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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국내여행을 하다

40년, 추억 여행

by 똥이아빠 202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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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군대 동기들과 여행했다. 이 여행기는 2박 3일의 여행기이면서도, 내가 그동안 썼던 군대 이야기, 동기들과의 추억을 모두 모은 종합편이 되겠다. 과거 이야기도 중간에 삽입되어 있음을 미리 알린다.

올해 2021년 12월 말이면 나와 동기들이 복무했던 '27사단'이 사라진다. 부대 편재가 7사단으로 통합되면서, 27사단은 이름이 없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동기들이 만60세, 즉 회갑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군입대 만39년이 되는 해여서 이것을 기념하는 동기여행을 계획했다.

우리는 단체 티셔츠, 조끼, 모자 등을 미리 준비했으며, 강원도 속초에 리조트를 예약해 두었다.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네 명만 함께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한계는 있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양평역에서 동기들이 모여 출발했다. 6번 도로를 타고 강원도 쪽으로 가는 길에 '홍천강 휴게소'에 먼저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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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합동 회갑 기동훈련'을 하겠다면서, 현역 때 함께 했던 대대장, 장교들, 하사관들에게 연판장을 돌렸더니 찬조금이 얼마간 들어온 모양이었다. 병사들 모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병사들끼리 40년 다 되어서 복무했던 부대를 단체로 방문하겠다고 현수막도 만들고, 단체 티, 조끼, 모자까지 일습을 마련하는 것도 퍽 드문 일이라, 간부들도 조금 놀랐나보다.

우리가 국가에 대단한 충성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경험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동기모임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건, 우리들의 성향이 대개 비슷하고, 만나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리라.

올해로 27사단이 해체되면 이제 우리의 군 생활은 물적 토대가 사라지고, 추상적 관념으로만 남게 될 것이며,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것이다. 그러니 올해가 가장 최고의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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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자!

존경하는 이재형 대대장님, 간부님, 그리고 선후임 전우 여러분.

저희는 1982년 4월, 27사단 포병251대대에서 복무를 시작한 동기들입니다.

올해 2021년은 뜻깊은 해입니다. 27사단의 운명이 올해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우리의 피와 눈물과 땀이 서린 포상과 연병장, 막사가 지금도 어제처럼 눈에 선한데, 27사단이 한국육군의 역사에서 깃발을 내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한쪽이 허전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만39년을 한결같이 군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모임을 지속한 저희 82년 4월 군번들이 회갑을 맞았습니다. 스무 살, 앳된 청년들이 군대에서 만나 40년 세월, 한 평생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재형 대대장님과 장교님, 하사관님과의 좋은 추억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동기 모임이 오는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합동 회갑 기동훈련'에 들어갑니다.

훈련 지역은 저희의 추억이 쌓인 사방거리를 시작으로 강원도 속초, 양양, 강릉, 주문진 일대입니다.

저희 동기 모임은 군대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몇 년마다 한번씩 '합동 훈련'을 합니다.

올해는 특히 저희 동기들이 모두 회갑을 맞이하여,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합동 훈련'을 하고자 합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함께 하시자고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깊이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동기 모임은 '합동 회갑 기동훈련'을 통해 27사단 251대대에서 복무하던 추억을 되새기고, 청춘의 한때를 함께 보냈던 군복무의 기억을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 27사단 251대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우리 동기들은 그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며, 우리 후손들에게 남길 것입니다. 우리의 열정이 뜨겁게 타오르던 251대대를 기억하며, 다시 한번 오랜 인연과 우정에 깊이 감사합니다.

1982년 4월 동기 (18명) 일동 올림



80년대 군대생활

윤일병 폭행살인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지금보다 더 시끄럽게 떠들고, 악마같은 가해자의 범죄를 폭로하고, 군대의 야만성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지적해야 한다. 이제 한국군은 전면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의 의미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군입대를 앞둔 부모들과 청년들은 분명하게 '입대거부운동'을 펼쳐야 하며, 군개혁의 대상인 하사관과 장교들에 대한 전면적 검토를 반드시 해야 한다.

