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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벗 - 백남룡

by 똥이아빠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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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 백남룡

 

북한 문학 작품을 처음 읽은 건 군복무 하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이 왜곡되었어도 그 언저리였던 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82년을 전후한 시기였고, 나는 부대 근처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화천에서 산양리를 거쳐 민통선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포병대대였다. 부대 주변으로 가끔 북한에서 보낸 삐라가 떨어지곤 했다. 삐라를 주워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관물대에서 북한 삐라가 나오면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가거나, 최소한 군대 영창이라도 가게 될테니, 삐라를 발견하면 주워서 보고를 하던지, 그냥 두고 지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주운 삐라에 실린 단편소설은 어린 소년과 기차 그리고 김일성 장군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단편 내용은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으로, 북한 문학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감동 코드가 들어 있었다. 그 단편이 언제 창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제 읽은 백남룡의 소설 '벗'과 한 줄기로 연결되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은 1988년에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소설의 무대는 80년대 중반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정진우 판사는 이혼 전문 판사로 복무하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채순희는 도 예술단의 성악 배우, 중음 가수(메조 소프라노)로 복무하는 예술노동자다. 그이는 정진우 판사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고, 이혼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의 배우자인 리석춘의 의견과 주장도 들어봐야 해서 저녁에 자기 아파트로 리석춘을 부른다. 리석춘은 아내 채순희와 처음 만난 때부터 갈등을 일으키게 된 계기와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초산군에 있는 철제일용품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채순희는 도시에 있는 강안공장에서 파견을 온 리석춘을 만나게 된다. 리석춘은 한 달을 기한으로 공장에 선반기와 후라이스, 원통연마반들을 설치해주고 운전공들의 기능 양성까지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리석춘은 채순희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했고, 아들 호남이도 낳아 키우고 있다. 채순희와 리석춘이 말하는 이혼 이유는 '생활 리듬'이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우리식 표현으로는 '성격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진우 판사는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각자 주장하는 내용을 귀기울여 듣는다. 리석춘이 일하는 공장을 찾아가 리석춘의 선배 노동자를 만나 리석춘이 어떤 사람인가를 듣고, 채순희가 복무하고 있는 도 예술단장을 만나 채순희에 관해 동료들의 평가를 경청한다.

이 과정에서 정진우 판사와 그의 아내 한은옥의 상황도 등장한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우연히 만났다. 법률 공부를 하는 정진우와 생물학을 전공한 한은옥이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정진우의 동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정진우는 한은옥이 외진 시골의 가난한 마을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고, 그가 마을을 위해 남새(채소) 육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연인이자 동지적 관계로 호감을 갖고 결혼한다. 정진우는 곧 판사로 복무하고, 한은옥은 학부 때부터 연구해 온 남새(채소) 연구를 계속하는데, 물이 귀하고 온도가 낮은 고향 연수덕에서 남새를 재배할 수 있도록 육종 연구를 무려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정진우는 자주 집을 비우고 출장 가는 아내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채순희, 리석춘 이혼 사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아내 은옥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자기의 이기적인 태도를 반성하고, 아내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걸 느끼게 된다.

 

소설은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채순희와 리석춘이 결국 이혼을 하게 될지, 아니면 정진우의 바람대로 다시 마음을 돌이켜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지 독자는 알지 못한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채순희가 바라는 남편 리석춘의 모습과 리석춘이 바라는 아내 채순희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왜 다른지를 서정적으로 그리기 때문에, 독자는 희망과 긍정의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된다.

이 작품의 특징은 서너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먼저, 이 소설에는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소설의 '우상화'와 '위대한 지도자'에 관한 충성에 관한 내용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매우 특이하게 보이는데, 북한문학이 80년대 이전보다 사상적으로 훨씬 유연하고 자유로워진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다만, 정진우를 비롯해 주인공들이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떠올릴 때, '당과 조국'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 개인의 삶의 존재 의미는 '당과 조국'의 이익에 있다는 정도가 이 소설이 북한소설이라고 생각되는 표현 수위다.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은 1988년인데, 소설을 읽어보면 한국(남한)의 60년대, 70년대 풍경이 떠오른다. 이 시기를 살았던 사람-50대 이상-이라면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경과 언어-작가가 구사하는 문장과 작품의 주인공들이 하는 대화-가 60년대, 70년대의 한국 풍경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남한에서 60년대, 70년대 개봉한 영화를 보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북한(평안도)과 경기(서울 포함)의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가의 언어는 부드럽고 순하다. 문장은 소박하고 대화는 은근하며,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의 성향에 따른 개성이 아니라, 북한의 체제가 보여주는 환경의 영향이라고 본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주체적'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고, '개인'보다는 '당과 조국'을 마음에 품은 개인들의 공동체로 묶인 집단의 정서를 내재하고 있다.

북한에서 '판사'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존재가 아니다. 정진우 판사는 단지 법률을 배운 지식인으로, 법적 판단을 하는 사람일 뿐, 공장 노동자, 예술단 성악 노동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노동하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으며, '노동자'는 모두 평등하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 이것은 북한 체제의 특수성에서 오는 모습이지만, 남한과 비교하면 극적으로 다르다. 남한의 판사는 스스로 최고의 엘리트라고 생각하며, 평범한 노동자를 깔보고 함부로 대한다. 이런 모습만 보면 '인간 중심'의 사회를 기준으로 볼 때, 어느 쪽이 더 평등하고 우월한가를 알 수 있다.

북한에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은 있다. 이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기 조국(북한)을 탈출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 자본주의적 탐욕에 이끌려 조국을 배신한 사람도 있다고 본다. 이 소설에서도 그런 인물 - 채림 -이 있는데, 정진우 판사는 채림의 범죄 사실을 발견하고 호되게 질책한다. 채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가 재산을 원상복구하는 선에서 가벼운 징계를 받는데, 북한과 같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행동을 하면, 그 집단은 내부에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의 지배집단에서는 '개인주의'를 가장 경계하고, 이기적, 탐욕적 행위를 강하게 처벌한다.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에게는 예술가가 갖는 허영심을 개인화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즉,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성악 가수-을 기예로써가 아닌, 그 노래를 듣는 노동자, 인민의 삶과 결합해 노동자, 인민이 예술단원의 노래를 통해 '당과 조국'을 더욱 깊이 사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공장의 선반노동자 리석춘에게는 '헌신성'만으로는 위대한 노동자가 될 수 없다고 충고한다. 아내 채순희가 바라는대로 현재의 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주체적으로 하는 능동적 노동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당과 조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이런 정진우의 주장은, 북한(노동당)이 과거에 가졌던 보수적 태도를 버리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와 맞물리는 내용이다. 즉, 채순희와 리석춘의 불화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데서 오는 나태와 무기력이 원인이었고, 이것을 깨닫고 새로운 마음과 정신으로 스스로 능동적인 노동자로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순간, 두 사람의 불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남북한 문학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렸다고 한다. 소설 내용도 좋지만, 북한 체제가 보여주는 특수함, 북한 인민이 '당과 조국'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프랑스 독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경험일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독자들도 이 작품을 읽기 권한다.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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