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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서편제

by 똥이아빠 201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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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편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곡절과 구비구비가 어쩌면 그렇게도 서럽고 한스러울 수가 있을까. 가을 낙엽을 휘몰아가는 찬바람같기도 하도 새벽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같기도 하고 한겨울 문살을 흔들고 지나가는 긴 한숨같기도 한 이야기.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람사는 모습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의 설레임으로 눈물을 삼키며 지켜봐야 했던 서편제. 복받쳐오르는 한을 삼키며 다시 인생의 숲으로 들어가는 동호와 송화의 만남과 이별을 지켜보면서 인생이, 삶이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도 판소리를 지켜가는 소리꾼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참으로 오랫만에 만난 보기드문 한국영화의 전형이며 해방 전 식민지 시대부터 전쟁이 끝나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깔고 판소리를 생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서러운 삶의 이야기이다. 스승의 애첩과 사랑을 했다는 이유로 파문을 당한 유봉은 지방으로 떠돌며 소리를 해서 먹고 산다. 그에게는 오가는 길에 주워온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소리를 가르치기 위해 데리고 다닌다. 유봉은 어느 고을에서 어린 사내아이를 기르고 있던 과부와 눈이 맞아 달아나지만 아이를 낳다가 과부는 죽고 만다. 그후 두 아이를 키우며 소리를 가르치는 유봉에게는 오직 판소리만이 그의 삶에 있어 전부이고 최고이며 마지막 가치이자 의미있는 일이었다.
 두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이 송화는 아버지 유봉의 뜻을 잘따라 소리를 배우고 동호는 고수로 성장하지만 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전쟁도 끝나고 급속하게 밀려들어오는 외세의 문화에 우리의 전통문화는 사라지고 판소리도 그 자리를 잃게 된다. 동호는 마음 속으로 사랑하는 이복누이 송화와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미워하다가 마침내 떠나가고 송화는 동호와의 이별로 충격을 받아 소리공부를 그만둔다. 그러나 유봉은 송화의 눈을 멀게해 다시 소리를 하도록 하고 점차 늙어가고 쇠락해가는 시대 속에서 유봉은 송화를 남기고 죽고만다. 송화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한 것이 바로 아버지 유봉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금도 내색을 하지않고 소리공부에만 전념한다. 유봉은 죽어가면서 이런 사실을 모두 알고, 마지막으로 서편제, 동편제를 뛰어 넘는 득음의 경지까지 이르라고 송화에게 당부한다.
 동호는 자리를 잡고 누이 송화를 찾아나서고, 구석진 산골마을 주막에서 만난 두 오누이는 소리와 북으로 서로 어우러져 그동안의 한을 푼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것, 말로는 늘 하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우리의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는지는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형편에서 판소리의 전승을 담은 이 영화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민중의 한이 어우러진 수준있는 영화였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주인공 동호가 누이인 송화를 찾아나선 것으로 이어져 마침내 서로 만나 회한을 풀어내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 사이에 가족사이며 판소리의 흐름, 한 인간의 서럽고 기구한 삶의 궤적들이 등장한다. 특히 송화의 삶은 영화의 중간에서부터 관객의 기대와 호기심을 유발하며 계속적인 긴장과 감정의 충만함을 가져온다. 송화가 살아가는 그 참담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모두들 눈물을 삼키게 되고 만다. 또한 사계절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이 강산과 흐드러지는 판소리 가락이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내 마음속의 정서에 물결을 일으켰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동호와 송화의 이야기가 마치 지금의 현실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말았다. 지금도 송화는 저 남도의 어느 시골주막에서 자신의 소리를 듣고싶은 사람에게 한을 넘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을 것만 같다. 나와 그들을 일체화시키는 이 감정은 그만큼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이 절실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때 우리의 전통문화가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버림받고 외국의 근본없는 쓰레기 문화들이 비싸게 대접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현상은 여전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리매김은 반가운 일이다. 이 영화는 판소리로 대표되는 우리 문화의 쇄락과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내고 있다. 비록 가족사적 성격을 띄고는 있지만 많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드러내기에는 가족사만큼 전형적인 방법도 없다. 마지막에 동호와 송화가 만나고 서로 한을 풀어내는 모습 속에서 성숙한 우리 전통문화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인생은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 한편을 보고나서 그 느낌만큼 절실하게 적지 못하는 이 천박한 글솜씨가 안타까울 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꼭 가서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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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누나와 아버지를 찾아 다니던 동호(김규철)는 보성 소릿재에서 주막 주인의 판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마을 대갓집에서 소리품을 팔던 유봉(김명곤)은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의 양딸 송화(오정해)와 함께 새 삶을 꾸린다. 금산댁이 아이를 낳다 둘 다 죽자 유봉은 아이들을 데리고 소리품을 판다. 동호에게는 북을 송화에게는 소리를 가르치던 중 동호가 생활고와 유봉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떠나자 유봉은 송화가 자신을 떠날까 봐 그리고 송화의 소리에 한을 심어주기 위해 그녀의 눈을 멀게 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스레 간호하는 유봉, 그러나 그는 죄책감으로 죽어가며 송화에게 그 일을 사죄한다. 
몇 년 후, 유봉과 송화를 찾아 헤매던 동호는 이름 없는 주막에서 송화를 만난다. 송화에게 판소리를 청하는 동호, 송화는 아버지와 똑같은 북장단을 치는 그가 동호임을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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