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플래쉬 오브 지니어스

by 똥이아빠 2011. 10. 15.
728x90



거대기업 포드를 상대로 한 사람의 발명가가 전투를 벌인다. 발명가의 특허를 훔친 포드. 시종일관 뻔뻔함으로 무시하고, 12년의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발명가. 하지만, 법은 발명가의 손을 들어준다. 해피엔딩. 하지만 사람이 아닌, 거대한 조직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진실이 이긴 걸까?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거대기업을 상대로 개인이 특허권 전쟁에서 승리한 사건을 그린 해피엔딩이지만, 이와 비슷한 문제는 여전히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의 기술을 대기업이 뺏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개인이 대기업에게 기술을 뺏기고도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이 영화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제도적인 문제라는 데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특허권이나 권리가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사회에 공헌하면, 그만한 대가와 보상은 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지금처럼 특허나 기술이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사회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도 카피라이트에 대항해 카피레프트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의 특징인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체제를 무너뜨릴 만큼의 결집된 힘이 없기 때문에 부당함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 특히 '새로운 기술'이란 정확히 '자본의 이익'에 대응할 만큼만 발전한다는 것이 좌파 경제학자들의 주장이자 논리이다. 이 말은, 뛰어난 과학자나 천재가 나타난다 해도, 그들이 발명하고 개발하고 발견한 새로운 기술이나 이론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의 속성 때문에, 인류의 미래를 위한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어도 자본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이미 1950년대에 전기자동차가 태어났지만 그 운명은 비참했다. 무려 50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다시 전기자동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석유를 쓰는 것이 더 '자본의 이익'에 충실하기 때문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이 영화처럼 개인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내용이라 해도, 결국 자동차의 자동와이퍼에 관한 비용은 온전히 소비자가 다 부담하게 되는 것이고, 그 열매는 거대자본이, 특허를 가진 개인은 그 부스러기를 나눠가질 뿐이다.

플래쉬 오브 지니어스
감독 마크 에이브라함 (2008 / 미국)
출연 그렉 키니어,로렌 그레이엄,더못 멀로니
상세보기


 
반응형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2) 2011.11.10
Trespass-불법침입  (0) 2011.11.09
굿모닝 베트남  (3) 2011.10.26
쇼생크 탈출  (0) 2011.10.26
해프닝  (0) 2011.10.15
웰컴 투 더 라일리  (4) 2011.10.14
난간 - The Ledge  (2) 2011.10.12
옥수수밭의 아이들  (0) 2011.09.30
더 해머  (0) 2011.09.28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0) 2011.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