국방부는 사병의 복지와 인권을 개선하지는 않으면서 골프장을 짓고 있다. 국가의 안보를 최고의 이념으로 삼아야 할 그들이, 골프장을 짓고 한가롭게 골프나 치고 다닌다시 사실만으로도, 군대가 얼마나 썩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82년 4월부터 84년 10월까지 군복무를 했다. 강원도 화천 27사단 포병대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특기도 없었는데, 전방 소총부대로 가지 않고 포병대대의 행정병으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행운이 겹쳤기 때문인데, 그 가운데 하나로 내 이름의 덕도 봤다.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기 위한 대기소에서 사흘을 기다리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신병들은 다 '팔려'갔다.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것은 쓸모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특기가 없었다. 군대에서 쓸만한 특기는 고급한 것일수록 좋다. 테니스를 잘 치는 친구들은 이미 사단에서 뽑아갔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도 먼저 뽑혔다. 운전을 잘 하는 친구들도 그렇고, 노래를 잘 하는 친구, 축구를(지극히 당연하지만) 잘 하는 친구들도 일찌감치 선택되었다.

모두가 떠난 휑한 내무반에서 불안한 미래에 불안과 초조함, 낯선 환경에서 오는 긴장으로 경직된 채 앉아 있을 때, 한 하사관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걱정하지마, 내가 좋은 곳으로 보내줄께."

그리고 그는 내게 주특기로 960을 주었다. 그것이 무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전의 서류에는 주특기가 없었고 숫자 <00>만 적혀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주특기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몇 명의 신병들과 함께 트럭에 올라탔고, 군 생활을 할 자대에 배치를 받았다. 트럭은 다른 보충대에 들러 신병을 더 태운 다음, 산골짜기 임도를 따라 구비구비 먼 길을 달려 몇 개의 부대에 신병들을 내려 놓았고,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부대에서 나와 몇 명이 내렸다.

우리들-약 7명 정도-은 인사과에서 전입신고를 할 때, 기합-당연히 폭력이었다-을 받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동기는 조금 더 심하게 폭행당했다.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고, 광주민중을 학살한 이후, 전두환은 당시 모든 군인들에게 휘장을 나눠주었다. 전입한 부대의 선임들, 병장들은 이 휘장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대학에 다니다 군대에 온 병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다 오면 군복무 단축 혜택을 받았다. 모두들 3개월 단축을 받는 병사를 부러워했다.

내무반 생활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집합이 많았고, 한바탕 기합과 폭행이 지나가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퍽 다행인 것은, 그들이 특정한 개인을 왕따시키거나 개인적인 악감정을 갖고 폭행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선임병들은 '계급'이라는 권력을 가졌고, 군대에서 '계급'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 우리는 때로 심하게 폭행당했지만 그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었다. 군대에서의 삶이 지독하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했기 때문이고,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견딜만 했다.

더욱 괜찮았던 것은, 군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동기들 가운데 멋진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이었다. 그들과는 지금도 늘 연락하며, 가끔 만난다. 우리는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함께 나눈, 그래서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순수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었기에, 30년이 넘도록 변치 않고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선임병과 후임병이 되어 역할놀이를 한다. 그렇기에 좋은 사람도 있지만, 가끔 나쁜 놈도 있는 것이 정상이다. 나쁜 놈이 선임병일 경우에는 참고 견뎌야 했고, 나쁜 놈이 후임병일 경우에는 반쯤 죽여놓기도 했다. -물론, 나는 내 손으로 피를 묻히지는 않았다. 우리 동기 가운데 후임병을 손보는 친구는 따로 있었다 -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내무반 생활은 원만했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모두들 노력했다.

문제는 하사관과 장교들이었다. 말단 대대의 하급 하사관들과 초급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 무식하거나 어리석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사람은 대대장 정도였고, 중사나 상사들은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자들이었으며, 병사를 통솔할 정도로 뛰어난 자는 거의 없었다.

