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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by 똥이아빠 2017. 9. 18.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

잘 만들었고 재미있는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영화나 소설보다 더 극적인 내용이다. 이 소설이 생각보다 덜 알려진 듯 해서 일부러라도 후기를 쓰고 싶었다. 탐 크루즈가 나와서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삶을 살다 죽었다. 
주인공 배리는 항공사 TWA의 조종사로 일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썩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소소하게 불법도 저지르고 있는데 쿠바산 시거를 밀반입하는 일이었다. 그 일이 꼬투리가 되어 CIA의 공작 대상으로 찍히게 된다. 배리 자신도 현재의 조종사 일을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여서 CIA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배리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하지만 주인공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사회, 정치 상황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배리 씰이라는 한 인물이 1970년대 말부터 십여년간 CIA와 미국 정부(정확히는 레이건 일당)를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른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CIA가 남미의 여러나라에서 저지른 악행과 공작은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그 공작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실행되었는가는 알려진 바 없었다.
CIA는 지역을 담당하는 요원에게 거의 전권을 위임한다. 요원은 당연히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작전 대상을 물색한다. 국가정보기관인 CIA가 불법 작전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국가간 분쟁을 일으킬 뿐 아니라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실제 공작을 수행하는 사람은 민간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배리가 시작한 일은 남미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좌익 반군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당연히 불법이었지만 CIA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도 증거가 없었고, 뻔히 눈으로 보면서도 빠르게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잡을 수도 없었다. 배리는 CIA 요원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훌륭하게 일을 해냈고 그는 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CIA는 남미 여러나라에서 좌익 세력들이 혁명에 성공하고,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보면서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이미 코앞에 있는 쿠바가 사회주의 정권으로 바뀌었고 1960년대 초에 이미 쏘련의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된다는 것을 두고 심각한 상황까지 가기도 했었으니 70년대말의 미국이 남미의 좌익 정부들을 보면서 느끼는 공포는 대단했을 것이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좌익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정부는 CIA를 통해 반군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가장 직접적인 지원은 무기 지원이었는데, 이들 무기 역시 처음에는 쏘련이 중동국가에 지원하는 것을 이스라엘 정보부가 가로채 미국에 넘긴 쏘련제 소총을 전달했지만 나중에는 미국 소총과 탄약, 폭탄을 직접 지원하게 된다.
배리는 '배달꾼'으로 미국에서 남미로 비행기를 몰고 다니며 CIA의 무기를 반군(우파정권)에게 전달하고, 반군이 가지고 있던 마약을 미국으로 옮겨다 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받는다. 마약 밀매는 CIA의 시나리오에는 없었지만, 반군의 제안으로 이루어진다. 1kg 당 2천달러의 배달비를 받았으니 한번에 보통 50만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배리의 집에는 현금다발이 흘러넘칠 정도가 된다. 물론 CIA가 이런 내용을 모를리 없었다. 배리의 범죄행위를 알면서도 그가 하는 일이 CIA에게는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계속 이용한 것이다.
그는 80년대에 이미 수천만 달러의 현금을 가진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CIA는 그를 계속 이용하려 했고, 공작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는 배리가 사업을 확장하면서 불법적인 부를 더욱 축적할 수 있었다. 만일 배리가 조금만 머리를 쓰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배리는 돈가방을 격납고와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는 방치하고 말았다. 지금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배리와 거래를 했던 마약업자들 가운데는 파블로 에스코바르도 있었는데,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을 이끌던 이 사람과 거래를 시작한 배리는 위험하지만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함께 한다. 물론 배리는 '배달'만을 할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미국마약단속국과 FBI는 콜롬비아의 마약왕으로 불리는 에스코바르를 잡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를 압박했고, 그 과정에서 배리도 신분이 드러나고 그의 범죄 역시 밝혀진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배리의 범죄를 눈감아 주는대신 레이건과 그 일당을 위해 일을 하는 조건을 내놓는다. 남미의 좌익 세력이 마약 밀매를 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좌익 세력의 부패를 세계에 알려 여론을 미국 쪽으로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작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배리의 얼굴이 노출되고, 그는 마약업자들과 동업관계에서 이제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이 더욱 첨예, 첨단화하면서 남미에서 들어오는 마약을 단속하기 위해 최첨단 비행기와 조사기법이 발달하는데, 다른 영화에서도 다뤘지만 미국마약단속국 소속 요원이 마약상으로 신분을 세탁한 다음 남미의 마약상들과 거래를 하면서 그들을 소탕하는 내용도 있을 정도다. 
결국 배리는 미국에서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남미 마약조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오래지 않아 암살당한다. 그가 모텔을 전전하면서 남긴 기록들이 이 영화의 줄거리가 되는데, 사실 이 영화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다. 미국정부가 얼마나 오래 다른 국가를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알려주는 생생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자신들의 깡패짓과 사악한 행위를 감추려는 야비한 술수라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미국은 자국내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갖추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동시에 갖춘 비열하고도 폭력적인 국가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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