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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택시운전사

by 똥이아빠 2017.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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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를 '객관적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 내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야 한다는 말을 하겠지만, 한국현대사에서 발생하고, 지금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 수괴인 전두환 일당이 뻔뻔하게 살아 있는 지금, 이 영화도 단지 재미로만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 스무살이었고, 서울에 있었으며 1978-1979년 무렵에 광주 연초제조창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의 언론 보도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 이후 전두환 일당이 저지른 학살과 범죄행위를 너무도 똑똑히 눈으로 보면서 살아왔다.
내가 서울에서 들었던 '유언비어' 가운데는 특전사 군인들이 마약에 취해서 여학생의 유방을 칼로 도려냈다는 말과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는 말도 있었다. 그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5.18광주'의 현장을 담은 영상이 전국으로 돌면서 은밀하게 상영되기 시작했고, 그 영상이 아마도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주인공 김만섭은 끝내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채 창조되었고,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실존 인물로 등장한다.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화려한 휴가'와 비교할 수 있다. '화려한 휴가'가 내부의 시선 즉 광주시민의 시선으로 항쟁을 바라본 것이라면, 이 영화는 외부의 시선, 독일기자 피터와 서울의 택시기사 김만섭의 시선으로 광주항쟁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한국말을 못하는 피터는 부실한 통역을 통해 광주의 실상을 보게 되는데, 그때 실제 감정을 격렬하게 느끼는 것은 서울에서 온 택시운전사 김만섭이다. 피터의 시선과 감정은 김만섭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두 사람이 외부에서 온 것은 분명하지만 김만섭은 지역이 다를뿐 한국사람이라는 점에서, 광주의 모습을 직접 느끼며 외국기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또 하나, 택시기사 김만섭은 그 당시 평범한 중년 가장을 대표한다. 그 역시 가난한 노동자임에도 지극히 보수화된 인물로, 데모하는 대학생을 비난하고, 돈 벌러 사우디에 갔다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평범하고 보수적인 인물이 바라보는 광주항쟁은 어떤 것일까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는 철저하게 정부와 언론에서 발표하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광주의 실상을 눈으로 본 다음부터 그는 변하기 시작한다.
김만섭이 혼자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그의 심정이 바뀌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보수적인 인물이 역사적 사실에 눈을 뜨고,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게 되며, 정의와 양심이 개인의 이익을 이기는 감동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김만섭은 혼자 서울로 안전하게 올라올 수 있었지만, 가던 길을 돌려 피터를 찾으러 간다. 그것은 작게는 택시기사와 고객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만, 독일 기자 피터가 취재한 광주의 실상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것을 그 스스로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어린 딸을 혼자 키우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보수적인 인물이 역사의 현장에 타의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그 현장에서 진실과 양심을 발견하고 개인과 가족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는 진화를 통해 이타적 행위가 결국 자신(의 유전자)에게도 이로운 것임을 알게 되고, 이타적 행위를 유전으로 물러받도록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악한 인간들이 많은 것은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적 요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만섭의 경우, '각성하는 개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거나 보수적인 인물이 역사적이고 극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의식으로 각성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5.18광주항쟁이 바로 그런 역사적 사건이다. 

김만섭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평범한 서민들은 1980년 당시 광주의 현실을 믿지 못했다. 상식적으로도 자기 나라의 군인이 국민을 그렇게 참혹하게 학살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진실은 전두환 일당에 의해 은폐되거나 왜곡되었다. 광주시민은 졸지에 폭도가 되었고, 선량한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칼에 맞아죽어갔다.
택시운전사 김만섭과 독인인 기자 피터는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학살의 현장을 눈으로 보면서, 평범한 삶과는 이별하게 되는 필연의 순간을 맞이한다. 두 사람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직업인이기도 하면서, 역사의 현장에서 각성하게 되는 보통사람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이미 소위 영화평론가라는 자들이 이 영화를 평가했는데, 나는 이들이 보여주는 어이없는 판단(평점)을 보면서 짜증이 났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 소위 영화평론가라는 자들이 보여주는 별점과 한줄평을 보면서 이 영화에 관한 선입견을 갖게 된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잘 만들었으며,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이용철 평론가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모두들 대단한 비평가가 나셨다. 평론가들의 평에 의지해 영화를 볼 것인지 판단하는 것처럼 잘못된 경우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일반 관객의 반응이 더 솔직하고 정직하다고 본다. 실제 이 영화도 평론가들의 평점은 낮은 반면, 일반 관객의 평가는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평점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평론가 쓰레기들'이라는 욕이 나왔다. 영화를 조금 안다고 깝죽거리는 것들이 '평론가'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대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한 것들이 뱃지를 달고 나라는 망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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