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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사도

by 똥이아빠 201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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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조선 왕조에서 영조와 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말한다. 왕조, 즉 지배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왕의 시대로 역사를 구분하겠지만, 영조와 정조의 시대가 르네상스였다면, 그것은 오로지 민중들의 힘에 의해 그리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진년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은 격동한다. 조선 민중은 왜구의 침략에 꼼짝 못하고 쩔쩔 매며 도망간 지배세력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양반 세력의 가렴주구에 치를 떨며 오히려 왜구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할 정도로 지배세력을 증오하고 있었다.
신분 질서도 흔들리고, 민중은 지배세력이 더 이상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지배세력에 대한 분노와 함께 민중 전체의 의식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왕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자신의 백성을 지키지 못하고, 외적의 침략을 당해 전전긍긍한다면, 그 왕과 지배세력은 더 이상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왕조는 유지되었고, 양반 세력으로 대표되는 지배 집단은 무능과 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훌륭한 업적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 좋은 점과 성과를 높게 평가해야겠지만, 왕조로 인해 역사의 발전이 지체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역사의 뼈아픈 부분이다.

영조가 자기 아들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인 사정은 딱한 노릇이지만, 그 배후에는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의 권력 다툼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즉 지배 집단 내부의 권력다툼과 용렬한 아버지로 인해 그 아들이 죽게 된 사건이다.
영화는 훌륭하되, 우리가 영조와 사도의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결코 지배자의 시선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역사나 사회 현상을 볼 때, 쉽게 지배 집단의 시각으로 동화된다. 모든 기록된 역사는 지배자의 역사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 '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영조 당대에 사도의 죽음을 두고 민중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과연 사도의 죽음을 애달파 하기는 했을까? 양반의 가렴주구는 날로 더해가고 있고, 가뭄에 홍수에 온갖 세금과 부역으로 백성을 못살게 구는 세상에서, 왕세자가 죽었다는 것이 민중에게 그리 대단할 것도, 애닳플 일도 아니었을 것은 분명하다. 별 세 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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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내내 왕위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된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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