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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더 캡틴

by 똥이아빠 2020.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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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캡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지만, 비이성, 광기의 시대에서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블랙 코미디. 영화는 매우 역설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입장에서 독일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마치 '세르비안 필름'처럼 세르비아인 감독이 자기 나라에서 저지른 폭력을 포르노에 빗대어 고발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헤롤트가 우연히 발견한 장교복을 입으면서, 제복의 힘에 경도되는 과정과 인간성이 파괴되는 과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4월, 헤롤트 일병은 탈영한다.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듯, 이 시기에 독일군 탈영병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전쟁 끝무렵이니 완전히 수세에 몰린 독일군이 계속 후퇴하고 있었고, 여기서 죽는 건 그야말로 개죽음이라고 생각한 병사들이 하나둘 탈영을 시도했다.

독일 헌병대에서는 이렇게 탈영한 군인을 잡아들이거나 즉결 처형하기도 했는데, 이 와중에 헤롤트 일병의 실화가 발생한다. 헤롤트는 탈영을 하지만 당장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막막하다. 그러다 우연히 길가에 세워진 군용 짚차에서 트렁크를 발견하고, 그 안에 공군 대위의 제복과 군화를 비롯한 훈장 등 완벽한 세트를 발견한다.

고작 스무 살의 어린 헤롤트였지만, 이미 1년 정도 전방에서 전투에 참전했었고, 초반에는 매우 영웅적인 군인이어서 '철십자훈장'을 받을 정도로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 헤롤트가 어떤 이유에서 탈영을 한 것인지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리지만 이미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철십자 훈장까지 받은 경력을 보면, 나름 배짱도 있고, 머리도 있는 인물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헤롤트는 장교 군복을 차려 입고, 스스로 장교가 된 것으로 자기 최면 및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탈영병을 모아 '헤롤트 부대'를 만든다. 그는 후방을 다니며 마주치는 탈영병을 규합하고, 농가에서 밥과 술을 얻어 먹으며 다니는데, 탈영병을 추적하는 헌병대를 만나 위기에 놓이지만, 헤롤트는 자기가 '최고지도자'의 직접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큰소리 치며 위기를 넘긴다.

헌병대 대위와 함께 탈영병들이 잡혀 있는 임시수용소에 도착해 수용소장 쉬테의 환대를 받는다. 쉬테는 탈영병들을 죽이고 싶지만, 그럴 경우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불만만 터뜨리고 있는데, 헤롤트가 쉬테에게 '총통의 특명'을 받고 있으니 자신이 직접 탈영병들을 처리하겠다고 큰소리 친다.

 

헤롤트는 단지 자신이 살기 위해 공군 장교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장교가 되었다는 확신에 차서 말하고 행동한다. 그가 일병이었을 때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탈영병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쥐게 되면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벌어지는 상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헤롤트와 그의 부대가 탈영병 약 90여 명을 대공포로 살해한다. 탈영병이라 해도 같은 독일인이고, 전선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임에 틀림없으며, 헤롤트 자신도 탈영병이었던 걸 생각하면, 헤롤트는 자신이 탈영병이라는 죄의식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헤롤트가 갑자기 장교복을 입고, 장교의 권력을 갖게 되면서,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이때 헤롤트의 본성이 잔혹하고 폭력적이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전투를 통해 선량한 청년이었던 헤롤트가 점점 괴물로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헤롤트의 행위가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있어도, 독일군이 같은 독일군을 살해한다는 점에서 나치의 폭력성, 전쟁광 히틀러와 독일군의 야만성을 풍자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헤롤트의 광기는 순박한 청년이 전쟁에서 미쳐가는 과정과 함께, 당시 1차,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광기와 폭력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건은 뒤에서 발생한다. 탈영병들을 살해한 헤롤트와 그의 부대는 신고를 받고 들이닥치 육군헌병대에 체포된다. 헤롤트도 이 과정에서 체포되며 그가 장교가 아닌, 일병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헤롤트는 군사법정에 서게 되는데, 재판장은 장교사칭, 탈영병 학살의 죄를 물어 사형을 집행하려 하지만, 다른 장교가 헤롤트의 행동은 독일군인으로 충분히 할 수 있었던 행동이며, 독일이 전쟁에서 져도 나중에 독일군의 일부는 비밀 저항조직을 만들어 적들과 싸울 것이며, 이때 헤롤트 같은 군인이 필요한 인재라고 옹호한다.

독일의 군부는 연합군에 패배한 다음에도 어떻게든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헤롤트 같은 인물을 독일군의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할 정도라면, 독일군부는 히틀러처럼 이미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작동하지 않는,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는 헤롤트가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지만 무사히 탈출해 숲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 헤롤트는 그로부터 얼마 살지 못하고 참수형을 당한다. 전쟁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독일이 패하고, 헤롤트는 항구도시이자 해군주둔지인 빌헬름스 하펜으로 가서 굴뚝청소부로 일하며 살았다. 그가 욕심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면 아마 늙어죽을 때까지 살았겠지만, 1945년 5월에 빵을 훔치다 영국 해군에게 체포된다. 당시 영국 해군은 이 지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하고 있었다.

단지 빵을 훔쳤다는 가벼운 죄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헤롤트는 자기가 군인이었을 때 저질렀던 장교사칭과 탈영병 학살까지 모두 밝혀졌고, 영국 해군은 헤롤트를 끌고 수용소가 있던 아셴도르퍼모어의 수용소 부지로 이송되어 학살당한 장소에서 195구의 유해를 발굴한다. 영국 해군은 헤롤트와 그의 부대원들을 검거했고, 모두 여섯 명이 체포되어 다시 재판을 받았다. 이 가운데 다섯 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헤롤트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1946년 11월 29일, 볼펜뷔텔 교도소에서 단두대에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선고받고, 모두 참수되었다. 

이때 헤롤트의 나이는 불과 스물 한 살. 전쟁이 헤롤트를 괴물로 만든 것일까, 아니면 헤롤트의 내면에 있던 괴물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권력을 가진 자가 광기에 휩싸이기 쉽고, 이성을 잃으면 얼마나 위험해지는가를 헤롤트의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어리기만한 헤롤트는 그래서 더욱 쉽게 권력의 노예, 권력의 광기에 영혼을 빼앗겼을 수 있다. 당시 독일 전체가 이미 미쳐버렸고, 나치의 광기에 휩싸인 뒤여서 청년들의 생각도 그렇게 세뇌되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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