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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기록/집짓기 관리

집짓기를 말하다_집이란 무엇인가

by 똥이아빠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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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를 말하다_집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하나가 겨우 누울만한 좁은 공간인 쪽방, 닭장집부터 아흔아홉칸 고대광실 한옥집이거나, 백평이 넘는 펜트하우스 최고급 아파트까지 다양한 '집'이 있다.

집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철저하게 계급적 아이콘이 맞다. 한국에서 중산층은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기준이 알게 모르게 통용되고 있다.

서양처럼 그 나라의 중산층이라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외국어를 하나쯤 구사하며, 다달이 기부금을 내고, 책을 꾸준히 읽으며, 각종 예술 공연이나 전시회 등을 관람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철저히 '물질적'인 기준을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임대아파트를 차별하는, 말할 수 없이 천박한 수준의 중산층이 포진하고 있는 이상, 우리나라는 '집'이 곧 '계급'임을 증명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집은 재산 증식의 욕망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아파트 값이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사람들은-심지어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까지도-울고 웃는다. 아파트 값이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동산중개업소를 협박하거나, 거짓 정보를 흘리는 따위의 기만과 파렴치를 낯빛도 바꾸지 않고 저지르는 것이 한국의 중산층이다.

과연 '집'은 자신의 계급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만 작용하는 것일까.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오래 전, 어렵게 산본신도시에 분양한 열일곱평짜리 아파트를 갖게 되었을 때, '내 집'을 갖게 된 느낌을 기록한 글이 있어서 소개한다.

 

비내리는 날의 외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이 무르익고 잎새는 더욱 푸르러가는 5월의 한 날에 비가 내리고 있다. 언제였을까. 기쁜 마음으로 외출을 준비하던 기억이. 허름하게 걸치고 나서면서 살아있음이 작은 행복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외출이 나에게도 있을줄을 예상이나 했었던가.

  내게는 언제나 그리움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누님과 함께 흩뿌리는 봄비를 우산으로 가리며 산본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벌써 언제였던가. 이곳 시흥으로 이사오기 훨씬 전부터 도시빈민으로 태어나 자란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 빗물처럼 흘러갔다. 작고 낡은 집, 판자와 루핑으로 얽은 허름한 집에서 홍수를 만나고 강제철거에 시흥의 산동네 비탈진 언덕으로 허위허위 올랐던 이십년 전, 그때 나는 열 네살이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가난으로 가족들과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때, 10원짜리 물지게와 30원짜리 우동 한그릇으로 하루를 견뎌야 했던 산비탈 해방촌 마을에서 나는 꼬마 노동자로 자랐다. 몇 백원의 일당에 목이 메이던 나날 속에서도 절망을 몰랐던 것은 여전히 철이 없었거나 창창히 살아가야할 미래가 있었기 때문인지 몰랐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새우잠을 자고 아침마다 연탄가스에 취해 머리를 두드려 대며 산비탈을 구르듯 내려와 공장으로 갔다.

  나의 꿈은 소박했다. 많은 돈도, 큰 명예의 욕심도 없었다. 그저 작은 집에서, 방바닥이 평평하고 비가 새지않고 쫓겨나지 않을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고 힘겨웠다. 비가 오면 방에 물이 들어차는 낮은 동네거나 산사태로 사람이 떼죽음을 하는 비탈진 산동네를 전전하며 전혀 낯선 텔레비젼의 아파트가 어느 외국의 풍경같이 낯설기만 했다.

  소년노동자에서 청년노동자로 자라도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누구의 탓이었을까. 나는 뼈가 휘도록 열심히 살았고 다른 누구에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밤마다 하얀 벼개잇을 핏물로 물들인 적도 있었고 집을 떠나 지방을 몇 해씩 전전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없어서 서럽고 답답한 마음으로 이 더러운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가난에 찌든 내 모습이 싫었고 불평등한 세상이 싫었다. 산비탈 판자집을 전전하며 살아온지 이제 이십년, 나는 오늘 신도시 아파트의 작은 평수 아파트 열쇠를 받아왔다. 잔금을 치루고 1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작은 공간이 나의 집이라는 것이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내 손으로 아파트를 지은 것이 대체 몇 동이었던가. 여의도에서 잠실에 이르기까지 건설업 노동으로 잔뼈가 굵은 내 손으로 지은 집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정작 내 집은 없었다. 60평, 45평, 많은 호화아파트도 지어보았고 강남의 호화주택도 들어가 보았다. 그때에도 나의 꿈은 언제나 먼곳에 있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내 집이 있다면.

