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시의 앨리스
빔 벤더스의 이 영화를 못 봤다면, 그가 만든 일련의 로드 무비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유명한 '파리, 텍사스'도 이 영화의 연장선에 있고, 가장 늦게 만든 '돈 컴 노킹'까지를 묶어 로드 무비 3부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영화는 1974년에 발표했으니 빔 벤더스는 20년마다 비슷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빔 벤더스 영화에서 그를 상징하는 '로드 무비'의 아이콘 같은 작품이다. 어른과 아이가 길을 떠나 어디론가 가게 되고, 두 사람은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처럼 살아가며, 나중에는 헤어지게 된다는 설정은 빔 벤더스의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다.
주인공 필립은 프리랜서 작가로, 독일에 있는 신문사 의뢰를 받아 미국 기행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하고 미국에서 한동안 생활한다. 하지만 그는 글을 쓰지 못하고, 대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미국 풍경을 담는다. 그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혐오와 역겨움인 걸 보면, 천박하고 싸구려에 불과한 미국 문화에 질려서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듯 하다. 그럼에도 필립은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한다. 그는 원고 마감 날짜가 지나서 더는 체류할 명분이 사라지자, 자동차를 팔고 독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공항에서 우연히 어떤 모녀를 만나고, 함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이의 엄마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딸 앨리스를 암스테르담까지 데려다 달라는 부탁이었다.
졸지에 어린아이를 떠맡은 필립은 난감하지만 앨리스와 함께 미국을 떠난다. 필립은 앨리스의 할머니가 살고 있다는 부피탈을 향해 가지만, 어렵게 찾은 할머니의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두 사람은 목적지를 잃고 결국 필립은 앨리스를 경찰서에 맡기고 떠난다. 하지만 앨리스는 경찰서를 탈출해 다시 필립과 만나고, 두 사람은 필립의 부모님의 집으로 가는 페리에서 경찰에 잡힌다. 필립이 앨리스를 경찰에 맡기고, 경찰은 연락망을 통해 앨리스의 할머니를 찾았으며 앨리스의 엄마도 미국에서 돌아와 둘이 함께 경찰서에 왔었다고 전한다. 졸지에 필립은 앨리스를 납치한 꼴이 되었지만 전후사정과 함께 필립은 경찰서에서 풀려난다.
불과 며칠 동안의 여행이었지만, 필립과 앨리스는 정이 든다. 앨리스는 아빠가 없었고, 필립은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앨리스같은 똑똑하고 예쁜 딸이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 듯 하다.
흑백 필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화면과 이 영화를 반짝거리게 하는 앨리스의 천진하고 똘망똘망한 연기가 눈부시다. 앨리스 역을 한 옐라 로틀랜더는 1964년생으로, 현재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필립 역의 루디거 보글러와 나이 들어 만나서 그때 영화 촬영하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잔잔한 슬픔과 애처러움이 묻어나지만, 살아가는 것이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그래서 외로움과 서러움도 혼자 견디고 마음에 묻으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영화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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