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기/만화를 읽다

엉클어진 기억

by 똥이아빠 2022. 11. 28.
728x90

제목 : 엉클어진 기억

작가 : 사라 레빗

출판 : 우리나비

 

가족 가운데 누군가 치매(알츠하이머)를 앓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치매를 앓아도 그 고통과 괴로움을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사라 레빗은 조금 특별하다. 그는 그림과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픽노블에서 작가가 자기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건 흔하다. 작가는 개인적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그 경험은 재해석되고, 보편화한다. 

작가는 엄마가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기록을 시작한다. 작가의 엄마는 불과 52세에 치매가 진행되는데, 모든 검사를 하고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보통 알츠하이머는 뇌 속에 이상 단백질(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타우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또한 21번 염색체에 있는 아밀로이드 전구단백질(APP) 유전자에 돌연별이가 있다면, 65세 이전에 치매가 나타나며, 이것을 '조발성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이라고 한다. 작가의 엄마가 바로 이 병(조발성 가족성 알츠하이머병)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14번 염색체에 있는 PS1, PS2 유전자의 돌연변이도 같은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뇌조직 검사가 있었지만, 작가의 가족은 그 검사를 포기한다. 어떻게도 엄마의 치매 진행을 막을 수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의 변화만 따라가면, 인간이 아무리 지성과 이성의 동물이라도 물리적으로 뇌가 망가지는 병에 걸리면, 지성과 이성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이 '동물'로서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날 때는 뇌의 퇴화가 진행하면서다. 이성과 의지가 사라지고 본능만 남게 될 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인간'으로 존재했던 과거는 분명하지만, 뇌의 퇴화는 과거와 (치매를 앓고 있는) 현재를 단절한다. 연속성이 사라지고, 가족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그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사회적 기준으로 '인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건 우리가 잘 아는 '좀비'와 비슷하다. 좀비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이성과 지성이 사라지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우리는 '좀비'를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형체는 인간이되, 존재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한다. 자기 의지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자신을 짧은 순간, 정신이 온전할 때 알아채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질병은 치매(알츠하이머)가 유일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조차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서, 기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작가의 엄마는 전형적인 진행을 보이는데, 처음에는 기억이 사라지고, 언어가 사라지며, 근력도 사라지고, 시력은 정상이어도 사물을 구분하지 못하며, 시공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판단력이 사라지며, 망상에 시달리고, 우울증이 나타나고, 감정의 변화가 급격하고, 밤이 되면 더욱 난폭해지고 가출한다.

 

치매를 앓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 겪는 고통 역시 만만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서히 인간성을 잃어가는 걸 지켜보는 건 어쩌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일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르'에서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자기 손으로 죽이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는 식물인간이 된 제자를 코치가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이다. 

서양에서 먼저 '안락사'와 '존엄사'를 논의하기 시작한 건, 동양의 가족주의보다는 좀 더 개인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인데, 작가의 가족은 최대한 가족이 함께 지내며 돌보다 마지막 순간에 요양원 입원을 결정한다. 이들도 환자를 요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비인간적이고, 책임을 떠넘기는 비윤리적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이 오래 병을 앓고 있거나, 치매로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요양원에 맡기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작가의 가족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간병인이 도와준다. 간병인이 있어 가족은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치매(알츠하이머)는 단지 뇌 질환이 아니라, 육체 전체가 기능이 떨어지고, 퇴화하면서 서서히 죽는 병이다. 작가의 엄마도 병이 발견되고 불과 6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 시간동안 가족들은 아내가, 엄마가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가 나빠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픔, 고통, 비탄, 분노, 좌절, 절망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늘 우울하거나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고, 순간, 순간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엄마가 운명하고 나서도 투병 기간의 기억이 가족을 더 가깝고 깊게 유대감을 갖도록 작용한다.

인간성이 파괴되는 병을 앓아야 하는 건 비극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주관적으로 표현하거나 객관화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병을 앓는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지만, 자신에게 내재화하지 못한다. 이 거리는 가족의 사랑으로 좁힐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아무리 피를 나누고, 부모와 자식 사이라 해도, 개별적 존재가 갖는 자기 정체성과 독립성이 있고, 이들은 독립적 존재로 다른 환경과 생각, 가치관,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성인이 된 가족은 서로에게 타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시간과 사건을 그렸다. 독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감정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내 가족 가운데 누군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할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이기에 이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실은 작품보다 훨씬 고통스럽겠지만.

반응형

'책읽기 > 만화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밖의 사람들  (0) 2022.11.28
레드 로자  (0) 2022.11.28
악마의 일기  (0) 2022.11.28
아리랑  (0) 2022.11.28
메즈 예게른  (0) 2022.11.28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1) 2022.11.28
괴물들  (0) 2022.11.28
아버지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  (0) 2022.11.28
바늘땀  (0) 2022.11.27
세 개의 그림자  (0) 202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