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특별한 영화 ‘꽃잎’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은 한국영화가 시작된 이후 최고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꽃잎’이라는 영화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며 감독과 배우, 무대가 하나로 어우러져 완성도의 극치를 이룬 최고의 영화이다.
영화를 연출한 장선우 감독은 ‘영상미학’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장선우 감독의 연출에 의해 ‘꽃잎’은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교차되는 흑백 화면, 화면에 얼룩지는 검은 피.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의연한 광주 시민들의 얼굴들, 소녀의 공포와 죄의식...
흑백 화면으로 보여주는 그 강렬한 이미지들은 광주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전율’할 만큼 충격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중간에 삽입된 에니메이션 처리 역시 실험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절제된 영상이 관객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는 것을 감독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감독의 뛰어난 미학이 뒷받침 된 것은 분명하지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문성근의 ‘개좆같은 노가다 장씨’ 역할은 그가 맡았던 여러 영화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력과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무엇보다, 누구보다, 가장 빛난던 것은 역시 이정현이었다. 이정현이 아니었다면 영화 ‘꽃잎’은 이런 걸작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정현은 정말 신들린 아이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소녀의 광기어린 눈빛,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갈갈이 찢겨버린 영혼의 고통을 온몸으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눈물짓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의 연기는 연기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어린 소녀의 영혼을 갈갈이 찢어버린 80년 5월, 광주의 그 잔인한 기억은 영화 속에서 우리의 기억 속으로 들어온다. 총에 맞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도망쳐야 했던 소녀의 죄의식은 바로 우리의 죄의식이며 떨치지 못하는 역사의 죄의식이다.
가슴 떨리게 눈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죄의식으로 미쳐버린 소녀의 애절함으로 우리는 화면 속의 영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영상, 잊어버리고 있던 죄의식의 영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소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장씨’의 서늘한 뒷모습과 어느 곳에서건 그 소녀를 보게 되면 놀라지 말고 따뜻한 시선으로 잠깐 관심을 보여주라는 ‘우리들’의 말을 들으면서 소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젖어오는 것이다.
마지막 자막이 다 올라가고 불이 켜질 때까지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꽃잎’은 떨어져도 언젠가는 다시 필 것을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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