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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새로운 예능, 효리네 민박-진심을 담다

by 똥이아빠 2017. 9. 25.


새로운 예능, 효리네 민박-진심을 담다

JTBC의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이 오늘 막을 내렸다. 모두 14회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예능'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사람들 사이의 따뜻함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 준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방송사에서 기획하고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단연코 가장 훌륭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민박집 주인 부부인 효리와 상순의 살아가는 모습, 직원이자 주방이모로 활약한 아이유 지은, 그리고 효리네 민박을 찾아 온 13팀 39명의 손님들이 보여 준 모습이 그것이다.
한국 최고의 스타인 이효리와 아이유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으니 제작진은 이들의 인기를 이용해 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효리네 민박'을 기획한 제작진은 어쩌면 훨씬 더 차원 높은 생각을 했던 듯 하다. 인위적이고 가공한 프로그램에 식상하고 질려버린 시청자에게 편안하고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방송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작진의 의도는 정확히 성공한 것이고, 방송의 미래를 한발 앞당기는 뜻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효리네 민박을 찾아온 13팀 39명의 친구, 부부, 가족, 동료들은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로, 1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이들이 민박집에 머물며 보여준 태도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들 교양 있고, 친절하며 상대를 배려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 부부는 여러 밑반찬을 잔뜩 가져와서 마치 딸네 집에 오는 엄마처럼 반찬도 만들고 막걸리도 만든다. 사람들은 좋은 환경에 놓이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순간, 방송이 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제작진에서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상을 방송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해지는 것 역시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그 사람의 말과 표정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지난 촛불집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선량하고 따뜻하며 정의롭다는 것도 확인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모두들 저마다의 일에 바쁘고, 시간과 돈에 치여 여유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을 모아야 할 일이 있거나, '효리네 민박'처럼 마음을 편하게 내려 놓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면 우리들은 선량한 시민으로 돌아가 서로를 배려하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효리와 상순은 민박집의 호스트이고 회장님과 사장님이자 일꾼이고 잡부 노릇을 담당하지만, 직원 한 명을 들임으로써 민박집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서울에서 내려 온 직원은 '주방 이모'이기도 하고, 설거지 담당이기도 하고, 민박 손님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는 일꾼 역할을 하지만 그녀는 허당같고 조금은 멍한 직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속이 꽉찬 속깊은 직원이었다. 이름을 대면 모를 사람이 없는 유명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지만 그녀 역시 지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효리네 민박을 찾았고, 보름 남짓 함께 지내는 동안 '효리네 민박'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물론 그녀 자신에게도 위로와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나이 차이가 있는 지은(아이유)이가 큰언니뻘인 효리와 함께 지내면서 속마음을 열어 보이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두 사람의 진심을 담은 대화는 보는 이들에게도 마음이 뭉클하고 따뜻한 장면이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살면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효리와 상순은 자신의 집을 민박집으로 열면서, 톱스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얼마나 허상이고 왜곡되었는가를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았다. 효리네 집은 여느 잘 사는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먹는 것, 입는 것도 금으로 칠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집에도 물이 새고, 세간살이도 지저분하다.
효리와 상순이 부러운 것은 그들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에 일정한 시간 노동을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다. 효리와 상순도 그런 점에서 특권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꼭 권력을 가져야만 특권층인 것은 아니다.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가능한 현실이다.
두 사람은 예술가이고,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재능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남은 삶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효리와 상순은 보통사람들의 롤모델이기도 한 것이다.
효리는 톱스타인 만큼 팬도 많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어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팬 뿐만 아니라 안티팬까지도 거느리고 있는데 자신의 꾸미지 않은 모습과 일상을 거의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어렵다. 효리는 이제 아이돌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최고의 탑스타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 자신,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까지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의 내면이 성숙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상순의 경우 '효리네 민박'을 통해 예능에 등장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덕을 많이 본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는 부드러운 남자였고, 재능 있는 예술가이며 집안 일도 잘 하고, 모닥불도 잘 피우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람이어서 회를 거듭할수록 상순의 인기는 올라갔다. 그는 아재개그를 하는 중년의 남자이면서,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교양 있는 시민이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는 평범하지만 좋은 남편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아주 드물게 유능한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히 '엄친아'의 모습이다.
방송에서 예능은 스스로 선정적인 방향으로 에스컬레이터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극적인 소재와 장면, 편집을 통해 시청자의 눈길을 끌려는 것이 보통의 통속적 예능 프로그램인데, '효리네 민박'은 이런 경향을 따르지 않고 있다. 심심하고 차분한 편집을 통해 오히려 시청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위로 받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이런 기획을 한 제작진은 시청자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고 보여진다.
나는 TV를 안 보고, 집에 TV도 없지만 '효리네 민박'은 빠뜨리지 않고 봤다.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유일하게 유치하지 않고, 선정적이지 않으며, 시끄럽지 않고, 불쾌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교감과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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