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과
이렇게 좋은 영화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참 안타깝고 아쉽다. 이 영화는 2005년에 만들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2008년에 개봉했고 관객은 불과 5만 여명에 불과했다. 이 영화를 만든 강이관 감독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지 않은데,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
영화를 보는 연령대에 따라 평가가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20대 후반의 여성이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의 성장을 담고 있다. 주인공 현정은 7년 동안 연애를 한 남자친구 민석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일방적으로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는다. 곧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던 현정에게 그 말은 충격이었다. 그 직후 회사 빌딩에서 우연히 만난 상훈은 현정에게 구애하고, 심심하고 재미없는 남자 상훈과 결혼한다.
서로를 알 시간이 적었던 두 사람은 신혼이지만 왠지 서먹하다. 그 서먹함이 두 사람의 성격에서 오는 것인지, 연애 시간이 짧아서인지, 어느 한쪽의 문제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상훈은 지방으로 전근을 신청하면서 현정에게는 회사에서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신혼이면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현정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상훈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가 살람을 한다. 이미 임신을 한 상태여서 그가 서울에 있어도 일을 계속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현정에게 예전 애인 민석이 찾아온다. 상훈과 현정의 갈등이 조금씩 깊어져 가고, 민석은 현정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민석은 자신이 현정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현정은 버스터미널에서 민석에게 사과를 한 봉지 사 준다. 아이를 낳은 현정은 다시 회사에 취직하고, 상훈이 지방에 있는 동안 다시 민석을 만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상훈에게 이혼하자고 말한다. 현정은 민석과의 만남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민석과도 완전히 결별하고 상훈에게 민석을 만났던 것을 고백한다.
현정은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똑똑하고 교양 있는 여성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는 평범하지만 꽤 괜찮은 여성이고, 7년이나 사귄 남자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결별을 선언하고 나서 그의 삶은 달라진다. 차라리 현정이 남자에게 먼저 이별을 선언했다면 어땠을까. 현정은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닌 것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현정은 사랑한다는 확신도 없이 상훈과 결혼한다. 상훈의 적극적인 구애도 한몫 했겠지만 현정은 자신이 상훈을 선택하는 것이다. 무뚝뚝하고 소심한 상훈은 경제적으로도 아내와 처가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자격지심이 생기는데, 이런 요소들이 두 사람을 서먹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민석과도, 상훈과도 관계가 자꾸 어긋나고 일그러지는 와중에 현정의 친정에서는 아버지가 퇴직을 하고, 여동생은 여전히 취직을 하지 못한 채 히키코모리가 되어 있어 엄마는 몹시 괴로워한다. 현정은 상훈과 이혼을 하겠노라고 선언하고, 이혼서류까지 준비해 두지만, 상훈이 밤늦게 집에 돌아오자 그를 침대에서 안고 미안하다고 되뇌인다. 그런 현정의 '미안하다'는 사과는 앞선 민석의 사과와 민석에게 건네 준 사과와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또 다른 의미를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현정은 사랑이라는 개념을 예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랑을 하나의 환상이나 꿈으로 그렸던 것이 과거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사랑은 상대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상대방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점까지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현정은 몇 년 전의 자신과는 달라졌다. 훨씬 성숙하고 현명한 여성으로 변했으며, 마음도 넓어졌다. 이제 우리는 상훈이 어떻게 변했는지, 변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상훈은 단순한 성격이어서, 현정의 태도에 따라 그의 모습도 달라질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은 변하고, 성장한다. 현정과 상훈은 그렇게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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