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
류승완 감독 작품. 믿고 보는 감독의 영화라서 개봉을 기다려 보러 갔다. 개봉하자마자 인터넷에는 이 영화에 관한 부정적인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비교해서 평가하는 내용도 많았는데, '덩케르크'는 훌륭하고, 이 영화는 실망스럽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런가.
'덩케르크'는 영국군의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이고, 독일군에게 패퇴하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영국인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기 나라의 승리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렸다. 그래서 과장하지 않은 그의 영화가 오히려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했다는 평가가 대체로 옳다고 본다. 철저한 고증과 사실성(리얼리티)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덩케르크'가 놀란 감독의 다른 영화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함도'는 조선이 일제의 강점기에 있을 당시에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의 조선, 지금의 한국 입장에서 그 역사는 패배의 역사이며 고통과 아픔의 역사다. '군함도'라는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철저한 고증과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영화든 다른 예술적 방식으로든 일제 강점기에 벌어졌던 일본제국주의의 잔혹함을 충분히 그리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가 애국심에 기대는 영화는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이나 관객은 이 영화를 두고 '국뽕' 영화라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애국심을 부추기는 무분별한 내용이라면 당연히 거부감도 갖고, 비판이나 비난도 해야겠지만, 이 영화에서 '애국심'을 부추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애국심에 기대서 흥행에 성공하려 했던 시도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지적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국뽕'영화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이 영화가 당시 '군함도'의 현실을 과장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지적 역시 적당하지 않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라는 섬에서 발생한 일제의 야만성과 조선인의 고통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와 상상력의 결합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으로, 고통의 역사를 영화로 희화하는 것이라는 비판 역시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의견으로 들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를 비난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제작되는 모든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희화화'의 함정을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에서 개연성이 부족하다던가, 사실성이 떨어지거나 어색하고 과장된 장면들을 골라내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이 영화가 재미없게 느껴지고, 마땅치 않은 관객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는 '덩케르크'는 오히려 심심했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 영화 '군함도'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우리는 조선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룬 예술 작품들도 많이 나왔고, 그 가운데서 대중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수단인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가 많이 부족하고, 그래서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코미디이건, 비극적인 내용이건, 역사를 비틀건 상관 없이, 일제강점기는 조선민족이 철저하게 패배한 시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그 패배와 굴욕을 극복하기 위해 피를 흘렸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도 친일매국노를 단죄하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독립운동가로 위장한 친일매국노가 등장한다. 이 영화가 역사를 충실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 의미는 우리의 젊은 세대, 어린 세대가 보고 배울 점이 있다고 본다. 우리의 교육은 친일매국노에 관해 여전히 관대한 편이어서,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 젊은 세대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런 영화를 통해 조선의 역사, 한국의 근현대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증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의 존재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애국심'이라는 단어로 폄하하는 것이라면 더 이상 논의는 진전되지 않겠지만, 근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민족'이나 '국가'는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고 보면, 그것을 무시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나 '개인주의'가 더 진전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고 본다. 그나마 일제강점기와 친일매국노를 다룬 영화나 예술작품들도 한국의 정치상황이 그나마 민주적으로 바뀌기 시작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터여서,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예술작품들 가운데는 '군함도'보다 더 깊이 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국심'을 부추기는 것은 박정희 군사정권 이래 모든 독재정권이 필수적으로 해왔던 국민 세뇌 과정의 하나였다. 지금도 '애국심'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것은 수구꼴통집단들이나 하는 짓이지, 상업영화에서 '애국심' 운운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고, 그런 말을 믿는 것도 어리석은 태도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겪었던 참혹함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접목한 액션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려는 감독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한번쯤 더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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