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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우리 선희

by 똥이아빠 201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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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선희

홍상수 감독 작품. 

영화과 졸업생 선희(정유미)는 오랜만에 학교에 들린다. 미국유학을 위한 추천서를 최교수(김상중)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평소 자신을 예뻐한 걸 아는 선희는 최교수가 추천서를 잘 써줄 거라 기대한다. 그러면서 선희는 오랜만에 밖에 나온 덕에 그동안 못 봤던 과거의 남자 두 사람도 만나게 되는데, 갓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문수(이선균)와 나이든 선배 감독 재학(정재영)이 두 사람. 차례로 이어지는 선희와 세 남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좋은 의도로 ‘삶의 충고’란 걸 해준다. 선희에게 관심이 많은 남자들은 속내를 모르겠는 선희에 대해 억지로 정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들은 이상하게 비슷해서 마치 사람들 사이를 옮겨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삶의 충고’란 말들은 믿음을 주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거 같고, 선희에 대한 남자들의 정리는 점점 선희와 상관없어 보인다. 
추천서를 받아낸 선희는 나흘간의 나들이를 마치고 떠나지만, 남겨진 남자들은 ‘선희’란 말을 잡은 채 서성거린다. ('다음 영화'에서 가져 옴)

지금까지 만들어진 홍상수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담백한 영화. 데뷔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같은 놀라운 반전과 충격의 영화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퍽 아쉽지만, 두번째 영화인 '강원도의 힘'부터 '우리 선희'까지 일관된 호흡과 느낌으로 마치, 연작 영화를 만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
그러면서도 초기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날것의 어색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에서 조금씩 '독기'가 빠지는 느낌을 느끼는데, 한편으로는 편하면서 아쉽다. 마치 무엇엔가 중독되어 있다가, 중독의 마비에서 서서히 풀리면서 오한에 떠는 기분이랄까.
영화 속 '선희'는 구체적인 인물이기도 하겠지만, 남자들이 바라보는 여성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선희를 좋아하는 세 남자 최교수(김상중), 재학(정재영), 문수(이선균)는 자기가 바라보는 '선희'가 어떤 여성인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 남자 모두 선희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유까지도 관객이 보기에는 매우 단편적이다. 즉, 우리는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때 조차도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홍상수는 가볍지만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선희는 어떨까. 선희 역시 세 남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세 남자가 각각 선희에게 갖는 '애정'과는 거리가 먼, 그저 예전에 조금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 불과하다.
선희의 태도에서 호감을 느끼는 세 남자는 선희가 '당당하고, 솔직하며,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선희의 태도는 이기적이고 무례하며 되바라진 젊은 여성에 불과하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자들을 이용하는 여성, 자신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모와 인기가 돈보다 훌륭한 자산이라는 것을 충분히 활용할 줄 아는 여성이라는 느낌.
홍상수의 영화에 정재영(재학)이 등장한 것은 뜻밖이었고 반가웠다. 정재영을 처음 본 것은 2000년에 발표된 류승완 감독의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였는데, 그때 전도연과 함께 주연으로 발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연기는 대단히 훌륭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이전에도 이미 여러 편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찾아보니 정재영이 나온 영화를 거의 다 봤음에도 그때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던 걸로 봐서, 단역으로 짧게 출연했던 것 같다.
'우리 선희'에서 정재영은 영화감독이지만 딱히 영화를 만들지 않고,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한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영화 속 세 남자 모두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아 홍상수의 페르소나인 것은 분명하다. 최교수도 영화학 교수이고, 재학과 문수도 영화감독이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외에는 마치 실업자처럼 지내는 듯 하다. 물론 시나리오를 쓰고,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영화 제작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투자자를 만나 돈을 끌어내야 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그런 많은 일을 하지만, 일상은 거의 실업자나 백수처럼 보내는 것을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재학(정재영)은 후배인 문수가 찾아오는 것도 짜증나고, 선배인 최교수가 찾아오는 것도 그다지 마땅찮다. 하지만 우연히 선희를 만나는 것은 반갑다.
정재영의 연기는 마치 애드립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다른 배우들보다 진지하면서 웃기다. 홍상수의 영화에서도 잘 어울리는 배우며 연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든 세 남자는 선희가 나타난 것에 반갑고 신기하고,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자 애 쓰지만, 선희는 세 남자를 두고 미련없이 떠난다. 그가 가고 싶었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따라서 영화 포스터는 실제나 현실이 아닌,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다. 별 세 개.


우리 선희
감독 홍상수 (2013 / 한국)
출연 정유미,이선균,김상중,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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