈은 자기를 죽이려던 칼과 샌디를 정당방위로 죽이고, 그가 어릴 때 살았던 녹켐스티프를 찾는다. 샌디의 오빠이자 부보안관 리 보데커는 콜크리트의 경찰에게서 전도사 프레스턴이 살해당했으며, 그를 죽인 용의자가 아빈일 거라고 알려준다. 리 보데커는 아빈을 잡기 위해 예전 아빈의 집으로 찾아가고, 그곳에서 아빈을 만나지만 아빈의 총에 맞아 죽는다.

리 보데커는 이미 부패한 경찰이며, 미드의 포주 테이터 브라운에게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청부살해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즉, 리 보데커는 경찰로서 하면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기에, 그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된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모든 사건의 배경에 짙게 깔리는 것은 '종교'와 '살인'이다. 모든 인물은 교회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이들에게 '하나님' 또는 '목사'는 절대 존재로 군림한다. 윌러드도 신을 믿지 않았지만, 아내 샬럿이 암에 걸리자 종교에 집착하고 광기를 보인다. 그는 짐승을 잡아 자기가 만든 제단에 피를 뿌리고, 짐승을 제물로 바쳐 아내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런 행위가 마치 원시종교의 주술처럼 보이지만, 윌러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종교 또는 교회와 관련해 이들은 맹목이며, 절대 권위에 복종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다. 전도사 프레스턴 티가딘이 자기 아내를 비롯해 모두 어린 여성들을 그루밍으로 정복해 성노리개로 삼는 것을 보면, 이들의 타락은 본질적으로 종교 자체에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여기에 싸이코패스에 연쇄살인마 칼 핸더슨과 그의 아내 샌디의 행동은 보통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성향이다. 성도착자이자 살인광 칼 핸더슨은 그러나 자기 어머니가 오랜 투병으로 사망할 때까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카메라에 담기는 피사체가 특별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사람을 살해하기 직전과 직후의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인물이다.

두 곳의 시골을 배경으로, 주인공 아빈의 행적을 따라가면, 아빈은 오하이오주 미드의 녹켐스티프에서 태어나 자랐고, 소년이 된 이후 아버지의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주 콜크리크에서 성장했으며, 그곳에서 전도사를 살해하고 다시 고향인 녹켐스티프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인연이 있지만, 그 인연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들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바쁘고, 모든 일들은 마치 우연처럼 일어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아빈이 다시 히치하이킹을 하고, 차 안에서 조는 장면이 보이는데, 이때 운전을 하는 사람이 그 악명 높은 찰스 맨슨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지만, 찰스 맨슨은 감옥에 있다가 1967년에 석방되는데, 그의 고향이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라는 것, 아빈이 마지막에 신시내티로 간다고 말하는 것에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소설을 꼭 읽기를 권한다. 영화에서는 알 수 없는 서사의 핍진함이 훨씬 재미있고, 인물의 성격과 그들이 행동하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작가의 문장이 하드보일드 스릴러라는 걸 알 수 있다. 더구나 작가 도널드 레이 플록은 이 작품이 첫번째 장편소설이고, 단편집까지 해봐야 겨우 두 권째 소설인데, 이미 세계적 작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것도 무려 57세의 나이임에도. 그러니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나이를 생각할 이유는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

 
반응형

'책읽기 > 소설을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린의 심장  (0) 2022.11.29
양망일기  (0) 2022.11.28
사흘 그리고 한 인생  (0) 2022.11.28
파친코  (0) 2022.11.28
블랙 에코 - 해리보슈 시리즈 1  (0) 2022.11.24
파인더스 키퍼스 - 스티븐 킹  (0) 2022.11.24
리바이벌-스티븐 킹  (0) 2022.11.24
제0호  (0) 2022.11.24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0) 2022.11.24
기나긴 이별  (0) 2022.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