 

  내 집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절실함은 다만 주거공간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집이 없다는 것은 살아있음의 모든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단한 땅 위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래로 쌓은 탑 위에 서 있듯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태였다.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밤이면 흘러나오는 아파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불빛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이 가슴 속에서 스며나오는 것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었을까.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며칠있으면 이사를 한다. 신도시 아파트 주민이 되어 지난날, 내가 살았던 산꼭대기 판자집을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을 느낄까. 그때도 여전히 쓸쓸함과 서러움을 느끼게 될까.

 

집은 곧 가족이다. 요즘은 혼자 사는 가구가 많다고 한다. 혼자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족이다. 가족은 두 명 이상을 지칭하는 복수의 개념이지만, 사람이 혼자 살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동거한다면 그것도 가족임에 틀림없다.

집에 누가 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요즘은 '집'에 여러 명의 서로 다른 성, 이름,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도 있다.

 

반드시 피붙이만 '가족'이라고 하는 것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가족의 개념 또한 사회의 변화와 함께 달라지고 있다. 집과 가족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집의 형태가 변하듯 가족의 형태와 개념도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집'은 고정된 형태로써, 그 안에 누군가 들어가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사는 마을-뿐만 아니라 시골의 거의 모든 마을-에는 빈집이 있다. 비어 있는 집은 폐가가 되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데, 그 집도 예전에는 따뜻한 연기가 피어나고, 도란거리는 가족들이 다정한 말이 오고갔을 아름다운 집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라진 집은 쉽게 망가진다. 집을 떠난 사람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경우, 집은 곧 고향을 뜻하기도 한다. 집 곧 가족을 떠나서 살아야 할 경우, 보다 나은 삶을 향해 떠나가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경우는 슬프고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나는 어릴 때 원하지 않게 집을 떠난 기억이 있다. 비록 남루한 판잣집이었지만 그 집은 아버지가 지은 집이었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던 '우리집'이었다.

그 집이 홍수로 잠기고, 무허가 건물이라고 정부에서 헐어버리자, 집을 잃은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도시빈민의 주거 불안정을 가중시켜 도시 내부에서 외부로 몰아내는 재개발이 이루어졌고, 도시빈민은 도시의 변두리 지역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변두리로 내몰렸고, 그곳에서도 '내 집'이 아닌, 단칸 셋방에서 살아야 했다. 집이 없는 설움은 먹지 못하는 설움, 입지 못하는 설움보다 더 컸다. 이사를 할 때마다 뿌리가 없는 부평초를 떠올렸고, 결국 '집'이 없다는 것은 뿌리가 없는 삶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내 머리속에 자리잡았다.

 

많은 사람들은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돈을 지불하거나, 은행에서 빌린다.

그리고 그 빚을 갚아나가려고 밤낮으로 일을 한다. 어떤 경우는 집값이 크게 뛰어 은행빚을 갚고도 돈이 넉넉하게 남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기를 우리는 '부동산 투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제 그럴 정도로 '집'이 돈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들 한다.

 

집이 투기와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한, 우리는 '진짜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빚을 내서 산 아파트의 진짜 주인은 은행이고, 은행에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외식도 못하고, 인생을 여유 있고 즐겁게 살아가야 할 시기에 빚더미에 눌려 노예처럼 살아간다면, 아무리 자기 소유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성공한 삶일까 물어본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모든 부동산은 국가가 소유하는 것이 좋다. 땅은 물론이고 주택도 국가가 소유하고, 국민은 평생을 안락하게 살면서 아주 적은 임대료만 내면서 집에 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교육도 국가에서 무상으로 지원하고, 의료도 완벽한 의료보험체계로 보장한다면, 우리의 삶은 집, 교육, 의료 이 세 가지에서 완벽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매우 안전하고도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버는 수입의 절반을 이 세 가지에 지불한다고 해도 국민은 항상 이익이다.

하지만, 과연 이 정책을 수긍하고 찬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집'을 국가(정부)에서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을 여전히 투기나 재산증식의 도구로 여기는 개인들의 탐욕 때문이다.

