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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JFK

by 똥이아빠 201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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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 - 10점
올리버 스톤 감독, 케빈 코스트너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역시 올리버 스톤이었다.
 그가 만든 일련의 영화들 -월남전을 주제로 한 반전과 인권을 다룬 7월 4일생, 살바도르, 버디 등등-을 보면서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갖었던 나로서는 이 영화 역시 다른 어떤 말보다도 그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영화는 나의 예상을 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잘만든 영화였다. 가장 잘 만든 영화에 붙일 수 있는 다른 수식어를 찾지 못해서 ‘잘만든’이란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내가 ‘잘만든’이란 말을 사용할 정도면 그 영화는 최고 수준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올리버 스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의 창작이 아니다. 이미 발표된 소설을 영화로 개작한 것인데, 올리버 스톤은 소설을 영화화하는데 있어서 이미 몇 차례 경험이 있고 그 작품들이 거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번 영화도 원작 소설을 각색하고 극본을 자신이 써서 영화를 만들었다.
  사실, 케네디의 암살은 처음부터 많은 의문과 논란이 되어왔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이 냉전이데올로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극우주의자들의 득세로 여론화되지 못하고 비밀 속에 묻혀있었을 뿐이었다. 이 영화는 케네디 암살의 객관적 사실들을 종합하여 암살의 주범이 누구이며 왜 케네디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적인 요소를 살펴볼때, 이 영화가 아카데미 촬영상과 편집상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쉽게 납득을 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수준있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수준있는 영화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화자찬이라는 비난을 받겠지만 실제로 내 뒤에 앉았던 어떤 남자는 영화를 보는 가운데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영화에 완전히 빠져서 넋을 잃고 있었는데 이 극심한 정서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우리에게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의 영화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 짐 개리슨 검사로 나온다. 미국의 영화가 한 세대를 거치는 것이 눈에 확연히 띄는 증거로 최근에 나오는 젊은 배우들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케빈 코스트너나 로버트 드 니로 등 젊고 개성있는 배우들은 예전에 미국배우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겉멋들린 표정은 없어서 좋다. 이 영화에서도 케빈 코스트너는 주인공이긴 하지만 영화를 끌고 나가는 역은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죤 에프 케네디인 것이다. 그가 달라스에서 암살 당하는 필름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내용을 이룬다. 케빈 코스트너는 이 필름을 분석하고 증거를 제시하여 자본가와 극우보수주의자들이 범인임을 입증할려고 노력한다.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정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보편적인 인간의 자유와 지배계급의 음모를 밝히려는 불굴의 투지가 살아 숨쉬고 있어서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암살자 오스왈드의 정체에서부터 그 뒤에 숨어있는 미국 CIA,FBI,국방성,경찰,그리고 자본가들의 음모가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때론 탄성으로, 때론 치떨리는 분노로 주먹을 불끈 쥐며 영화 속에 빠져들어갔다. 다큐멘타리 식으로 편집한 암살장면의 필름은 매우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여 극적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대단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암살의 진행과정과 추리과정은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오스왈드라는 젊은 청년에 의해 세 발의 총을 맞았다는 케네디의 암살 현장에는 모두 열 발의 총탄자국이 있었고 교차사격에 의해 등 뒤와 정면에서 총을 맞고 케네디는 죽었다. 이러한 증거들을 필름까지 동원하여 증명해 보였으나 배심원들의 평결 결과는 암살에 가담한 한 CIA 앞잡이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짐 개리슨의 논고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케네디 암살 이후에 킹 목사와 케네디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도 암살 당한다. 60년대 미국의 암흑의 시기였고 극우보수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의 결탁으로 썩어버린 미국은 오늘날까지 그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래도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짐 개리슨과 같은 살아있는 양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떠한가. 케네디는 제3세계인 한국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 처음에는 의심하더니 그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거라고 판단되자 서슴없이 승인을 했다. 제3세계에서 일어난 온갖 폭력과 테러와 암살과 억압은 모두 은폐되었고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세계의 정세가 움직였다. 케네디의 암살은 분명 더럽고 추잡한 미국의 군부와 자본가의 음모였지만 케네디에 대한 시각은 이 영화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의 세계정세와 힘의 역관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쿠바를 비롯한 제3세계는 어떠한 상태에 있었던가. 미국에서 한 양심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을 때에도 제3세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군부독재의 폭력으로 소리없이 죽어갔다.
  인간 사회에서 어떠한 불평등과 차별도 없는 자유와 평등의 시대가 오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세상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쟁할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다고 암살을 하고, 권력을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그러한 야만적인 행위가 존재하는 한, 인간의 투쟁은 언제나 외롭고 고독한 짐 개리슨처럼, 그러나 조금도 굽히지 않는 열정과 신념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지금 태국에서 제2의 광주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듯하다. 잠롱선생이 체포되고 군부는 시민들에게 총질을 하고 있으면 이미 수 백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분통이 터지고 치가 떨린다. 왜 어느 나라나 할 것없이 군사독재 정권은 한핏줄을 가진 동족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것일까. 권력에 대한 무한한 탐욕은 과연 민족을 완전히 무시하고도 탈취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러한 무리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고 또 앞으로도 볼지 모른다. 지금 태국에서 벌어지는 이 엄청난 비극 앞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의 추악함과 잔인한 피냄새를 맡는다. 군부독재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자기 동족을 살해하는 그런 짐승같은 놈들과 한 하늘에 산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태국국민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게 정의의 불화살을 쏘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이땅의 젊은이들도 마음으로나마 태국 민중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JFK
감독 올리버 스톤 (1991 / 프랑스,미국)
출연 케빈 코스트너,토미 리 존스,케빈 베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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