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의 참담한 실패

최근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조합원 투표를 통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리하는 데 찬성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아자동차 전체 노동자의 약 9%가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제 노동자의 노동자로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상급노조인 금속노조에서는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이런 투표와 그 결과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징계하지 않겠다고 했다. '불법'이 아니니까 괜찮다는 말은 사기와 기만, 부패와 비리로 가득한 수구 정당의 대변인이나 할 수 있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소위 민주노총이라는 곳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노동운동이 언제부터 '합법'의 영역에서 이루어져 왔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노동운동이 단 한번도 올바르게 꽃피운 적이 없는 나라다. 역사적으로 기념할 1987-88년 노동자대투쟁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대기업 노동조합의 부패와 기득권의 옹호로 인해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노동해방의 기치는 이미 완벽하게 사라졌고, '잃는 것은 노예의 사슬이고, 얻는 것은 노동해방'이라는 역사의 주인으로서의 기꺼운 자부심 역시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자본과 적당히 타협하고, 야합하면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더 키워가는 대기업 노동조합과 극히 소수의 정규직 노동조합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그나마 10%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기업 노동조합이 조직력과 자금력에서 전체 조직을 좌우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어려서 '소년 노동자'로 성장해 공장과 공사장을 전전하며 내 '노동력'을 자본에 팔아 먹고 살았던 경력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의 노동자는 여전히 나에게 동지적 연대감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하고-물론 그것이 노동자의 탓은 아니지만-자본의 분열책동으로 갈라진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고 내부의 분열을 키우며, 차별과 갈등을 키우는 장면들을 보면서 노동자의 조직인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노동조합이 무능하고 부패하게 된 이유는 당연히 그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의식이 썩어가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노동운동의 역사와 노동운동의 이념, 자본주의의 필연적 모순, 노동자의 역사적 의무 등에 관한 교육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적어도 80년대에는 수 많은 사회과학 서적으로 자발적 공부를 하던 노동자들이 많았다. 당시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워낙 엄혹하기도 했거니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주의의 투사로서 노동자는 대학생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었다.
노동자가 마르크스와 레닌을 공부하지 않고, 메이데이 투쟁의 역사적 사실인 시카고 노동자 대투쟁에 관해 공부하지 않고, 미국 노동운동의 피비린 현장을 들여다 보지도 않고, 레닌이 지도한 볼쉐비키가 어떻게 공장에서 노동자를 결집하고, 그들과 함께 학습하며, 러시아 혁명을 이끌어 갔는지도 배우지 않고,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지도 않고 감히 '노동운동'을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대기업 노동조합의 대의원이 되면, 현장에서 노동을 하지 않게 되고, 노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자'의 의식을 갖지 않게 되므로, 그는 노조정치꾼으로 변하게 된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쳐서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이며, 자본보다 더 악랄한 분열과 편가르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대기업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면 대형 승용차에 기사까지 두고 날마다 고급 술집에서 양주를 마시며, 회사의 간부들과 뒷거래를 해서 자신과 측근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의 이익을 배신한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2500만 노동자들 가운데 불과 250만 명의 노동자만이 노동조합에 가입된 상태에서, 그마져도 건강한 노동조합의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노동조합의 임원들이 또 하나의 부패한 권력으로 떠오른 지금,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명맥이 거의 끊겼다고 봐도 좋을 지경이 되었다.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함몰된 것을 마르크스나 레닌은 가장 위험한 상태라고 경계했다. 그것은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신이 썩어가고, 자본주의의 체제에 순응하는 노예의 상태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필연적으로 '반자본주의'운동이며, 반자본주의 운동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는 혁명적인 운동을 말한다.
한국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노동조합이 과연 있는가? 자본의 앞잡이인 권력기관(정부)의 폭력조직(경찰과 검찰)에 잡혀들어가 학살당하는 노동자가 80년대 이후 나온 적이 있는가? 자본이 던져 준 약간의 먹이를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그야말로 진흙탕 속의 개들과 같은 모습이 지금의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는 아닌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적인 노동자들-대개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도 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갖는다면, 그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쓰레기이며, 노예가 노예를 보면서 비웃는 꼴이다.
나는 이미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지지를 끊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어도, 더 이상 '동지적 연대'를 느끼지는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한국에서 '귀족'처럼 살아가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 외에 모든 노동자는 개처럼 목줄이 매여 끌려다니다 비참하게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웃고 있으며, 자본과 자본의 앞잡이 언론들은 그런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는 것 역시 노동자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들이 노예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해체하지 않는 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그저 영원히 노예로 살다 죽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단지 조금 형편이 나은 노예로 산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일년에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는 노동자들이 저녁이면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고, 프로야구 이야기나, 드라마 이야기나, 부르주아 정당의 정치인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공장에서, 현장에서 불평불만을 터뜨릴 줄은 알면서도 동지와 함께 노동자의 처지와 자본의 모순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책을 읽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는 노동자들이 과연 자신의 현 상황을 어떻게 올바로 인식할 수 있으며, 개선과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까. 평생 노예로 만족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인간들이 과연 자신을 '노동자'라고 말할 자격이나 있을까? 그들은 그냥 개돼지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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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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