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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69

죄와 벌 죄와 벌 한때 도스또예프스키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스또예프스키의 마력은 쉽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범위도 넓고 깊이도 깊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의 이력도 소설만큼이나 드라마틱하죠. 또스또예프스키는 자신이 직접 처형 직전까지 가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더욱 삶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가 도박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썼다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반체제 인사에서 왕정 옹호주의, 보수주의자로 변신해 가는 것도 충격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인간에게 완벽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죠.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렇더라도, [죄와 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등 걸작들만을 써낸 작가의.. 2022. 11. 23.
데미안 데미안 같은 책이라도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말씀드리죠. 데미안을 처음 읽었을 때가 10대 후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문고본으로 읽었죠. 다들 읽어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이게 그렇게 쉬운 책은 아닙니다. 일종의 성장소설인데, 메타포가 많이 내포된 내용이어서 저같은 경우는 한번 읽고 이해를 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지금도 그렇지만, 헤르만 헤세가 우리나라에서는 꽤 유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를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도 않고,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여전한 것이 사실이죠. 하여간, 10대 후반에는 그런 것들을 알 리 없었으니까, 유명하다는 이유.. 2022. 11. 23.
벗 - 백남룡 벗 - 백남룡 북한 문학 작품을 처음 읽은 건 군복무 하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기억이 왜곡되었어도 그 언저리였던 건 분명하다. 그러니까 82년을 전후한 시기였고, 나는 부대 근처에서 그 책을 발견했다.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화천에서 산양리를 거쳐 민통선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포병대대였다. 부대 주변으로 가끔 북한에서 보낸 삐라가 떨어지곤 했다. 삐라를 주워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관물대에서 북한 삐라가 나오면 말할 것도 없이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가거나, 최소한 군대 영창이라도 가게 될테니, 삐라를 발견하면 주워서 보고를 하던지, 그냥 두고 지나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주운 삐라에 실린 단편소설은 어린 소년과 기차 그리고 김일성 장군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단편 내용은 김일성을 찬양.. 2022. 11. 22.
남극해 - 이윤길 남극해 - 이윤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익명이다. 작가는 본능적으로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던 걸까. 박 기관장, 강 사장, 장 선장, 1기관사, 조기장 '심근수'만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지만, 정작 그는 조선족 조리장에게 살해당한다. 선원들의 익명은 그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그들이 탄 배의 이름이 '피닉스호'라는 것에서, 그들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43년이나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빈 작가의 경험과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귀중한 소설이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이면서도 올바른 해양정책이나 해양문학이 뿌리 내리지 못한 기형적 형태를 갖고 있는데, 특히 '해양문학'은 저변이 좁고 얕아서 하나의 장르나 범주로 구분하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부박하다. 작품은 원양어업, 그것도 대서양이나 북태평양.. 2022. 11. 22.
타오르는 마음 - 이두온 타오르는 마음 - 이두온 한국소설, 특히 최근 발간한 소설은 퍽 오랜만에 읽는다. 나도 소설을 쓰는 자칭 3류 소설가지만, 한국소설에 희망이 있을까,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과거의 작품(192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문학)에 익숙해 있어서 현대문학 즉 20대, 30대 작가의 작품이 낯설 수밖에 없다. 그 낯섦을 긍정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런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의 기준으로 봐서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예전의 작품을 많이 읽었고, 익숙하며, 그 문학에서 배웠다. 문학은 시대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표현이며,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는 당대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80.. 2022. 11. 21.
별들의 감옥 - 고경숙 소설집 별들의 감옥 - 고경숙 소설집 마당의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보니 예상 못한 우편물이 있었다. 책봉투였고, 나에게 책을 보냈다는 사람이 없었으니 의외의 우편물이었다. 꺼내보니 소설집이다. 출판사가 보냈을까, 저자가 직접 보냈을까. 책표지 다음 장에 내 이름을 쓴 저자의 친필과 인장이 찍혀 있었다. 저자께서 직접 보내주신 책이다. 하지만 나는 고경숙 작가를 잘 모른다.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아뿔사, 임헌영 선생님 사모님이셨다. 존경하는 임헌영 선생님은 문학평론가시니 잘 알고 있었지만, 사모님께서 소설을 여러 편 발표하신 작가라는 걸 몰랐다. 죄송할 따름이다. 문단의 말석에 있는 나에게 책을 보내주신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오로지 책을 잘 읽는 것이라 생각해서 성심껏 책을 읽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 2022. 11. 21.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쉬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었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내용이었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던 감정들이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로서, 작가로서 박정애 작가의 이 소설은 ‘가족’의 의미, 가족이라는 하나의 작은 집단 속에서 개별 존재로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의 처지를 지극히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족 소설이나 청소년 소설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중년의 부모와 청소년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고민을 진지하게 묻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그런 시도를 하는 소설들은 많지만, 대개 교훈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현실이 힘들고 .. 2022. 11. 21.
뜻밖의 생 뜻밖의 생 여든의 현역 작가는 드물다. 물리적으로도 여든의 나이는 창작을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여건임에 틀림없다. 김주영 작가는 비교적 늦게 문단에 데뷔했고, 데뷔한 이후 곧바로 줄기차게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단편이었고, 내용은 풍자와 우화였다. 그리고 몇 편의 통속 장편소설을 쓰고 나서, 작가는 한국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길 작품 '객주'를 집필하고, 그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현재까지는. 물론 작가가 아끼는 작품이 꼭 '객주'가 아닐 수는 있다. 그가 쓴 역사소설은 '객주' 말고도 '화척', '활빈도', '야정'과 같은 작품들이 있고 그 작품들은 모두 기존의 역사소설을 뛰어넘는 작품들이었으니 말이다. 70년대 말부터 쓰기 시작한 역사소설은 '객주'를 이어 한동안 계속.. 2022. 11. 21.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공지영의 소설 를 읽었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책을 덮으면서 머리에 남는 것은 한마디로 한심하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읽었다면 다행이겠다. 이 소설의 미덕과 뜻을 내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고 나를 윽박지를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승복을 하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부르조아의 소설을 능가하면 했지 결코 못하지는 않다. 내가 언제 운동권 소설이라고 했느냐고 대들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래도 이 소설을 운동권 소설이라고 알고, 믿고 읽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나름대로의 미덕을 갖추기는 했다. 운동권, 특히 학생운동권의 각 개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운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통받는 ‘인간적’..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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