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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자아의 각성, 조커

by 똥이아빠 201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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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각성, 조커

1
소심하고 선량한 한 남자, 아서가 사악한 범죄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울하고 괴롭다. 그 남자가 극빈자로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많이 배우지도 못해서 도움을 얻을 곳도 찾지 못하고, 뇌질환을 앓고 있어서 자기의 의지와 다른 행동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인물로 보이거나, 멸시, 조롱당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면, 이웃은,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있지만, 누구도 나서서 이 남자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

국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립병원 운영을 폐쇄하고,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 예산을 삭감하고, 의료보험을 중단한다. 빈민과 서민은 분노하고, 고담시의 정책에 항의한다. 이제 조커가 될, 가난하고 뇌질환을 앓고 있는 아서는 가난에 허덕이고, 피에로 분장으로 먹고 사는 자신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세상에 절망하다 한 가닥 희망을 찾는다. 엄마가 부치라는 편지를 훔쳐보고, 고담시의 최고 부자인 토머스 웨인이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30년 전, 토머스 웨인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엄마는 비록 불륜이었지만 토머스의 아이를 출산했고, 비밀서약을 했지만, 지금은 몹시 형편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아서는 그 편지 내용을 믿고 토머스 웨인을 만나지만, 정작 충격적인 이야기만 듣는다. 아서의 엄마는 젊어서부터 정신병에 시달렸고, 아서는 입양한 아이라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주장과 토머스의 주장 사이에서 아서는 갈등한다. 시립정신병원에서 엄마의 의료기록을 찾은 아서는 절망하지만,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엄마가 옳았거나, 정신병자의 헛소리일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았다.

2
자신을 지키라면 동료가 건넨 총을 받아든 아서는, 동료의 모함으로 해고당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건장한 남자 세 명에게 린치를 당하다 돌발적으로 총을 쏴 죽인다. 언론에서는 피에로 분장을 한 남자가 중산층 사무직 남성 세 명을 살해한 것을 두고 빈부격차에서 발생한 분노의 발산이라고 보도하고, 도시의 빈민, 서민들은 살인자 피에로를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아서는 자기가 토머스 웨인의 아들이 아닌, 입양아라는 사실-기록에 남아 있는-을 알고 뇌졸중을 일으킨 엄마를 살해한다. 여기서, 엄마를 살해하는 동기는 분명치 않다. 엄마는 늘 아서에게 웃으며 살라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선한 행동을 하며 살라고 말한다. 아서는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하며, 늘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피에로로 분장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그의 소박한 꿈은, 그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과거를 소환하면서, 그의 내면에서 심리적 폭발이 일어난다. 그것은 어릴 때 겪었던-지금은 전혀 기억에 없는,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워버린-심각한 폭행에 관한 기억이었다. 엄마의 애인들 가운데 아서와 그의 엄마를 참혹하게 폭행한 남자가 있었다. 그 때문에 엄마의 정신병-그 이전에 있었다해도-은 더 심해졌고, 아서는 뇌를 다쳐 발작성 웃음병에 걸리게 된다. 폭행의 트라우마는 잠재의식으로 남았고, 그의 삶은 단 1분도 행복하지 않았지만, 그는 늘 웃으려고 애썼다.

3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아서는 어렵게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발작성 웃음병이 도지면서 준비한 대사를 할 수 없었다.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이상하게 보였고, 어설프고 멍청한 모습으로 방송에서 조롱당하게 된다. 아서가 존경하는 코미디언이자 쇼를 진행하는 머레이 프랭클린은 아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코미디언이자 쇼 진행자로, 그의 롤모델이었지만, 바로 그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어설픈 행동이 동영상으로 비쳐지고, 머레이가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면서 심한 배신감을 갖는다.