당시에 군대에 '말뚝박는다'는 것은 치욕적인 말이었으며, 사병들 가운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군대에 '말뚝을 박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주로 사고를 친 병사를 대상으로 죄를 감면하는 대신 장기복무를 하도록 유도했고, 그렇게 하사관이 된 자들이 사병들 위에 군림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상병 때, 행정반의 간부인 대위와 한바탕 싸운 적이 있었다. 계급장을 떼고 싸우자고 말했고, 그와 나는 연병장을 몇 바퀴씩 돌며 신경전을 벌었다. 결국 병기장교의 중재로 멈췄고, 나는 헬맷으로 머리를 한 대 맞는 것으로 항명죄를 대신했다.

그때, 하사관이나 장교들은 사병을 노예처럼 취급했다. 아마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군대는 직업군인들의 것이고, 그들이 모든 혜택과 복지와 특혜를 누리며, 사병들은 단지 하찮은 일이나 하는 하인 취급을 받을 뿐이다.

계급이 서열을 결정하지만, 군대는 기본적으로 평등해야 한다. 모두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며, 같은 옷을 입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앞장 서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 군대의 모습은 어떤가. 나는 훌륭하고 뛰어난 장교를 알고 있지만, 그와 같은 사람은 군대에서도 지극히 드문 사람일 뿐이다.

존경받는 장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군대 내부의 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군대의 민주주의가 확대되지 않으면, 전투력 역시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강압과 통제, 상명하복이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 복종과 민주주의적 합리성이 강한 군대를 만든다. 한국 군대는 여전히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 나들이를 했다. 모처럼 동무를 만나 이야기도 오래 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알고 지낸지 이제 36년이 넘었으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청년이 되면서 만나 군대 입대의 시작-장정-부터 전역할 때까지 함께 지냈으니 그 인연도 깊지만, 군대 전역하고부터도 지금까지 연락을 놓치지 않고 다만 일년에 몇 번이라도 만나고,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늘 sns로 안부를 주고 받으니, 늘 반가운 동무다.

군대가 맺어준 인연으로 동기 몇 명이 늘 함께 어울리는데, 지연(고향), 학연(학교), 혈연(형제가 있어도 거의 만날 일이 없는)이 없는 내게는 군대 동기들이 가장 가까운 친구다. 물론 마을에는 좋은 이웃들이 있고, 지역에도 마을만들기와 지역운동을 하는 분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어서 아무 불만이 없지만, 군대 동기가 주는 의미는 또 남다르다.

동무의 집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생우럭매운탕을 먹었다. 날씨가 몹시 추운 날이었고, 나는 감기 기운이 있어서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었는데, 마침 동무가 좋은 곳을 추천해 주었다.

요즘 이런저런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는 동무의 행복을 마음으로 빌며,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춘천 소양강댐 아래쪽에는 닭갈비 식당이 꽤 많은데, 그 가운데 한 식당. 특이하게 조약돌 같은 돌을 아래 깔았다. 돌 아래는 숯불이 있어서 숯불이 돌을 달구고, 달궈진 돌 위에 닭갈비를 올려 구워 먹는 방식이다. 직접 숯불에 구워 먹는 것보다 덜 타서 좋고, 다른 지역에서 먹는 숯불닭갈비보다 조금 더 맛있는 느낌이다.

닭갈비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막국수인데, 쟁반막국수 중간 크기를 주문하면 네 명이 충분히 먹을 정도의 양이다. 막국수 역시 기본 이상의 맛이어서 오랜만에 춘천에서 닭갈비와 막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오늘 군대동기 모임. 우리 모임의 종신회장이자 양평토박이인 동무가 생일이어서 저녁을 먹었다. 약간 고급한 참치회를 먹었고, 모처럼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군대에서 처음 만난 것이 내년이면 만40년이고, 내년이면 27사단은 해체된다. 묘한 인연이다. 만40년에 복무하던 사단이 해체되는 것을 본다는 것도 신기하다.

