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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by 똥이아빠 2017.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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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 두 명의 싸이코패스가 등장하고, 주인공이 싸이코패스이자 17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라는 것, 주인공 병수는 살인을 멈추고 딸과 함께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평범한 삶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또다른 싸이코패스이자 경찰인 태주는 우연한 자동차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병수는 최근 발생한 사건의 범인이 태주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불규칙하게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의 상태 때문에 자신이 보고, 들었던 현실까지도 믿지 못하게 된다. 태주는 경찰이라는 합법적이고 강력한 권력을 가진 위치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병수는 과거에 자신이 죽인 17명의 살인에 이어 최근의 살인도 자신이 저지른 것인지 스스로 의심한다. 
병수와 태주의 공통점은 싸이코패스라는 것과 그들의 어린시절에 심하게 학대를 당했다는 것이다. 학대로 인해 싸이코패스가 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나기를 싸이코패스로 태어났는데 거기에 어린시절 학대의 경험이 더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어린시절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불가항력의 폭력에 노출되면 그 고통을 잊으려고 스스로 기억을 조작한다. 그 과정에서 고통의 감정을 삭제하게 되는데, 고통 뿐 아니라 다른 감정들도 함께 지워지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싸이코패스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싸이코패스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싸이코패스와 맞서는 상황은 흥미롭다. 병수 역을 하는 설경구는 치매를 앓는 싸이코패스 노인을 열연한다. 그는 기억을 잃기 전에 왼쪽 눈과 볼을 씰룩거리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따라해봤다. 제법 그럴 듯 하게 된다. 
병수는 아버지를 죽인다.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도, 아버지도 아닌 것이다.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병수의 가족은 행복해진다. 병수의 살인은 엄마와 누나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병수는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각성하게 된다. 병수 주변에 있는 '나쁜 인간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 그의 임무가 된다. 그것은 스스로 부여한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기도 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반면 태주는 똑같이 어릴 때 학대를 당했지만 증오의 대상은 오로지 여성에게 향한다. 자신을 학대한 것은 아버지였지만, 믿음을 배신한 것은 어머니였다. 육체적 학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믿음과 사랑이 배신당할 때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태주는 어머니를 증오하고, 그래서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여성들만 골라서 살해하는 것이다.
병수는 치매에 걸린 것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들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벌을 받는다고 여긴다. 살인과 치매가 연결되는 고리는 없지만 병수는 적어도 자신을 약간이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그는 딸을, 그것도 자신이 낳은 딸이 아님에도 딸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태주를 죽인다. 자신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병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선천적 싸이코패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선택한 연쇄살인자일 뿐이다. 
병수를 연기하는 설경구의 독보적인 연기 말고는 이 영화에서 특별히 인상적인 배우는 보이지 않는다. 병수의 딸로 등장하는 여배우는 한국영화-나도 나름 영화를 좀 본다고 자부하는데도-에서 처음 본 듯한 얼굴이었다. 연기는 평범했고, 이 어둡고 무거운 소재에서 이질감이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것이 배우든, 영화의 인물이든. 
분장에 공을 가장 많이 들인 것도 설경구였고,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도 설경구였으니 이 영화는 설경구에 의한, 설경구의 영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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