아서는 상상 속에서 머레이 프랭클린을 '아버지'로 생각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투사하고 있었고, 그의 쇼에 출연하는 것을 일생의 소원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내부에서 분노와 증오가 폭발하고, 돌발적으로 세 명을 살해한 이후, 그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서 그 우스꽝스러운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끌어 아서를 출연시키고 싶다는 전화가 왔을 때, 아서는 생각한다. 생방송에 나가서 사람들을 웃길 유일한 기회라고. 그리고 그는 멋진 조커 분장을 하고, 붉은색 자켓과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선다.

4
아서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는 몸무게 23kg을 줄였다. 그의 몸은 '조커'를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메타포이며, 극빈 청년의 가난과 고통을 드러내는 웅변이자, '조커'로 다시 태어나는 육화의 증거물이기도 하다. 그가 춤을 추는 건 피에로를 연기할 때 뿐이지만, 조커로 거듭나면서 추는 춤은 연기로 추는 춤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커는 진심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자신을 억누르던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워진,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음을 몸으로, 춤으로 드러낸다.

그가 얼굴에 분장을 하고 '조커'가 되는 것은, 그의 인격체가 '아서'가 아닌, '조커'로 전환된 것을 뜻한다. 심리적 이중인격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조커 분장을 선택한 것이고, 살면서 단 1분도 행복하지 않았던 아서와는 달리, 조커는 늘 웃는 얼굴이다. 그가 집에서 조커로 분장하고 있을 때, 예전의 동료 둘이 찾아온다. 한 명은 아서가 해고되도록 음모를 꾸몄던 동료였고, 다른 한 명은 왜소증이 있는 동료였다. 아서는 반쯤 조커로 분장한 상태에서 자신을 음해해 해고당하게 만든 동료를 살해한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왜소증 동료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말한다. 이때, 왜소증 동료는 잠긴 문고리를 열지 못하다 아서에게 부탁한다.

아서, 문을 좀 열어줄 수 있겠나?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동료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옆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그 역시 죽음의 공포를 참으며 말한 것이다. 이때 아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문을 열어주면서 말한다.

지금까지 내게 잘 대해준 사람은 네가 유일했어.

5
아서는 돌발적으로 세 명의 남자를 죽였고,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으며, 동료까지 잔인하게 죽인다. 방송에서는 지하철에서 세 명을 죽인 피에로 분장의 남자를 찾지만, 이 사건이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으로 번질 거라고는 이삭도, 조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담시는 자본의 착취가 극심한 사회로, 빈부 격차가 커서 가난한 자들의 불만이 팽배한 사회다. 차기 고담시장으로 출마하는 사람이 바로 토머스 웨인이고, 그는 아서가 생물학적 아버지로 여기는 사람이지만, 그에게서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지하철 살인사건으로 빈부 갈등이 폭발하고, 기득권과 부르주아, 자본가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빈민들의 시위가 발생한다. 아서는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출연해 자신이 지하철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하고, 자기를 모욕하고 조롱한 머레이 프랭클린을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상황에서 총으로 살해한다.

아서는 '조커'라는 새로운 인격체를 통해 탈바꿈하며, 소심하고 불행한 남자에서 싸이코패스로 거듭난다. 이제 조커는 과거의 인물 아서와 단절한다. 그는 불행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가 겪었던 지옥보다 끔찍한 과거의 시간들-엄마의 애인에게 당한 극심한 폭행, 사람들의 조롱, 멸시, 지독한 가난, 웃기지 않는 코미디언-은 모두 잊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할 것이다.

6
조커는 배트맨과 맞서는 악역이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당당히 주연이었고, 그는 고담시를 악의 도시로 물들이고, 배트맨을 타락시키려는 유일한 악당이기도 하다. 조커는 늘 죽음을 갈구하기 때문에 죽지 않으며, 정의로운 자들의 위선을 비웃고 조롱한다. 가진 자들의 탐욕을 처벌하고, 평화를 파괴하며, 사람들의 믿음을 산산히 부서뜨린다. 행복하고 싶었지만 행복할 수 없었던 아서, 웃으며 살고 싶었고,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었지만 웃길 수 없었던 아서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제물로 바쳐 새로운 인격으로 태어난다. 언제나 웃는 얼굴, 조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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