우리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동무가 기분이 좋아서 전화를 여기 저기 걸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현역으로 있던 39년 전에 대대장이었던 분, 선임하사들, 고참들을 연달아 전화로 인사했다. 지금까지 연락이 닿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들도 모두 우리를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우리 총무가 열심히 챙기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우리 현역시절에 함께 복무했던 장교, 하사관, 고참들 상당수가 아직도 연결되어 있고, 약속만 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건, 군대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분명 놀라워할 일이다.

오후에 양평에 있는 동기가 전화했다. 회장님(우리 군대동기 종신 회장님은 양평 토박이다)이 저녁 같이 먹자고 하니, 6시까지 나오란다. 최대한 만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오늘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중미산 넘어 양평 가는 길에 옥천에 있는 주유소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이 주유소가 가장 저렴하다-세차까지 했다. 차가 깨끗하면 내 마음도 개운하다.

양평대교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횟집 사장님은 회장의 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얼마 전, 회장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다행히 요양원에 계시다 집으로 모셔와서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고, 장례를 가족, 친지, 이웃들과 함께 치를 수 있었다.

우리 동기들은 회장과 부모님을 비롯해 누나 가족, 동생 가족, 사촌들까지 두루 가깝게 지냈다. 20대 때는 우리도 마치 한 가족처럼 회장네 집에서 한달씩 밥을 얻어 먹으며 행랑채에서 살기도 했는데, 그래도 단 한번도 눈쌀 찌프리지 않으시고,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으신 분들이 회장의 부모님이시다.

무명의 농부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촌로의 품성과 인품은 고고한 학자,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보다 차원이 다른 분들이셨고, 인자하고 넉넉하기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 회장의 인품도 부모를 닮아 한없이 퍼주기 좋아하고, 인정 많은 사람이라, 우리가 군대 있을 때부터 동기들의 회장으로 일찌감치 추대했다.

우리가 40년을 무탈하게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회장이 양평 토박이로 중심을 잘 잡고 있었고,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집같은, 고향같은 회장의 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덕분에 나도 양평에 자리 잡았고, 다른 동기 하나도 지금 양평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 군대에서 동기로 만난 인연만으로 40년을 이어왔다면 이상하지만, 우리는 그 인연 이상의 믿음과 우정이 바탕에 깔여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82년 군번이니 82살까지만 살면 성공한 삶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나 자신도 그렇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다 죽으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할 나이가 된 것이다.



은행 알림이 휴대전화 화면에 떴다 사라졌다. 뭔가 해서 보니 50만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다. 우리 군대동기 총무 이름으로 입금이 되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해서 동기카톡방에 들어갔더니 아래 공지가 떴다.

♤ 공 지 ♤

ㅡ 제 목 : 명절 재난 지원금
ㅡ 금 액 : 50만원
ㅡ 지원처 : 824 장군회
ㅡ 결 정 : 824 장군회운영진
ㅡ 지급시기 : 2,1일 자정전
ㅡ 사용처
ㆍ제사 비용
ㆍ부모님 용돈
ㆍ자녀,손주용돈
ㆍ설 음식비용
ㆍ건강식(소고기ㆍ랍스타등)

※ 명절을 맞이하여 코로나로 인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힘든 장군님들 사기 진작과 몸보신을 위하여 운영진에서 심사숙고 후 결정을 한 것이니 구정연휴 장군님 개개인과 가족들에게 작은 행복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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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비인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때맞춰 재난지원금을 일괄 지급한 것은 참으로 기분 좋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꾸준히 회비를 낸 것이 보람 있고, 역시 동기들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데, 이렇게 오랜 동기들이 있으니 덜 외롭긴 하다. 그나마 군대라도 안 갔으면 어쩔뻔 했을까.


춘천에서 점심으로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고 곧바로 우리가 군 복무를 했던 화천면 산양리, 일명 '사방거리'를 찾았다. 세월은 변했고, 건물도 달라졌지만, 우리는 이곳이 여전히 낯익었다. 

