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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악인은 너무 많다

by 똥이아빠 201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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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인은 너무 많다

건달 출신으로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는 강필은 딸의 양육권 문제로 변호사 비용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 때 이문희라는 여인이 거액의 수표를 들고 찾아와 박용대라는 남자를 미행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 시기 박용대는 실종되고 이문희 또한 자취를 감추면서 강필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결국 스스로 사건을 풀어나가던 강필은 자신이 과거 일본군의 금괴와 연관된 큰 범죄의 중심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다음 영화'에서 가져 옴)

한국에서 '느와르' 장르 영화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리고 '느와르'와 '액션'을 비슷한 장르로 이해하는 관객들도 많다. 심지어 '액션 느와르'라는 딱지를 붙이고 등장하는 영화들도 있다.
영화를 볼 때 일부러 장르를 구분하면서 보는 관객은 거의 없으니, 느와르 장르의 영화들이 어느 정도 제작되고, 관객을 만나는지는 통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초기 느와르 영화들은 대개 느와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말타의 매', '빅 슬립' 같은 영화들이 그렇고 70년대 대표작인 '차이나타운', '택시 드라이버' 같은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로, 열혈 팬들을 거느리기 시작한다.
한국영화로는 '비트', '친구', '달콤한 인생', '비열한 거리', '신세계' 등이 느와르의 장르에 속할 듯 하고, 이 영화 '악인은 너무 많다'도 느와르 영화다. 감독이 느와르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느와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대중적 흥행에서 불리한 조건임을 감독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르 영화를 고집하는 것은, 감독의 철학이고 세계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 않는 영역에서 자신의 영화적 미학을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태도는 바람직하다.
다만, 그것이 충분히 공감을 얻으려면 영화의 작품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모든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세계를 영화로 표현하지만, 모든 영화감독들에게 '작품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작가주의 영화들은, 감독의 철학이 영화 속에서 현실과 사회를 깊이 있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묻게 되는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느와르 장르는 기본적으로 감독의 사회인식이 반영되는 영화이며,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은,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 속에서 현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현실은 대개 어둡고, 절망적이며, 우울하고, 참담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통스럽지만 해야 할 일을 한다. 그것이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끝까지 자기야 해야 할 일을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며, 세상은 무심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고, 그 어둠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별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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