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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The true cost

by 똥이아빠 2016.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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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true cost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의류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한 작품.
사실 여기서 지적하는 문제는 단지 '의류산업'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이라는 뜻은 자본주의를 이루는 핵심이자 자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문제의 본질인 '착취'의 문제를 말한다.
의류산업을 포함한 이른바 패션산업은 자본(가)이 자기 공장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전자산업의 경우도 애플은 자기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자본이 단지 자본으로 추가 이윤을 재생산하는 방식은 노동자의 잉여가치 뿐이다. 즉 자본이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뜻과 똑같다. 최고급 브랜드와 그 제품들의 가격은 해마다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부르주아들이 사서 쓰거나 많은 중산층들이 부르주아를 모방하고픈 심리 때문에 팔리는 것일 뿐, 일반적인 소비패턴이라고 할 수는 없다.
90%의 대중이 사 입는 패션제품은 중저가의 보통 제품들이고 이 제품을 생산하는 자본은 이윤을 위해 생산공장을 압박한다. 경쟁에 내몰린 공장들은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생산공장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저개발국가로 이전하며, 영세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한다. 이것이 패션산업의 핵심이자 모든 자본(가)의 본질이며 핵심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불변의 사실이다. 
자본이 장악한 국가에서는 정부가 자본의 '공식위원회' 노릇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파업에 국가폭력이 직접 개입한다. 노동자의 파업을 깨기 위해 경찰이 개입하고 폭력으로 파업을 해산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동자가 하는 말은 세계 모든 노동자가 하는 말을 대변한다. 자신들이 만드는 옷에는 자신들이 피가 배어 있다고. 모든 노동자가 만드는 물건에는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우리 사회가 천박한 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본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연봉 1억원을 받는 노동자에게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질투하고, 연봉을 깎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라면, 참으로 암울하고 한심한 사회여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중산층으로 살려면 최소한 연봉 5천만원은 넘어야 한다. 만일 제대로 된 정부가 있어서 북유럽 국가들처럼 국민에 대한 복지를 최대로 확충한다면 연봉이 낮아도 충분히 삶의 질이 높을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국가에서 모든 복지가 무료이면서 월급은 극히 낮은 경우, 그것을 한국의 노동자가 받는 월급과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사회비용을 정부가 얼마나 많이 지출하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서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월급을 높이자는 주장은 매우 어리석고 수준 낮은 것이 되고 만다. 복지의 향상과 확대가 우선이고, '기본소득'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그때까지 자본의 착취를 가능한 줄이고,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준비가 시급하다. '기본소득'은 바로 그런 제도적 준비의 하나이며, 반자본주의를 위한 바탕이 될 수 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도 지금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착했지만, 순수하게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이 제도들은 분명 반자본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제도다. 그럼에도 어떤가. 모든 나라에서 연금제도와 의료보험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것은 자본의 힘이 그만큼 후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도 양보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본의 탐욕을 줄이거나 멈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노동자와 기층 민중의 연대와 단결 투쟁 뿐이다. 자본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노동자의 단결을 막고 기층 민중을 어리석은 상태로 머물도록 안간힘을 쓴다. 자본이 만든 다양한 함정-오락산업, TV드라마, 연예계 뉴스, 스포츠 산업 등등-에 빠진 노동자와 기층 민중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자본과 그 정부는 교육기관을 장악하고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 시스템에 익숙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교육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대신 개인적으로 보험을 들어야 하고, 월급을 받아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사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본은 '산업예비군(실업자)'를 항상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어서 노동자끼리 경쟁을 시킨다. 자본은 더욱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쓸 수 있으며-비정규노동자와 아르바이트를 보라-이들의 경쟁은 자본에게는 더 큰 이익을 주고, 노동자들에게는 더 비참한 삶을 안겨 줄 뿐이다.
문제의 원인과 해답도 알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노동자와 기층 민중이 각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9%의 대중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잘 모른다. 단지 돈을 조금 더 벌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거기에 맞추려는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대중이 있는 한, 자본은 늘 배부르게 존재한다. 그들은 피흘리지 않고, 우아하며, 고귀하게 사회의 주인으로 노예들인 노동자들을 부려먹을 수 있다. 고대 노예제와 중세 농노제의 주인들보다 훨씬 존경을 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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