강상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군대동기 동무와 아침 겸 점심으로 동태찌개를 먹었다. 양평읍내 있는 동태전문점은 몇 번 가본 곳이어서 낯익다. 우리는 특짜 동태찌개를 먹었는데, 알탕보다 알과 고니가 많았다. 추운 아침에 뜨끈하고 얼큰한 동태찌개를 먹으니 몸이 확 풀렸다. 여기에 갓 지은 질좋은 쌀밥도 맛있다.

이 동무(성이 마침 '이씨'다)는 다재다능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재능이 많고, 출중하다. 군대에서는 글씨를 잘 써서 포대에서 행정병으로 차출되었고, 그림도 수준급,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안 해 본 일이 없는, 그래서 어떤 일을 해도 막힘이 없는 이 친구는 몇년 전 양평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오늘 그의 집과 작업실을 둘러봤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큼 집을 잘 꾸며 놓았다. 그것도 전부 남들이 버린 물건을 재활용한 것인데, 물건을 보는 안목과 그것을 예술적으로 꾸미는 안목이 뛰어나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 그 친구는 하루에 한 병은 마시고, 담배도 열심히 핀다. 친구의 말로는, 국가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렇게 술담배를 해도 건강할 걸 보면 체질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동기로 37년이 되었지만, 함께 만나는 동기들이 있어 마음 든든하다.

사방거리에 있는 한 치킨, 피자집에서 현역병들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함께 사진도 찍고 음식값도 우리가 다 내주었다. 여기서 기념으로 피자와 치킨도 구입했다.

부대 앞에서 간단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보안 문제로 가까이 찍지 못했고, 근무 서는 병사와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

화천에서 양구, 인제를 거쳐 설악으로 들어섰다. 



동기 모임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오랜만에 군대 동기들이 모였다.

군대 전역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만나고 있으니,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35년째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친구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서로를 인간적으로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에서 만나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고, 전역한 뒤로도 오로지 '전우'로서 함께 고생했던 젊었을 때의 특별한 한 때를 함께 기억하고, 추억하는 공통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이만큼 흐르고 보니, 그동안 살아왔던 모습들이 보인다. 모두 열심히 살았지만, 우리들은 지극히 서민의 삶을 살고 있고, 누구도 특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지방 공무원, 체육관 관장, 병원에서 비정규직 근무, 나같은 백수까지, 우리는 가난하지만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모여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옛날을 추억하고, 서로의 삶을 다독거리기도 한다. 나도 '친구'들이라야 우리 동기들이 전부지만, 여러 분야에 친구가 많은 동기도, 우리 모임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그만큼 편하다는 뜻이겠다.

우리처럼 오래도록 꾸준히 만나는 군대 동기도 많지 않을 듯 하다. 우리의 청춘 가운데 특별했던 한 시기에 만난 동기들은 남은 세월도 함께 할 것으로 믿는다.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울산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설악한 바로 아래 있는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화천 사방거리에서 피자와 닭튀김을 주문했는데, 피자는 거대한 원판에 네 가지 맛이 들어 있고, 닭도 한 마리 값에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주로 군인들이 많이 찾으니 군인들 입맛에 맞는 메뉴가 개발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평에서는 본 적 없는 이 거대한 피자는 값도 상당히 싼 편이어서 아마 양평에 체인점이 생긴다면 다른 피자집들이 많이 긴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피자와 닭튀김을 구입한 목적은, 부대 근무를 서는 장병을 위한 것이었는데, '코로나19'로 외부 음식을 부대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안타깝게도 장병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사방거리'에 있는 주민에게 일부가 전달되고, 일부는 우리가 조금 먹다가 남겨서 개밥으로 활용되었다.

속초에서 먹은 생선모듬찜. 서너 종류의 생선을 양념장을 부어 찐 음식인데, 한번쯤은 먹을만 하다. 이 식당도,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식당도 유명하다는데, 그래봐야 생선찜일뿐, 세상에 없던 맛은 아니다.

