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어느 날

by 똥이아빠 2017. 5. 28.
728x90


[영화] 어느 날

나중에 알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이윤기 감독의 첫 작품이 '여자, 정혜'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하다. 그리고 '멋진 하루' 역시 꽤 괜찮은 작품이었는데, 이윤기 감독의 일관된 흐름을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 영화는 아무 정보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연출의 느낌이 조금 달랐다. 외로운 남자와 교차 편집되는 장례식 모습. 이것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 수 있고, 남자 주인공이 놓여 있는 현실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히 남자의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내가 죽고,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한 여성의 보험 문제로 병원을 방문하면서 관객은 주인공 강수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 보게 된다. 뇌사상태에 빠진 미소를 보면서 합의를 강요하는 회사의 강요에 문제를 느끼고, 놀랍게도 미소의 유령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이 영화는 슬프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희노애락을 반드시 겪게 되고, 그러면서 나이 들고, 늙어가면서 삶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알아간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처럼 삶의 어느 지점에서 깊은 슬픔을 겪어야 하는 때는 살아가면서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가올 슬픔과 괴로움을 미리 막을 수도 없고, 회피할 방법도 없다. 그것들은 그냥 때가 되었을 때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남은 사람의 고통은 삶의 남아 있는 나날까지 이어진다. 그 통증, 아픔은 시간의 흐름으로 조금씩 무뎌지고, 희미해지겠지만 나무에 박힌 못의 상처가 끝까지 남듯, 사람의 마음에 남은 상처 또한 그 흔적이 오래 가기 마련이다.

인간의 삶을 '고'라고 말하는 건 불교에서 말하는 기본 세계관인데, 언듯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인간의 삶은 '희'나 '락'보다는 '애'에 가깝다. 슬픔이 기저에 흐르는 삶은 인간이 타고난 운명이다. 그것이 불완전한 진화 때문이든, 미성숙한 정신 때문이든 인간은 현재의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지혜로운 삶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적 세계관은 인간이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배우고 깨달은 삶의 태도를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집착하지 않고, 애태우지 않고, 내게 다가오는 인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운명론적이지만 한편으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종교도 당대 정치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어서 종교가 체제에 순응하는 도구로 쓰여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 즉 '슬픔'에 바탕한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다.

주인공 강수는 앞으로도 남아 있는 날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이제 어제와 같지 않을 것이고, 슬픔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한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전설의 주먹  (0) 2017.06.13
[영화] 불한당  (0) 2017.06.10
[영화] 보안관  (0) 2017.06.05
[영화] 특별시민  (0) 2017.06.02
[영화] 지렁이  (0) 2017.05.28
[영화] 프리즌  (0) 2017.05.06
[영화] 보통사람  (0) 2017.04.11
[영화] 조작된 도시  (0) 2017.03.20
[영화] 싱글라이더  (0) 2017.03.14
[영화] 루시드 드림  (0) 2017.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