 

지금은 노인이 되었을 때, 부동산을 담보로 일정한 연금을 받다가 부부가 사망하면 부동산이 자연스럽게 국가(정부)의 소유로 넘어가는 제도도 도입이 되었으니, 이런 제도도 널리 확산되면 개인이 반드시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사라질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집'은 곧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의식을 규정한다. 우리가 도시의 아파트에 살 때, 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한 갓난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는 아이의 행동을 억누르고, '하지말라'는 말만 줄곧 했었다.

요즘도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이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인데, 아파트에 살면 누구나 주거 환경에서 오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은 더욱 그렇다. 아이는 마음 놓고 뛰지도 못하고, 신나게 놀지도 못한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안쓰럽고 미안하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 때는 주위 환경이 거의 모두 소비를 위한 것들 뿐이었다. 아파트 단지 옆으로 대형 쇼핑몰, 백화점, 음식점 골목 등이 진을 치고 있고, 또한 달리 어디를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휴일이면 쇼핑몰이나 백화점에 가서 무언가를 구매하고, 음식을 사 먹는 소비행위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시골로 이주하고는 그런 현상이 깨끗이 사라졌다. 단독주택을 짓고 살면서 아이는 마음껏 뛰고, 소리지르고, 한밤중에도 피아노를 치고,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를 집이 떠나가도록 볼륨을 크게 높이며 봐도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아파트와 시골의 단독주택은 모두 같은 '집'이지만, 환경이 바뀌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의식도 바뀐다. 도시의 아파트를 선택하느냐, 시골의 단독주택을 선택하느냐는 곧 그 사람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며,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살아야 하는 지역이나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딱한 경우도 많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하겠지만, 우리의 현실은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꾼다.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상상과 의지는 불가능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도 한다. 시골에서 십 여년을 살다보니 내가 사는 마을로 이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된다. 나이 들어 은퇴한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도시에서 일을 하는 젊은 부부가 시골로 이주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 바람직하고 대견하다.

 

집을 둘러싼 환경은 곧 가족에게 영향을 끼친다. 도시의 아파트가 익명성이 강한 밀폐, 폐쇄적 공간이라면, 시골의 단독주택은 그보다는 개방적이고 소통이 활성화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골에 살면서 이웃과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의 경우는 특수하고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개는 이웃들과 인사를 하고, 서로 교류하며 지낸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기 때문이다.

도시의 아파트는 아파트 그 자제의 구조가 폐쇄적임에도 요즘에는 아파트 입구부터 차단기를 설치하고, 경비원이 감시하며, 출입을 통제한다. 이중, 삼중의 폐쇄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시골의 단독주택은 담이 없는 경우도 많다. 우리집만 해도 마당은 있지만 따로 담이 없어서 누구라도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우리 마을의 거의 대부분의 단독주택은 담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이 없다고 해서 그 집에 불쑥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며 예의이기 때문이다.

마당은 집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경계의 역할도 하고, 집안의 가족과 이웃이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며, 프라이버시와 공공의 개념을 넘나드는 중간적 매개 역할을 한다. 시골 단독주택의 마당은 그래서 쓰임새도 많고, 가족이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공간이다.

 

'집'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웃'이다. 집은 곧 이웃을 전제한다. 이웃이 없는 집은 망망대해의 섬과 같은 존재이며, 도시의 아파트 숲속에 갇힌 작은 콘크리드 박스와 같다.

도시에서도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아파트의 영역을 밀폐된 좁은 공간을 넘어 경이롭게 확장한다. 이웃과 만나고, 이웃과 함께 보람된 일을 벌이고, 즐겁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아이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면 아파트가 폐쇄 공간이 아닌, 넓은 마당과 숲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시골에서도 이웃은 다른 어떤 존재보다 중요하다. 이웃과 단절된 시골의 삶은 유배나 유폐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삶의 만족을 얻는다. 물질보다 더 큰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이웃과 정을 나눌 때라고 생각한다.

집은 그 자체로도 독립적이고 완결성을 갖지만, 이웃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완벽한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웃을 만나고, 사귀고, 함께 하는 것은 오로지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집의 표정이 행복하거나 괴로운 것은 바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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