생선찜의 맛을 좌우하는 건 양념장이고, 이 식당 음식 맛의 노하우이자 핵심도 양념장이다. 이 양념장에 밥을 볶거나 비벼 먹으면 적당할 듯 해서 실제로 공기밥을 비벼먹었다. 내 생각으로는 비벼 먹는 것보다는 양념장에 참기름을 조금 넣고 볶아 먹는 것이 더 맛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식당에는 볶음밥 메뉴가 없다.

음식값도 비싼 편인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식당이 백종원이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내가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면 이런 식당은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았을텐데, 동무들이 선택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 먹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생선찜을 일부러 골라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고,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먹을만 한 정도다.

속초에서 아침 일찍 물곰탕을 먹으러 갔다. 식당 앞에 도착하니 7시 30분쯤 되었는데, 이미 우리 앞에 한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 문은 아침 8시에 연다고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손님들의 체온, 개인정보 등을 수집하는 자동화된 기계를 도입해도 좋을텐데, 사람이 많이 오는 이 식당은 그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도착한 순서대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고, 방역수칙에 따라 모든 사람의 전화번호를 볼펜으로 적어야 했다.

기다리면서 문앞에 세워 놓은 메뉴판을 보니 '물곰탕 1인분 20,000원'이라고 써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무슨 해장국이 1인분에 2만원씩이나 한다는 말인가. 듣도보도 못한 가격이었다.

8시가 되어 우리도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물곰탕'을 주문했다. 네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조금 적은 듯 했고, 반찬은 무난했지만, 고등어찜은 추가주문으로 2천원씩을 더 받았다. 내 동무들은 고등어찜을 두 개나 더 주문해서 먹었다.

물곰탕이 끓고, 국물을 먹어보니 개운하고 시원하긴 했다. 그렇더라도 1인분에 2만원이라니.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물곰탕'은 '곰치국'의 다른 이름이었다. 곰치는 옛날에 '아구'처럼 버리는 생선이었다가 점차 유명해져서 지금은 생선매운탕 가운데서도 상한가를 치는 색다른 음식이 되었다.

곰치가 예전만큼 많이 잡히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값이 올라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나처럼 처음 먹어본다면 한번은 먹어볼만 하지만, 2만원씩이나 내고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간 식당은 속초에서도 '물곰탕'으로 꽤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찾아오고 있었다. 나는 유명한 식당은 일부러라도 찾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동무들과 함께여서 따라다니기만 했다.

아침으로 '곰치국'을 먹고 속초에서 고성 쪽으로 올라가다 카페를 찾아 들렀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가 드물어서 인터넷 지도에서 찾아보니 마침 오전9시부터 문을 여는 카페가 보였다.

가는 방향으로 가까운 곳이어서 금방 도착하니, 바닷가 쪽으로 새로 지은 모던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겉에서 보기에도 근사한데, 내부는 더 훌륭했다. 서울 강남에 있음직한 모던하고 세련한 건물디자인과 내부인테리어가 근사했고, 바다와 가까이 있어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이 더 할 수 없이 좋았다.

아침으로 곰치국을 먹었지만, 여기서 다시 브런치로 커피와 케익을 먹었다. 마침 가족 여행을 하던 또 한 명의 동무가 아버지를 모시고 카페로 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버지가 주신 찬조금도 받아서 모두들 좋았다.

이 카페는 최근 동해안에 나타나기 시작한 무수한 카페들 가운데서도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 동해안 바닷가 쪽은 새롭게 생기는 카페와 서핑보드가 트렌트처럼 보인다. 우연히 찾은 카페였지만 만족스러웠다.

카페에서 나와 화진포 방향으로 올라갔다. 화진포 일대에는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이 있어서 그곳을 보려는 것이었다.

