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마 레이니 - 그녀가 블루스

by 똥이아빠 2020. 12. 24.
728x90

마 레이니 - 그녀가 블루스

 

소품 같은 영화였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영화다. 음악 영화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흑인 음악가들이 등장하는 흑인의 역사 이야기가 본질인 영화다. 그럼에도 음악은 훌륭하고, 서사는 비극적이다. 미국 흑인들의 삶에 내재된 필연적 비극성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블루스의 어머니' '마' 레이니가 활동하던 1920년대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때였다. '마' 레이니는 1886년 조지아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던 1880년대는 흑인이 노예에서 해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것이 1865년이고, 링컨이 이끄는 북부가 전쟁에 이기면서 자연스럽게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다. 이미 영국에서는 1833년에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미국 특히 남부에서 흑인 노예는 노동력의 절대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백인 농장주들이 노예제 폐지에 강력하게 반대했고, 이것이 결국 남북전쟁의 빌미가 된 것이다.

'마' 레이니는 1886년에 태어났는데, 흑인음악 블루스는 이때 서서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블루스의 뿌리가 아프리카라는 건 흑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내용이다. 블루스는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이자 '저항 음악'으로 태어났으며, 흑인이 집단으로 거주한 남부에서 태어나 흑인들의 대이동을 통해 북부로 퍼져갔다.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은 딜레마에 놓인다. 남부는 농업-주로 면화-이 발달했고, 북부는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는데, 북부에서 공업이 가파르게 발전하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반면 남부의 농업은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덜 필요하게 되고, 흑인들은 생존을 위해 남부에서 북부로 대이동을 한다. 이때 움직인 흑인이 대략 6백만 명이라고 한다.

흑인들은 북부로 이동해 노동자로 변신한다. 남부에서 노예로 살았던 것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 아니, 어쩌면 더 나쁜 상황에 놓였을 수 있다 - 북부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역시 노예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북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두고 북부의 공업 자본가와 남부의 농업 자본가가 서로의 이권을 지키려는 다툼이라는 것이 정설인데, 북부의 공업 자본가가 승리함으로써 흑인은 노예에서 해방되었지만, 노동자가 되어 착취당하는 본질에서는 변함이 없게 된다.

마치 한국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군사독재정권이 농업과 농민을 수탈하면서 농산물 가격을 묶어두고, 농민이 생존을 위해 도시로 올라와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과 매우 비슷한 과정이 이때 이미 발생한 것이다. 흑인들도 대도시 변두리에 자리 잡으면서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

 

1927년, '마' 레이니는 고향 조지아주 콜럼버스를 더나 북부 시카고로 향한다. 시카고에는 파라마운트 레코드사가 있고, 이곳에서 음반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 잠깐 콜럼버스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들이 시카고로 와서 음반 녹음하는 작업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흑인 음악인 '블루스'는 '마' 레이니가 태어나던 1880년대 이후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마' 레이니가 시카고로 가서 음반을 녹음하게 되는 배경에는 남부 흑인들이 북부로 대이동해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흑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음악인 '블루스'를 듣고 싶어하고, 음반 회사 - 백인들이 운영하는 - 는 흑인 노동자들이 구입하는 음반을 만들어 판매해서 돈을 벌기 위해 당대 최고 유명한 블루스 가수 '마' 레이니를 초대한 것이다. 이때 음반 회사는 '블루스'를 '인종 음악'이라고 불렀다. 백인들은 여전히 흑인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있지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흑인 가수와 밴드를 존중해 주는 척 할 뿐이다. 극중에서 '마' 레이니의 태도가 매우 공격적이고 불손하게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마' 레이니는 10대 때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데, 18살-1904년-에 결혼하면서 남편 윌리엄 '파' 레이니의 이름과 성을 붙여 거트루드 맬리사 닉스 레이니로 이름을 바꾼다. 남편의 이름에 '파(pa)'가 있어서 자신의 중간 이름에 '마(ma)'를 넣었다.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남부, 남서부 일대를 다니며 공연을 했고, 1920년 무렵에는 이미 전국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가 최초로 음반을 녹음한 때는 1923년으로, 파라마운트 음반회사와 계약한다. 하지만 그는 1928년에 마지막 음반을 내고, 1933년 그의 나이 47세에 은퇴하면서 더 이상 순회공연도, 음반 녹음도 하지 않는다. 

