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께
믿고 싶지 않습니다. 믿을 수도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했다는 말을 23일 아침,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당연히, 루머라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제가 살고 있는 양평군의 군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을 했습니다. 돌아가신 것을 믿지 않고, 마음에서도 떠나 보낼 수 없는 분이었지만, 더 늦으면 조문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사흘, 인터넷에서, 거리에서 많은 시민들이, 네티즌들이 한 마음으로 마음 아파하고, 깊이 슬퍼하며 눈물 흘리고, 가슴을 치는 것을 보며, 먹먹한 마음으로 바라만 봤습니다.
글을 쓸 수도 없었고, 음악도 들을 수 없었고, 웃을 수는 더욱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애틋함이,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갑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나라당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변함없이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오늘까지, 언론을 통해 알고 있고, 각종 매체에 나온 모습을 보며 그 참된 인간성만은 진실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극우 세력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비웃고, 깔보고, 비아냥거리고, 조롱하고, 악다구니를 할 때도 ‘노무현’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극우 파시스트들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을 비웃고 있습니다. 김동길이라는 늙은이, 조갑제라는 인간사냥꾼을 비롯해 소위 권력과 금력을 가졌다는 자들은 ‘상고 출신’의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나는 믿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미 보았던 숭고한 죽음의 예를 들 때, 앞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 포함될 것입니다.
1970년에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다 분신한 전태일 열사, 1973년에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우다 마지막 순간에 권총으로 자살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생각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록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극우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온몸을 던져 항거하신 것임을 잘 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인터넷에는 예전 노무현 대통령님의 여러 사진과 동영상, 음성 등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진, 동영상, 음성은 하나같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 불의에 항거하고,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 지도자의 모습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님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따뜻한 웃음과 정이 넘치는 말,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유머, 권위를 버리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깊은 정, 무수한 역경을 딛고 일어서 평범한 서민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의지,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해 보이지 않지만 사회의 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더욱 간절히 보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과 함께 이 나라의 민주주의도 죽었습니다. 이승만의 독재, 박정희 군사독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독재, 김영삼의 나라 망치기까지 한국 현대사는 피투성이였습니다. 극우 파시스트들은 이 시기를 ‘좋았던 시절’이라고 말합니다.
국민들이 피를 빨리고, 가난과 사회적 고통 때문에 무수히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극우 파시스트들이 바로 그 서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을 죽인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으로 탄생한 노무현 정부를 ‘좌익 정권’이라고 왜곡하며 끊임없이 딴지를 걸었던 바로 그 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인 것이고, 민주주의를 죽인 것입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와 맞서 싸우기 전에 마지막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박해 받게 될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내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과 그 운명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 다른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것이고, 곧 가로수 길들이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이 걸어 다니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살아 있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살아 남은 자들의 몫입니다. 이 나라에서 억압과 폭력과 통제가 판을 치는 한, 극우 파시스트 세력이 득세하는 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진보 진영에서도 많은 비판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일부 불만스러운 내용이 있었고,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판은 ‘인간 노무현’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의지와 철학이 훌륭해도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 노무현이 들어야 하는 비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외로웠을 것입니다. 더더욱 죄송하고 미안한 것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 봉하 마을로 돌아온 이후, 극우 파시스트들의 악랄하고 집요한 공격을 막아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책임은 아니겠지만, 노무현 대통령님이 세상을 떠난 지금, 너무도 깊이 후회되고 마음 아픕니다. 소위 진보 진영이라고 해서 ‘개량주의자 노무현’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본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데올로기를 떠나 우리는 인간과 인간으로,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먼저 맺었어야 했는데, 모든 것을 먼저 따지고, 이론화하고, 논쟁을 하고, 흑백을 가려야 하고, 선명성을 드러내야 하는 강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록 세계관이 다르다 해도,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온화한 웃음 속에 깃든 뚝심을 느끼며, 생각만 많고 말만 살아 있는 소위 ‘지식인’이라는 것들과는 다른,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과 함께 민주주의도 떠나보내야 하는 비통함 때문에 더더욱 보내드리기 어렵습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먹먹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깊은 밤, 인터넷에서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흐릅니다. 정의로운 대통령, 서민을 위한 대통령, 인정 많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대통령을 죽인 자들이 음침한 곳에서 웃고 있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죽음은 끝이지만, 시작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죽음은 현재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지만, 역사에서는 시작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시작하는 기폭제가 될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마음이 덜 아픕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마음 깊이 빌고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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