고성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 별장과 이기붕 별장을 찾았다. 이기붕은 이승만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냈는데, 그의 아들이 이승만의 양아들이어서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결국 4.19혁명이 발발하면서 이기붕 일가는 여기서 자살했다.

김일성 별장 건물은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했는데, 오히려 역사적 건물을 망가뜨린 것처럼 보였다.

점심은 동명항에서 '대게찜'을 먹었다. 대게찜 역시 비싸다. 한 마리로 치면 약 9만원 정도라서 내돈으로 사 먹기에는 부담이 크다. 우리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회비가 있어서 그나마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대게찜은 고급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곁들여 나오는 여러 종류의 음식들과 반찬이 있지만, 그것들은 다 부수적이고, 대게찜과 볶음밥이 본령이다.

대게찜은 먹기 쉽게 손질이 되어서 깔끔하게 먹을 수 있고, 서비스를 하는 분이 몸통 살을 다 발라주어서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 게껍질에 볶음밥이 나오는데, 이 볶음밥이 또 매우 훌륭하다. 마지막으로 게탕에 라면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데, 고급한 음식의 마지막이 라면이라는 건 좀 아이러니다.

우리는 네 명이서 대게 세 마리를 주문했지만, 네 명이 대게 두 마리를 주문하고, 볶음밥을 넉넉히 주문한 다음, 라면 사리까지 먹으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설악 한화리조트 근처에서 먹은 저녁은 두부전골. 학사평은 두부로 유명한 식당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맛까지 좋다는 뜻은 아님을 확인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의 특징은 성의 없고 비싼 음식인데, 우리가 갔던 두부 전문 식당 역시 그랬다. 관광객이 뜨내기라고 여겨서 대충 비싸게 팔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음식값이 비싸도 맛있으면 큰 불만은 없지만, 음식이 성의 없거나, 맛이 없으면 값을 떠나서 짜증이 올라온다. 이번 사흘 동안의 아홉끼니에서 가장 나쁜 인상을 받은 식당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 비가 조금 내렸고, 리조트에서 보이는 울산바위가 비구름에 휩싸인 멋진 모습이었다.

아침에 리조트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죽도를 둘러봤다.

속초에서 양양으로 내려오는 길에 아주 작은 해안가 마을을 지나면서 깔끔한 호텔 건물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브런치를 먹었다. 이 호텔에서 바다가 아주 가까이 보이고, 그 바다에는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열심이었다.

예전에는 한적한 바닷가 시골 마을이었을 이곳이 지금은 서핑보드를 타러 오는 청년들로 북적거리고, 덩달아 많은 서핑보드 가게들과 호텔, 민박, 카페, 음식점이 성업이니 오히려 다행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꽤 좋았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시간도 때로 필요하다.

카페에서 나와 휴휴암으로 갔다. 휴휴암은 바닷가에 있는 암자로,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휴휴암에는 동굴 안에 불당을 만들었는데, 벽화가 화려하다.

주문진에 있는 '아들바위'를 보고 남애항으로 향했다.

남애항에는 영화 '고래사냥'을 촬영했다는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 전망대가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경이 근사하다. 

남애항에서 먹은 점심. 자연산 회라서 그런지 비싼 편이다. 이번 여행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으니, 돈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다니기로 했던 터라 비싸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싼 건 비싼 거다.

마침 태풍이 올라온다고 해서 작은 항구의 식당들은 대개 문을 닫았고, 바닷가쪽으로 만든 걷는 길도 폐쇄했다. 다행히 비도 아주 적게 오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다니는 데 아무 문제는 없었고, 구름이 잔뜩 드리운 바다와 약간 거친 파도는 잔잔한 바다보다 매력 있었다. 이 음식을 끝으로 강원도를 벗어났다.

양평으로 돌아와 먹은 저녁.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쇠고기 갈비살로 저녁을 먹고 세 친구와 헤어졌다. 사흘이 후딱 지나간 느낌이다. 40년을 한결 같이 만나온 친구들과 남은 시간도 그렇게 편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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