'마' 레이니가 1933년에 은퇴하게 된 배경은 블루스 가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실력이 출중한 가수들이 많아지면서 여성 보컬의 인기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 된다. 또한 흑인 음악을 백인들이 가로채 연주하고, 음반을 내면서 흑인 가수들이 설 무대가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흑인 음반 제작자가 나타나지만, 초기에는 백인들이 음반 제작자로 '인종 음악'을 만들어 흑인 예술가를 착취하고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 '마' 레이니가 음반을 녹음하는 것도 같은 이유고, 트럼펫을 불던 재능 있는 연주자 레비가 작곡한 음악을 단돈 5달러에 하는 백인 제작자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마' 레이니는 블루스 음악의 초기 가수이자 음반을 낸 가수로 '블루스의 어머니'로 일컬어진다. 이 영화는 '마' 레이니가 음반 녹음을 하러 와서 발생하는 반나절의 시간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무대연극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 영화의 원작이 희곡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작은 어거스트 윌슨의 희곡이다. 윌슨은 희곡작가이면서 60년대 흑인 민권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고, '흑인 행동주의자 극단'을 창설해 흑인운동의 일환으로 희곡을 쓰고, 연극을 발표한 실천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1982년 작품 '지트니'로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진출했고, 이 영화의 원작인 '마 레이니의 검은 궁둥이'를 1984년에 발표하면서 뉴욕비평가상을 받는다. 이후 1987년, '펜스'로 퓰리처상, 뉴욕연극비평가상을 받으면서 유명 작가의 자리를 굳힌다.

연극으로 이미 크게 성공한 작품이고, 영화로도 잘 만들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로 덴젤 워싱턴이 참여했는데, 그도 '마' 레이니의 존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마' 레이니와 그의 밴드가 시카고에 도착해 음반회사의 녹음실에서 음악을 녹음하고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밴드 연습실에서 밴드 멤버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 있다.

'마' 레이니와 백인 음반 제작자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과 갈등은 영화에 긴장을 불어 넣는다. 아직 '세계대공황'이 닥치지 않은 때여서 거리는 약간의 여유가 보이는데, 스쳐가듯 보이는 시카고의 거리나 상점에서는 흑인과 백인의 구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이들이 함께 섞이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백인 음반제작자는 '마' 레이니의 까다로워 보이는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서 음반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음반을 만들기만 하면 흥행은 완전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음반회사의 제작자인 백인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흑인이라 해도 큰돈이 되기 때문에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밴드 연습실에서는 네 명의 흑인 연주자들이 연습한다. 트럼펫, 더블베이스, 트럼본, 피아노를 맡은 연주자들이다. 이들은 노인에서 청년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보이며, 하루 일당 25달러를 받고 연주를 하는데, 그나마도 이들은 괜찮은 처지였다.

트럼펫을 부는 레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이가 있다. 털리도, 커틀러, 슬로드래그는 밴드 활동을 오래 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직업에 비교적 만족하고 있다. 레비는 재능 있는 트럼펫 주자이면서 작곡도 하고, 자신의 밴드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큰 청년이다. 이들은 '마' 레이니의 노래에 맞는 밴드 연습을 하는데, 레비는 자신의 연주 방식을 고집한다. 연주하면서 애드립도 많고, 기존의 전통 형식의 블루스에서 보다 빠르고 경쾌한 인트로를 넣으려 한다. 이들이 겪는 음악적 갈등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이기도 하다.

레비를 제외한 세 명의 나이든 흑인은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체념한 삶을 살아간다.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흑인의 삶에서나마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레비는 자신이 백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렸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레비의 아버지는 어렵게 돈을 모으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넓은 땅을 매입한다. 농사를 지어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던 레비의 아버지가 며칠 외출할 일이 생겼고, 그 사이 백인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레비의 어머니를 강간하고, 레비의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집에 돌아온 레비의 아버지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렵게 마련한 땅을 그들 백인 - 아내를 강간한 백인 - 에게 팔고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다음, 레비의 아버지는 혼자 몰래 고향을 찾아가 네 명의 백인을 살해하고 잡힌다. 레비의 아버지는 산채로 화형을 당하면서도 백인을 향해 웃었노라고 레비는 말한다.

레비의 뒤를 이어 커틀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흑인 목사가 기차역에 도착했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이미 기차가 떠난 뒤여서 망연하게 있었는데, 건너편에서 백인들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걸 알고 기차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목사여서 성경책을 들고 있었지만, 백인들은 흑인 목사를 '깜둥이'라고 불렀고, 성경을 뺐어 찢어버렸으며, 조롱한다. 이때 레비가 커틀러의 말을 가로막으며 흑인에게 '신'은 없다고 말한다. 불행한 처지에 놓인 흑인을 도와준 신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 대목이다. 흑인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원하지 않는 삶을 강제당한 흑인의 처지와 백인에게 억압, 착취당하는 존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강하게 들어 있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블루스'를 노래하는 '마' 레이니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살았던 당대의 흑인의 삶을 그린 것이다. 그들에게 블루스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사회에 저항하는 언어이기도 했다. '마' 레이니는 이렇게 말한다. "노래는 기분 좋으라고 하는게 아냐,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하는 거지." 블루스를 이해하면, 흑인의 삶이 보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