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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핵소 고지

by 똥이아빠 2017.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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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핵소 고지

데즈먼드 도스는 '버지니아 촌놈'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청년이다. 그는 어릴 때 동생을 때려 하마터면 죽일 뻔한 기억과, 폭력으로 어머니와 아들들을 비참하게 만들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에 '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다.
여기에 그가 가진 종교적 신념이 '집총거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이 영화는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이지만 결코 지루함을 느낄 시간이 없다. 의외로 앞부분에 도스의 어릴 때와 청년 때의 몇 가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것이 전쟁 영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앞부분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도스의 남동생 역시 군대에 지원 입대를 하고, 부모는 전쟁터에 나가는 두 아들을 어떻게든 말려보려 하지만, 청년들의 애국심은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외면한 채 전쟁터로 달려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의 민주적인 태도와 행동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또 교훈을 얻게 한다. 우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주인공 데즈먼드 도스는 평범한 미국 청년이었으나 그는 진정한 애국심으로 참전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에 자원 입대한다. 미국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한 이후, 본격 전쟁에 뛰어들게 되고, 미국 국민을 상대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여론을 일으킨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은 추축국과 연합국이라는 선악이 분명한 전선이어서 미국의 참전은 독일과 일본이라는 '인류의 적'을 섬멸하는 도덕적, 윤리적 입장에서도 우위에 서 있었다.

따라서 미국 청년들의 피끓는 애국심은 입대심사에서 탈락하면 자살을 할 정도로, 한편으로는 충동적이면서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크게 두 부분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주인공 레이먼드 도스의 개인적인 삶과 미군이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해서 벌였던 극악한 전투 상황이다.
도스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폭력에 대해서는 극도의 혐오를 드러낸다. 그의 아버지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이었고, 미루어 짐작하자면 전쟁 때문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를 겪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도스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폭력성은 그의 천성이라기보다는 전쟁에 참전했던 과거 경력에서 발생한 후천적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어떻든 도스는 '집총거부'라는 특이한 입장을 갖고 군에 입대하며, 이로 인해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그의 선택은 불명예 전역을 하거나, 전쟁 기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어느 쪽이든 선택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관련한 사례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도스는 자신을 '양심적 협력자'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이것은 퍽 생소한 개념인데, 도스의 경우 다만 총을 들지 않을 뿐, 군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모습이어서,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병역 거부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스처럼 '양심적 협력자'로 자처해서 총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는 역시 드물다고 봐야 한다.
도스는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도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 종파는 한국 기독교 단체에서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종파로 인한 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집총 거부'에 대한 일반 병사들의 거부감이 도스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도스가 놓인 딜레마-감옥이냐 불명예제대냐-를 해결하는 것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도스에게 애증의 대상이고, 폭력의 상징처럼 각인된 인물이지만, 도스의 아버지가 도스의 꿈을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싶지 않은 것은 어떤 부모든지 같은 생각이지만, 아들이 가진 신념을 존중하고, 죽음보다는 명예를 선택한 아들의 판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원하는 것을 보면, 도스의 아버지가 아들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전쟁에 참전할 수 있게 된 도스는 당연히 총을 들지 않고 전투에 참전할 수 있는 의무병으로 복무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미군의 오키나와 전투와 도스의 활약이 그려지는데, 이 전투 장면은 미장센도 훌륭하다.
오키나와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서 미군이 이오지마에서 겪은 지옥 같은 경험에 이어 다시 지옥같은 경험을 한 전투였다. 이오지마 전투와 관련해서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후속편인 '퍼시픽' 시리즈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도 잘 그리고 있다.
옥쇄를 각오하고 오키나와를 지키는 일본군의 발악에 맞서 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결국 섬을 탈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미군이 죽거나 다친다. 그리고 도스는 전쟁터를 뛰어다니며 부상당한 군인들을 구하는데, 그가 수 만 명이 죽은 전쟁터에서 총도 없이 뛰어다니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 하다.

결국 그는 혼자 부상병 75명을 구하고, 다음 날 전투에 참전해 부상을 당하고 후송되는데, 그는 비전투요원으로 미국의 최고 훈장인 '명예 훈장'을 받은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사실에 바탕하고 있지만 몇몇 장면들은 각색되어 실제 사건과는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약해지지 않는다.
영화는 한 사람의 영웅적 행동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더 돋보이는 것은 미국 군대의 민주적인 내용과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였다. 이 영화를 단순히 전투영화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 정의, 진정한 애국심, 개인주의를 존중하는 사회의 분위기, 민주주의 사회에 관한 훌륭한 본보기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멜 깁슨이라는 것도 반갑다. 멜 깁슨은 그동안 뛰어난 액션 배우로 활동했지만 감독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도 점차 명감독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전쟁 액션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하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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